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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구현우/우리의 서른은 후쿠오카의 여름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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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구현우/우리의 서른은 후쿠오카의 여름 외1편
우리의 서른은 후쿠오카의 여름 외1편
구현우
후쿠오카에서 아침을 맞는다
역과 역 사이에 강이 흐른다
예정된 비가 온다
하루 안에
이틀 치의 비가 오고 있다
오롯이 젖은 사람과 앞으로 젖을 일밖에 없는 사람과 젖는다는 이미지에 젖어든 사람과 젖지 않아도 비극에 젖어가는 사람과 젖지 않아서 불안한 사람과 자기만은 젖지 않을 줄 아는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차양 밑에서 우산을 펼친다
우산 아래에 온몸을 감춘다
몸은 버려진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비에 대한 예보가 전해지기도 전부터
강은 수위를 높인다
어딘가에 두고 와 잃어버린 우산이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랬다
잃어버린 우산은 전부 멀쩡했지만
거리에서나 도보 어딘가에서
예기치 않게 발견된 우산은 빠짐없이 망가져 있었다
신발은 멍든다 비가 멎더라도 그 사실은 유효하다
그럴 만한 시간이 부족해도 말을 바꿔도 젖게 된다 우리의 서른은 후쿠오카의 여름으로 환전된다
나는 미리 와 있다
사람은 오지 않는다
비는 오고 있다
신호를 기다린다
아무도 선을 넘지 않는다
관람
정교하게 날아가는 새와 망연히 건축된 절,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보이는 게 있어. 관람차에서의 한때란 길고 가벼워.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눈에 띄는 것들. 장면 하나가 장면 셋에 영향을 주고 무관계한 장면과 장면이 부딪혀 하나의 사건이 되어도 나는 무관하지. 해가 지기 전에
돌어올 수 있냐는 연락이 와 있는데
이곳에서의 한때란
멀고, 소란스러워.
어두워져 가는 게 보이는데 도심의 밤은 아직 이르다고 하지. 돌아가는, 기분과 흔들리는, 정경. 동쪽에서 먹구름이 밀려와도 시야는 반으로 나눠지지 않고 다만 한 장소를 아우르고 있어. 사진을 찍어도 될까. 남겨지는 것과 지나가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밝은 느낌으로. 한쪽 눈을 감고.
관람차 안에서, 이미 가장 높은 곳을 넘어 내려가는 중이라 짐작하면서, 휘청이는 게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반문하면서,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은 감상을 말할 테지.
*구현우 2014년 《문학동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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