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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기획시노래/정무현/노랫말과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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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기획시노래/정무현/노랫말과 서정시
노랫말과 서정시
― 천선자 시 「마지막 화살」
정무현
너는 깊고 깊은 바다 속에 살고 있다.
너는 항상 베일에 가려있다.
호수에 뜬 달을 보자 첫눈에 울었던 너
번개 맞은 것처럼 놀라서 무너지던 너
기다림에 눈이 멀고 그리움에 귀가 먹어
죽어도 사랑한다. 사랑한다. 열꽃을 피운다.
독한 사랑으로 마지막 화살을 쏘아올린다.
독한 사랑으로. 마지막 화살을 쏘아올린다. 독한 사랑으로
~웅, 웅~, 화살은 무더기로 날아가 협곡에 들어선 기마병들을 향해 비오듯이 퍼부었다.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 꼴이다. 방패를 들이대며 막아보지만 어디서 날아오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장수는 죽을 힘을 다해 참모들과 함께 퇴로를 찾아 빠져 나가려 한다. 이미 지나온 길에는 추격대들이 들이치고 있다. 대장, 더 이상 함께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소. 제가 이곳을 막을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이 산등성이만 넘어서면 우리의 후원군을 만날 수 있소. 후원군이 갑자기 어디서 온단 말이오. 제가 날쌘 놈 두 놈을 먼저 빠져나가게 했습니다. 아마 무사하다면 내일 오후쯤 후원군이 마곡산 산등성이까지는 닿을 것입니다. 대장은 빠져나가기만 하면 될 겁니다. 그렇다고 어찌 내가 그대를 두고 그냥 갈 수 있겠소. 그는 가장 아끼는 참모의 아직 어린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안되겠소. 그대가 빠져나가시오. 그리고 오늘의 이 치욕을 갚아주시오. 대장. 그건 아니 되오. 대장은 할 일이 많아요. 반드시 빠져나가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소. 대장의 눈에는 참모의 간절한 눈빛보다는 참모의 아내가 전장을 떠날 때의 간절한 눈빛이 더욱 생생하다. 쓩~, 와~ 일제히 함성과 함께 추격대가 들이닥쳤다. 시간이 없다. 참모는 순간적으로 대장의 말을 채찍으로 내리쳤다. 말은 크게 뛰어오르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대장은 계곡을 이리저리 헤치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사가 심한 곳에 이르러 말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걸어서 빠져나가는 거다. 있는 힘을 다해 그는 계곡의 산등성이에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의 부대들이 몰살되는 지경이다. 그런 중에도 참모는 눈에 띄게 휘젓는다. 마지막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쓩~, 다시 화살이 날고 참모의 가슴팍으로 화살은 꽂혔다. 그는 무언가를 소리 지르며 굴러떨어졌다. 참모의 아내 모습이 보이다가 사라진다.
마지막 화살을 생각하다 엉뚱한 상상을 하여 보았다. 현대에서는 화살이 무기가 되지 못한다. 그저 올림픽 메달종목이거나 국궁스포츠로 아낌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너무나 화가 나서 분을 참지 못하면 활은 무기가 된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그러나 부러진 화살은 관통되지 못하였음을 뜻하고 화살은 사라졌지만 활 자체로 피의자가 된다. 활은 이렇게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화살은 공포스럽거나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아프게 하는 화살도 있다. 그 화살은 너무도 아프게 하여 독한 화살이 된다. 독화살이 아닌 독한 화살이다. 천선자 시인은 화살이 치명적인 무기가 아니라 치명적인 아픔이 되는 도구로 가져왔다. 언제나 자신은 드러내지를 못하고 그저 그러려니 했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만이 가꾸고 만들어온 세상이 있었다. 그저 그냥 흘러가는 자신이 아니라 치열하게 자신을 만든 시간이 있었다. 그걸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 불평 한마디 해보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호수 전체가 뒤바뀔 수 있는 파문이 일었다. 그저 밤으로 사라지는 시간이려니 하는 정적의 시간에 호수를 가득 바꿔놓을 요란한 사건이 생긴 것이다. 호수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 보석이 파고들었다. 평시 자신은 바다와 같은 넓은 공간에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성을 만들며 그저 바다가, 표류하는 자신의 모든 것이려니 하였는데 우연히 본 호수에서 떠 있는 달을 본 순간, 이제까지 보지 못한 저 달이 저리도 편안하고 안락하게 자리 잡은 모습에 까닭 없이 첫눈에 울어버린다. 이후로 만나는 달은 얼굴을 붉게 하고 가슴을 요동치게 하고 끝내는 곁에서 숨을 쉴 수 없게 하여 무너져 내리게 한다. 그러니 사랑은 말 안 해도 알겠다. 매일이 웃음이고 매일이 산뜻하고 매일이 기다려지고 매일이 울렁거리는 꿈같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어찌 영원할 수 있으랴. 바다와 함께이고 바다의 일부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호수에 잠긴 달을 기다리는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고 기다리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주변에서는 말이 생기고 번져나가고 이를 확인하는 말이 다시 돌아오고 시간은 또한 부지기수로 흘러간다. 얼마나 처연했으면 기다림에 눈이 멀고 그리움에 귀가 멀게 될까.
우리는 누구든지 독한 사랑을 하여 보았다. 그 사랑은 자신이 모든 것을 바치고 싶어 했던 사랑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러한 사랑은 첫사랑이라는 말로 끝나버린다. 사람은 영악하다. 한 번 다친 사랑은 다시는 독한 사랑 하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독한 사랑은 자신에게 없기로 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성장한 지금, 이제는 독한 사랑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인격체로 변모한다. 부모를 봐서도, 직장을 봐서도, 친척을 봐서도, 자식을 봐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인격체로 변한다. 그러한 인격체가 되면 될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예전에 독한 사랑을 하였던 첫사랑은 잊히지를 않는다. 그런 그 첫사랑에 갈증을 느낀다. 모든 것을 다 주었던 그 시절을 결코 후회하지를 않는다. 가슴 깊이 그러한 추억이 있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이건 이제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그러한 독한 사랑을 천 시인은 죽어도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애원하며 아픈 열꽃을 피운다. 이만 하면 된 거다. 그러나 그렇게 혼자 아파하고 끝나기에는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화살을 다시 날리기로 한다. 이 화살은 나의 모든 것을 건 화살이다. 명중하라. 명중하라. 나는 아직도 남은 화살이 있었던 것이다. 이 마지막 화살이여 제발 명중하라. 그녀는 독한 화살을 날린다.
에로스의 화살을 맞으면 무조건 사랑을 하게 된다. 그 사랑은 가슴 아프게도 일방적인 사랑이다. 그래서 받을 수 없는 사랑이기에 그런 사랑을 포기한 프쉬케에게 고맙게도 에로스는 돌아왔다. 그러나 에로스와의 사랑은 밤에만 이루어지는 얼굴을 모르는 사랑이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너무나 궁금했던 프쉬케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된다는 금기를 깨고 등불을 밝힌다. 금기는 깨지게 마련이다. 만약 프쉬케가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 행복한 사랑을 하였다면 이거야 말로 개가 웃을 일이다. 보아서는 안되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아야만 했고 그래서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하는 가장 순수한 사랑은 깨지는 아픔이 존재한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금기를 두 번이나 깨고도 프쉬케는 결국 에로스와 부부의 연을 잇는다. 이건 신화에 걸맞지 않은 결론이다. 그래서 사랑은 신화에서 가장 무책임하고 무지하나 분명한 답을 내렸다. 천 시인은 ‘아침고요수목원’의 몰아치는 안개를 끌어안아 보았고 ‘나타샤와 당나귀’의 천 번도 더 밤을 지새는 나그네의 꿈을 가져보았고 아린 가슴이 몰려올 때마다 올올이 나무든 벽이든 자기이든 자신의 마음을 새겨놓았고 세상을 너머 세상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원숭이가 되어 보았고 마초 더미를 죽을 때까지 먹을 수 있는 초원의 말이 되어야 하고 도시와 들판을 마구 내달리는 거칠 것 없는 생을 그려보며 언젠가는 이 도시가 서로가 서로를 살피고 바라보아야 하는 ‘파놉티콘’을 세상의 감시자가 아닌 서로가 떼어낼 수 없는 동반자로 보았다. 이 동반자는 서로 사랑을 하여야만 된다는 순애보를 보인다. 그렇지. 그래야 다시 한 번 독한 화살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독한 화살은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이 독한 화살은 잘못 쏘게 되면 독화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화살을 쏘는 데에 따르는 책임도 져야 한다. 쏜 화살이 너와 나의 순수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 피해를 주지 않을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이 독한 화살을 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아. 사랑은 가장 무지하고 무책임하나 분명한 답은 내렸다. 이 노래는 천선자 시인의 시에 최미례 님이 곡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이 노래를 불렀다. 최미례 님은 예전에 ‘희자매’에서 활동한 가수다. 그녀의 열정적인 울림으로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불렀으니 이 시에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할만 한 감동이 있을 것이다. 최미례 님의 또 다른 독한 사랑이 숨어있는 것이다.
시노래는 리토피아 홈페이지를 찾아 「커뮤니티>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창작시노래」에서 들을 수 있다.
※ 알립니다.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에서는 매년 ‘시노래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국내의 저명한 작곡가가 시를 가사로 하여 작곡한 노래를 라이브무대로 발표합니다. 2018년 제16회 ‘시노래정기콘서트’ 관람을 희망하시는 분은 litopia@hanmail.net로 메일 주시거나, litopia21.com 홈페이지에 접속하시면 공지사항을 통해 행사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정무현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풀은 제멋대로야』,『사이에 새가들다』.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 상임대표.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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