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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제5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미네르바|임화지·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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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25회 작성일 19-06-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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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제5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미네르바|임화지·수상작


면앙정 외1편


임화지



제월봉의 속눈썹에
그리움 한 장 걸쳐있네
묵향도 많이 마시면 취하는 것
취한 나비 한 마리
새벽 달빛 한 줄 그리고 있네
북쪽 하늘은 아직도 겨울
 
빙점 속에서 시간은
견고한 결정체로 굳어 있고
두렵고 삼가는 연꽃에는
붉은 핏줄이 일어서네
 
바람 속에서도 뜻만 있으면
집을 지을 수 있는데
내가 보낸 편지에
답장은 오지 않네





대나무 소쿠리



며칠째 쓰레기더미 속에서
나뒹굴며 노숙하고 있는 너를
내 가숙家叔 같아
집으로 데려왔다
 
대나무 살피마다
기억 속의 죽순이 빼꼼히
혀를 내밀고
과거로 가는 길이
삐투름히 열리고 있다
 
댓살 쪼개어 만든 곳간
시렁 위 함지박 속에
증조 때부터 비치던 달덩이
가득 채워 넣고
한가위 쌉쌀한 계절마다
한 덩이씩 꺼내어 먹으며
강강술래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신작시>


병원에는



참으로 많은 집기들이 있다
붙박이 옷장을 제외하고
모든 물건에 바퀴가 달려 있다
 
침대, 의자, 휠체어, 링거 걸이까지
이 모든 것들은 한 가지 목적이다
치유를 위해서라고…
.
생긴 것이 좀 흉한 집기도
익숙해지면 천사의 얼굴이 되어버린다
 
궂은일 마다치 않는
침대의 발 네 개는
티눈과 굳은살로
늘 몸살이다
 
그는 오늘도 후미진 곳만 다니다
끝내 장례식장까지 다녀온 모양이다
 
아주 기진한 상태이다





<선정평>


임화지 시인의 「면앙정」을 읽다보면 맑은 물빛에 얼굴을 비춰보는 시인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학문을 논하고 후학을 길렀던 면앙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뿌리를 비로소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신새벽 허공을 나는 나비와 빙점 속에서도 일어서는 연꽃을 통해 치열한 글쓰기의 정신을 갈구하고 있으며, 답장이 오지 않는 편지처럼 막막한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이 간극을 어떻게 좁혀야 할지 애쓰는 지점에서 그녀의 시는 탄생되고 있었다.


버려져 보잘것없는「대나무소쿠리」를 통해 시인은 폐허와 퇴락이 선사하는 다정한 얼굴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집으로 데려와서 자신도 모르게 버려지고 잊혀진 과거의 시간을 새로운 풍경으로 재생시켜 스스로 꽃이 피듯이 허약한 일상들은 달덩이가 되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까지 한다. 추억의 강렬한 힘은 시인을 꿈꾸게 하고 삶의 상처와 공허함을 잊게 한다.          


임화지 시인의 시의 바탕에는 인간의 잃어버린 본성을 향한 동경과 연민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무의식 속의 끝없는 자기 응시이기도 하며 불가사의한 삶에 대한 의문을 시에 기대어 묻는 행위이기도 하다. 은유와 리듬을 간직한 그녀의 시편들은 스스로의 길을 이제 막 찾기 시작한 듯하다./선정위원: 김정임(글) 이채민, 김미연





<수상소감>


배움의 길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어린아이에게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고 부끄럽게 여겨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평생 스스로를 고루하고 재주없는 지경에 가두는 일이다” 라는 연암 박지원 선생님의 교훈을 생각하며, 늦은 나이에 시작한 試作이 어느듯 8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긴 세월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오직 시만 바라보았습니다.그러던 중 예기치 않게 남편의 힘든 투병 생활을  마주하게 되었고, 한동안 우리 부부는 깊은 어둠 속에 갇혀 지냈습니다. 가장 진정한 벗은 시련을 겪었을 때 손 내미는 것처럼,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내면을 치유하고 나를 찾아 가게 만든 것은 올해 출간한 나의 시집 한 권이었습니다. 시집 속에 담겨있는 고되고 힘들었던 압축된 세월이 도리어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문득 ‘도요’ 할머니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 해가 비출거야. 그래 늦었지만 시작하는 거야 꿈을 가지고….”
칠흑 같은 어둠은 순간 물러났고 나에게도 다시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병상에서 일어나 재활치료를 받는 남편에게 저의 수상 소식은 바로 아침 햇살이었습니다.


부족한 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문우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임화지





*임화지 20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꿈 밖으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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