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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미니서사/박금산/불륜 때문에 힘들다는 건 핑계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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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87회 작성일 19-06-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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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미니서사/박금산/불륜 때문에 힘들다는 건 핑계라는 거죠?


불륜 때문에 힘들다는 건 핑계라는 거죠?


박금산



  소설가 : 지난번에 말씀하시기로 환자들 상담 내용 중에 불륜은 정말로 흔한 소재라 하셨는데 엄청 궁금한 게 있어요.
  정신과 의사 : 네, 불륜 많죠.
  소설가 : 제가 궁금한 거는요.
  정신과 의사 : 네.
  소설가 : 자기 자신의 불륜 때문에 힘들어서 상담을 신청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정신과 의사 : 자기 불륜 때문에 상담을 하는 경우요? 자기가 바람을 피우면서 상담을 신청한다고요? 넌센스!
  소설가 : 왜요?
  정신과 의사 : 그런 경우는 없어요. 주로 배우자의 불륜 때문에 힘들어서 오죠.
  소설가 : 저는 불륜에 빠진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서 약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 : 그런 경우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모르겠어요. 제도적 측면을 떠나서 한 개인의 측면으로 보면 불륜에서 제일 큰 게 신뢰와 자존감 문제인데 부인이 바람을 피우면 남편은 자존감이 무너지더군요. 부인이 불륜을 저질러서 그걸 못 참는 남편이 상담을 오는 경우는 제법 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다 걸려서 부인한테 끌려오기도 하죠.
  소설가 : 남편이 바람을 피우다가 부인한테 끌려온다 하심은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부인이 병원을 찾아왔다는 말씀이시죠?
  정신과 의사 : 그런 경우가 있었지요. 네가 병이니깐 가서 치료 받아라. 그런데 웃긴 게 대개 우리나라는 성관계를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를 기준으로 불륜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상대방을 매도하고 귀책사유가 전적으로 외도자에게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거 잘 살펴보면 쌍방이거든요. 물론 부부간의 외도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긴 해요. 원체.
  소설가 : 아까 얘기했지만, 소설적인 상상으로 말씀 드리자면 만약 자기 자신의 불륜 때문에 힘들어서 상담을 신청했다고 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가령 제가 어떤 이성이 좋아져서, 이웃집의 부인이라고 합시다, 그것 때문에 힘들어서 내담자로 왔다고 가정했을 경우를 상상해본다면 말입니다.
  정신과 의사 : 병원에 찾아올 정도로 힘들면, 그걸 아는 사람이면, 멈추겠죠.
  소설가 : 멈추지 못해서 힘든 경우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신과 의사 : 음, 그렇다면 중요한 걸 찾아보겠죠. 불륜 때문에 자기가 힘들다고 주장하지만 핵심 문제는 그게 아닐 가능성이 많거든요. 환자들은 그냥 눈에 띄는 거, 드러난 걸 핵심 문제로 생각하고 의사한테 얘기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핵심 원인이 아닌 것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주구장창 찾으려 해봐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가 좀 힘들죠. 만약 그런 사람이 온다면 왜 자신의 불륜으로 왜 괴로워하는지, 성장과정이 어땠는지 쭉 들어보겠죠. 왜 힘들어하는 사람이 됐는지. 불륜은 중요한 게 아닐 겁니다. 핵심이 다른 것에 있을 거예요.
  소설가 : 사랑에 빠진 것 때문에 힘들어요, 라는 말은 핑계라는 거죠? 다른 중요한 기제를 감추고자 하는?
  정신과 의사 : 네 사랑이든 뭐든 무엇, 무엇, 때문에 힘들어요, 라고 사건을 들고 오는데 그건 핵심 소재는 아니에요. 그러나 거기에 관심을 가져는 줘야겠죠. 무엇 때문에 힘들어요, 해서 온 경우 그게 핵심 문제였고 제대로 된 원인이었다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을 리가 없어요. 그러면 괴롭지 않아요. 그런데 병원에 오는 환자는 그것 때문에 괴롭고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핵심 문제가 그게 아닐 가능성이 많은데 말입니다.
  소설가 : 그럼 그 근원이 뭔지 어떻게 찾을지 궁금하네요. 그게 의술인가요?
  정신과 의사 : 단순히 의술이라고 하긴 좀 그러네요. 일반인들이 정신과 의사에 대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많은데요. 정신과 의사는 기본적으로 biologist에요. 핵심 원인을 찾는 과정을 상담이라고 한다면 그건 부수적이고 그건 스킬이 치료자마다 천차만별이죠.
  소설가 : 초심자 의사는 수사관이고 고수는 뭐라고 하셨더라, 치료 플랜을 짜는 과학자라고 하셨던가?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정신과 의사 : 보통 상담을 통해서 성장과정부터 일대기를 들어보고 핵심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합니다. 초심자 의사는 사건에 집착을 하는데요, 좀 아는 사람은 직감으로 알죠. 아까 말했듯이 사건은 핵심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려운 게 뭐냐면 환자가 사건event 때문에 힘들다고 왔는데 중심core을 파악했다고 바로 지르면 환자가 못 받아들인다는 점이에요. 때와 장소를 가려서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핵심을 아주 젠틀하게 이야기 해 줘야죠. 중심은 대개 환자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든 거니까요. 유년기에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거나 버려졌던 경험이 있다거나……. 여성의 경우에는 성폭력을 당했다거나……. 과잉보호를 받았다거나. 성장과정을 듣는 것은 중요하죠. 환자는 고통의 근원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고, 초심자 의사는 원인을 다른 곳에서 주구장창 찾으니 해결이 잘 안 되죠. 쉽지 않아요. 코어를 찾은 다음에도 힘들어요. 환자가 인정을 잘 안 하려고 하면요. 강요해서 받아들여지면 의사인 제가 골치 아플 일도 없어요. 마치 그런 거 같아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꼴.
  소설가 : 다시 물을게요. 자기가 빠진 사랑, 불륜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온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는 거죠? 사랑 때문에 힘들어서 약물을 처방받으러 온 경우?
  정신과 의사 : 없어요.
  소설가 : 이상해요. 있을 것 같은데. 배우자 아닌 사람이 너무 좋아서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가 있을 것 같은데. 자기가 빠진 사랑의 덫에 걸려 자책하면서 병 걸린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정신과 의사 : 그런 사람은 소설에나 있는 거고요. 소설가 선생님! 현실에서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은 3D 업종 중 하나입니다. 남녀 문제를 말씀하셨으니까 예를 들어볼게요. 좋아하는 사람한테 칼을 들고 죽여 버리겠다고 휘두르는 미친놈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살하겠다고 자기의 손목이나 목을 긋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행위를 발작적으로 반복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상황하고 비교하면 정신이 번쩍 안 듭니까? 불륜 때문에 힘들다? 원인은 그게 아닐 겁니다. 제가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자기 연애 문제로 자기 부모한테 칼을 휘두르는 환자도 있지요. 정신과 의사는 소설가 선생님이 상상하는 것 같은 고상한 직업이 아닙니다. 칼부림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소설가 : 제가 말한 것처럼 자기 불륜 때문에 힘들어서 상담을 온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는 거죠?
  정신과 의사 : 같은 말을 반복하시네요. 말씀 드렸잖아요. 없다고요. 저도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네요. 그건 불륜 때문이 아닙니다. 불륜의 경우 이런 일은 있었어요. 자기가 저지른 불륜 때문에 이혼을 하고, 사업이 망하니까 너무나 괴로워서 치료를 받으러 온 경우가 있었죠.
  소설가 : 그럼 무엇 때문이죠?
  정신과 의사 : 뭐가요?
  소설가 : 핑계라면서요.
정신과 의사 : 뭐가요?
  소설가 : 제가 만약 불륜 때문에 힘들어서 상담을 신청한다면 그건 핑계이지 코어가 아닐 거라 하셨잖아요. 그럼 코어가 뭐죠?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죠? 중심이 뭐죠?
  정신과 의사 : 그건 상담을 해 봐야 알죠. 길게.
  소설가 : 어떻게요?
  정신과 의사 : 먼저 제 병원에 오셔서 접수하시고, 돈을 내셔야 합니다. 돈을 내셔야 환자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겁니다. 저한테는 의사로서의 책임이 생기는 거고요. 돈을 걸어야 치료가 좀 잘 됩니다. 그런데 불륜 때문에 힘드십니까?
  소설가 : 상상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그런데 만약 제가 돈을 내고 상담을 신청하면 그런 사례가 선생님께 생기는 거지요? 제가 병원에 간다면 선생님의 영업 전략에 걸려든 셈이 되는 겁니까?
  정신과 의사 : 큭큭. 그건 알아서 판단하세요. 조금 비싸게 받겠습니다. 큭큭.





*박금산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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