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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제5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열린시학|구애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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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90회 작성일 19-06-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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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제5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열린시학|구애영·수상작


이상의 거울 생각 외1편


구애영



거울은 스스로 제 표정을 절대 본 적 없소
단단한 요새,
성채일 뿐
 
평면의 몸이 유연하지도 않고
한 번도 누군가를 안아준 적도 없소
그런데 그 아집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소
가령 곁방에 걸린 손거울이라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30년째 당신의 영정사진을 밀어내고 있소
아무런 느낌 없는 천성
어느새 나는 없고 내 눈빛만 그 벽에 갇혀버렸소
 
그러니 창문을 열어놓아도 소용없소
어쩌다 장자*의 나비라도 옆구리를 뚫어 머무르면 좋으련만
그런 휴지의 풍경은 가당치도 않소
우리의 관계는 끝내 움직일 수 없소
그냥 지척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실사해주면 그만이오
 
더 견고한 결단과 더 창백한 대화 하나만을 거울 속의 배후로 걸어 두면 그만이오
그러나 경대 밖에서
한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를 거울은 들을 수밖에 없소
어떤 면경은 눈보다 귀가 더 발달했으니까
 


   *중국 전국시대의 송나라 철학자. 산문가.





피그말리온 방식



내 상반신만 거울이 사랑하게 할래
 
소문이 누적되는 엘리자베타 게라르디니*의 미소에 스며들래
촘촘한 참빗이 되어볼래
무표정하게 손을 건네고
반갑게 허리를 굽히고
당신이 홀로 고립되었다는 그 발문 지워볼래
눈썹을 치켜뜨는 버릇은 여전하겠지만
훔쳐볼까 봐
과장을 지운 사람,
거울이 고도를 기다리듯 투명하게 투시하지 않는 사람
엄정한 판결문처럼 요약하지는 않을래
시간을 잡아먹고 돌아온 메아리가 되더라도
무디어진 감각 위에 녹물이 끼더라도
잘린 두 귀로 파고드는 먹먹한 숨소리만으로
솟구치는 말들을 푸르게 채색하고 있을래
서랍에 박제된 나비문양이 제 속살을 드러내고 싶어도
회색빛 심연은 버릴래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 혹은 싱싱함
저 혼자 물들어가는 
 


    *모나리자의 본명.





<신작시>


호접몽胡蝶夢



날개가 시작이었을까
저 나방이도 그걸 알고 있는 걸까
저물녘, 창문에 달라붙은 벌레가
날개를 이으려고 파닥거린다
얇아질 대로 얇아진 무게
혼신을 다해 나방이 저물고 있다
가시엉겅퀴 암술이라도 지나왔던 무사武士이었을까
파르르, 떨고 있다
떨림을 소진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내 몸이 떨리는 걸까
길을 잘 못 들어 후회하는 몸짓은 결코 아닐 것이다
네 의지로 탈바꿈을 이루었을 그 순간
영혼의 중심, 그것들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을 뿐
몸이 곧 중심이란 걸 너를 보고 알았다
대치하듯 한동안 우리는 마주 바라본다
설법 같고 백야 같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밤새 벌레들이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가 잠시 나를 견디고 갔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지문이라 하더라도
의미를 차츰차츰 읽어나갈 수 없더라도 
날개는 명랑하다
바깥이 안이 되고 안이 바깥이 되는 순간은 또렷하다
날개 달린 벌레들은 다른 날개를 꿈꾸고 

나방이는 그가 다녀온 엉겅퀴 잎에 가깝다
아무리 낯설어도
이 순간만큼은 함께 있었던 걸까





<선정평>



제5회 계간지작품상에 구애영 시인의 「이상의 거울 생각」을 선정했다. 상의 이름에 걸맞게 발표작에 나타난 작품성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이상의 「거울」은 ‘거울’이라는 상관물을 통해 분열된 자의식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화자의 심리적 불안감과 갈등 양상을 드러낸 작품이다. 구애영은 그런 「거울」이 가진 기본 주제 의식에 화자가 가진 개별성을 접목시켜 오늘날 새로운 의미의 미학성을 확충했다. 시 속에 나타난 거울은 화자의 정서 상태를 대변해주는 요소로써 단순히 반영적 측면만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단한 요새’와 ‘성채’로 죽은 이를 향한 그리움과 더불어 ‘감옥’의 역할을 담당한다. 사별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화자에겐 ‘이곳’을 벗어나 ‘저곳’의 생을 살아갈 권리가 분명 있다. 그런데 외출할 때 필수품인 손거울이 30년 째 곁방에 걸려있다. 거울은 아집으로 가득 찬 ‘감옥’이 되어 ‘아무런 느낌 없는 천성’과 ‘나는 없고 내 눈빛만’ 있는 표정을 가두어 버렸다. 그러면서 “한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며 외면한다. ‘호접몽’의 환상마저 허용하고 있지 않는 거울, 화자의 참담함은 극대화된다. 이 작품은 이상의 「거울」을 바탕으로 확장적 측면에서 다른 지점을 훌륭하게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피그말리온 방식」도 같은 취지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하나의 시적 대상을 감각적으로 다른 측면에서 끈질기게 탐미했다는 평을 받았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이지엽, 하린





<수상소감>



‘계간지작품상’을 받는 다는 것은 저에게 더없이 큰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그날 선정소식을 듣던 날, 저는 오뎃사의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돌바닥에는 푸쉬킨의 그림자가 새겨져있었습니다. 질투도 결투도 없는 그림자를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내 몸도 그림자가 되어 길 위에 눕혀보았습니다. 길에서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러다가 길을 잃고 그러다가 길에서 묻고 끝내 길에서 나를 묻습니다.
 푸쉬킨의 「작은 꽃 하나」의 구절을 제 기쁨의 당선소감에 끼우려합니다.


“작은 꽃 하나 바싹 말라 향기를 잃고/ 책갈피 속에 잊혀져 있네/ 그것을 보니 갖가지 상상들로/ 어느새 내 마음 그득해지네”
 아무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을 때, 시인은, 시는 말을 건넵니다. 무기력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다가 어제와 오늘, 내일의 꽃잎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부족한 제 글을 시의 길에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샘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겸허히 살아가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구애영





*구애영 2010년 《시조시학》으로 등단.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조집 『모서리 이미지』, 『호루라기 둥근 소리』. 열린시학상,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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