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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미니서사/박금산/소설을 잘 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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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미니서사/박금산/소설을 잘 쓰는 법
소설을 잘 쓰는 법
박금산
퇴근길 버스 안에서 그는 작가로 등단했을 때의 기쁨을 생각했다. 등단하기 전까지 그는 소설을 끝낸 후 읽어줄 사람을 찾아 헤맸다.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기에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고육지책으로 교수를 찾아갔다. 소설을 써왔으니 읽어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건네자 교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교수가 태도를 바꿨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파일을 달라고 하더니 서랍에 툭 던져 넣었다. 첫문장도 읽지 않았고 제목도 보지 않았다. 교수는 시간이 없어서 오래 대화할 수 없으니 빨리 끝내자는 표정까지 덧붙여서 기분 나쁘게 말했다.
“한 줄로 말해 봐라.”
그는 황당했다. 몇 개월을 들여서 소설을 썼는데 그것을 한 줄로 말하라니! 그는 말할 수 없었다. 화가 났다. 단편소설이니 긴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한 줄로 말할 성질의 내용이 아니었다. 교수가 말했다.
“내가 너에게 너무 어려운 요구를 했니? 이 소설은 어떠어떠한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다. 그 어떠어떠한 것이 뭐냐. 그렇게 말해 보라는 거야.”
그는 땀이 났다. 돌아서서 나올 수 없었고, 한 줄을 제시할 수 없었다. 개새끼야! 욕을 할 수도 없었다. 막막한 마음을 지닌 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교수가 말했다.
“아무것도 말한 것이 아닌가 보구나. 우리 이야기 중에 인생 아닌 것이 어디 있냐.”
그가 반박하듯이 말했다.
“한 줄로 정리하기 힘듭니다. 복잡합니다.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교수가 물었다.
“복잡성에 관한 이야기?”
그가 대답했다.
“그건 전혀 아닙니다. 복잡해서 정리하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교수가 말했다.
“그렇다면 실패한 소설일 테니까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복잡성에 관한 이야기라면 흥미롭지만 복잡한 이야기는 매력이 없다. 소설을 쓴 네가, 너 스스로, 정리를 못하고 있잖니.”
교수는 회의에 들어갈 차비를 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변신』, 인간이 벌레가 된 이야기. 『죄와 벌』, 한 청년이 노파를 살해한 이야기. 『안나 카레니나』, 한 여자가 자살한 이야기. 그렇게 한 줄로 말할 수 있잖니. 그런게 소설이야. 자질구레한 세부를 쳐내고 줄기만 남겼을 때 독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어야 훌륭한 소설이다. 흥미롭다는 것은 세부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세부에 관심이 안 가는 거는 별로야. 줄기가 관심을 끄는데 세부가 궁금하지 않은 소설이 있을 수 있을 거야. 반대로 줄기는 없으면서 흥미로운 세부만으로 가득 찬 소설이 있을 거고. 그런 것은 둘 다 수준 이하의 소설이야. 줄기가 흥미를 끌고 세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소설이 진짜 소설이지. 나는 회의에 들어가야 하니까 다음에 또 다른 소설 써서 와라.”
그는 교수의 말에 밀려서 뒷걸음질 치듯이 엉덩이부터 밖으로 빼면서 교수의 연구실에서 나왔다.
그 뒤에 우연히 만났을 때 교수가 말했다.
“너는 좀 짧게 써라.”
그는 교수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랍에 넣은 소설을 읽은 것인지, 아니면 분량만 점검한 것인지 궁금했다. 교수는 짧게 쓰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 『팡세』의 서문을 소개했다.
“파스칼이 말했다.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길게 쓸 수밖에 없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너는 단편소설을 쓰고 싶었던 거잖아. 짧아져야 감동적인 거야. 너저분하게 늘어놓아서는 안 돼. 단편소설은 시를 쓰듯이. 알았냐?”
그는 교수의 말을 들은 후 도서관으로 갔다. 『팡세』를 찾았다. 『팡세』는 사전처럼 두꺼웠다. 파스칼은 서문도 아주 길게 썼다. 길고 긴 파스칼의 서문에서 그는 시간이 없어서 짧게 쓸 수 없었다는 말을 찾아 읽었다.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했다. 시간이 없었는데 파스칼은 어떻게 이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미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늘어놓아서 미안하다는 말일까. 그는 『팡세』의 본문을 읽었다. 충분히 요약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스칼은 요약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적었다. 그 문장으로 사전처럼 두꺼운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을 한 편의 짧은 시로 줄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여야 하는 것일까.
우여곡절 끝에 등단이 되어 교수를 찾아갔다. 교수가 물었다.
“그래 한 줄로 말하면 어떤 소설이냐?”
“말씀 드리기 좀 민망한 내용입니다.”
“그랬으니까 당선 됐겠지.”
“네?”
“빤하면 심사위원이 안 뽑지. 그래, 무슨 내용이었기에?”
그는 교수의 어법대로 말해 보았다.
“딸이 아버지를 성적으로 무너뜨리는 이야기입니다.”
“성적으로?”
그는 소설을 이야기했다. 고등학생 경희는 치마를 짧게 입었다. 경희의 아버지는 불시에 가방을 검사했다. 경희는 수치스러웠다. 더러운 손이 옷을 들추는 것을 느끼고도 그대로 참아내야 하는 것만 같았다. 경희는 가출 욕구가 생길 때마다 수선 집으로 달려가 교복 치마를 줄였다. 아버지가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부터 아버지가 말을 걸면 경희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경희는 교복을 미니스커트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야근하고 들어와 넥타이를 풀고 경희의 방으로 들어갔다. 경희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아버지는 뺨을 때려 경희를 깨웠다. 경희가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아버지는 경희의 눈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경희는 자기가 피뢰침이 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아버지를 파멸시키기로 작심했다.
경희는 ‘아저씨에게’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냈다. 하루에 한 번씩 아버지를 상대로 모험을 걸었다. 아버지는 금융회사에 다녔다. 경희는 주로 학교 밖 피시방에서 편지를 썼다. 가출한 아이가 갈 곳을 찾아 채팅으로 사람을 낚듯이 경희는 아버지에게 미끼를 던졌다. 채 한 달이 안 되어서 경희는 아버지와 약속을 잡는 데에 성공했다. 경희는 그동안 주고받았던 메일, 채팅했던 내용을 캡처 해 디스크에 담았고 아버지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준비했다. 둘 중 한 사람이 파멸해야 끝나는 전쟁이었다. 경희는 모자를 눌러 쓰고 나가서 아버지를 만났다.
교수가 말했다.
“현실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네 소설에서는 딸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
“개연성은 있을 수 있음이지 실제로 일어났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내 말을 기억해 주니 고맙다.”
교수는 책상 아래로 손을 넣더니 상자에서 쇠로 만들어진 공을 꺼냈다. 교수가 말했다.
“사과탄이라고, 옛날에 이런 걸 썼는데 너희 세대는 잘 모르지.”
그가 물었다.
“수류탄 같은 것입니까?”
“최루탄의 일종이야. 사과탄을 모르는 것 보니까 정말로 다른 세대로구나 너는.”
“시위할 때 쓰는 최루탄 말입니까?”
교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위할 때 쓰는 최루탄이라니. 시위할 때 쓰는 게 아니라 시위 진압할 때 쓰는 거지. 시위하는 사람이 최루탄을 던지면서 구호를 외치니?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전두환이 오일팔을 지휘했다고 말할 수 있겠니? 오일팔 학살을 지휘했지. 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거니까, 말로 하는 실수는 생각의 허점을 드러내는 거야. 작가가 됐으니 더 확실해져야겠지. 힘든 삶이 될 거다, 이제.”
교수는 탄피를 내밀었다. 그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받았다.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해머처럼 무거웠다. 교수가 말했다.
“문학도 국민소득의 수준에 따라서 달라지는 건데…… 최루탄 맞고 죽거나 우는 소설을 요즘 작가들은 안 쓰잖아. 시대가 달라진 거야. 그래도 잊으면 안 된다. 한 마디로 줄여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설이다. 한 마디로 줄여 말했는데 그게 재미있어야 영원한 소설이다.”
“감사합니다. 시위할 때 쓰는 최루탄이라는 말은 틀린 표현이네요. 그런 말 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래. 응원할게.”
그는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뭔가 후련한 느낌이었다. 사과탄이 뭔지 모르는 자신은 부끄럽지 않았다. 그는 세부가 호기심을 끄는 한 줄짜리 영원한 소설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박금산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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