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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이동욱/간단한 일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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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이동욱/간단한 일 외1편
간단한 일 외1편
이동욱
늦은 밤, 스승의 문상을 갔던 늙은 시인이 돌아왔다
술자리를 가지던 우리는 놀랍고 반가웠다
백발의 시인은 돌아오는 길에 샀다며
검정 비닐봉투에서 소주 한 병과 오징어 다리를 꺼냈다
밤비가
낮 동안 쌓인 눈을 달래고 있었다
나는 시인을 잘 모르고, 그의 스승을 알지 못한다
시인은 모르는 동네를 지나다 차를 세우고
혼자 삐걱대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차가운 소주 한 병을 꺼냈다 누군가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늦도록 술자리를 이어갔다
비가 그치자 몸에서 물 냄새가 났다
나는 내가 모르는 가게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이 사라진 자리를 떠올리며
시인이 따라준 소주를 마시고
빈 잔의 바닥을 내려다봤다
은박지
눈雪으로 조립된 물결
단체손님이 빠져나간 식당 밥상과 수저에 붙은 밥풀
물컵 위에 고여 있는 햇빛에 대하여
소문처럼 자주 바뀌는 표정을
표정으로 신뢰하며
위악을 위선으로 인정하며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개의 혓바닥
(나뭇가지에 묶여 나부끼는 하얀 비닐봉지처럼)
저만치서 울고 있는 아이와
개의 눈에서 반짝이는 허기
헤어진 애인은 곤충의 날개처럼 울었다
지금 내 앞에 여자는 큰 웃음을 지은 뒤 그것을 구겨 작은 눈물로 만들었다
은박지처럼,
모두 놀라운 일이다
*이동욱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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