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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차현각/그들이 사는 곳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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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차현각/그들이 사는 곳 외1편
그들이 사는 곳 외1편
차현각
숨어들 듯 걸어 내려가는 곳
삐걱거리며 낡은 벨트 돌아가는 소리
엇박자의 서늘한 울림에 놀라
흠칫 나를 바라보게 되는 곳
이미 늙은 아들과 그보다 더 늙은 어미가
떡살을 빻고 방아를 찧고
꽃게처럼 붉어진 손으로 떡을 배달하는 곳
방아 찧는 소리처럼 모자란 듯 빈틈이 없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
가끔은 수돗가에서 떡쌀을 씻던 어머니가
들리지도 않는 말을 쉴새없이 고시랑거리는 곳
숨구멍까지 틀어막힌 듯 묵묵부답이던 아들
말없이 계단을 올라 사라지기도 하는 곳
잘려나간 손가락처럼 절대 돌아올 리 없는
여자라도 찾아 헤맨다는 듯
어느새 돌아와 붙박이처럼 다시 서있는 곳
손님도 제자리를 찾아 앉아 조용히 기다리는 곳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집게손을 마주쳐
냅다 박수 한 번 치기도 하는 곳
나도 가끔은 일 없이
뚜벅뚜벅 걸어 내려가 가만히 앉아있어 주는 곳
능소화 지다
여름은 이미 갔다
울안에 능소화 심지도 않았는데
그대 어느 하늘을 건너와
나를 기웃거릴까
가끔은 비라도 내릴 것처럼
마른번개 비스듬히 하늘을 가르고
숨죽인 정적 뒤에는 어김없이
멀리서 천둥이 울고
울 밖으로 능소화 줄기 하나
늘어뜨리지 못했다
붉은 입술 가지지 못해
키 낮은 돌담조차 넘어선 적 없다
하늘빛 언저리 숯처럼
타들어가던 노을
먼 길 헤맨 듯 능소화는
제 목을 감아 담장 안으로만 툭툭
스스로 지고 있는데
자벌레처럼 이 생에 붙어서
젖은 눈물 밖에는 나 가진 것 없는데
*차현각 2005년 《문예연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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