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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하기정/윤문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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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하기정/윤문 외1편
윤문 외1편
하기정
세 개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나는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닦고 있었다.
그가 거쳐 간 울퉁불퉁한 길의 신발을 신겨주면서
달의 둥근 문을 생각하면서
팔 초 동안 반짝였던 여름의 강물
빛나는 순간을 지속 가능한 형광등처럼 깜빡였던 것
말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침묵이 소비되어 왔는지
조개처럼 꽉 다문 이빨에 진주라도 끼워 주고 싶었다
어느 날 공중화장실을 나오며 아직 나오지 않은 것들이
문 앞에 줄줄이 서 있을 때
실패한 손들이 손잡이를 잡아당길 때
시처럼 와서 시시하게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
납득하기 어려운 문장의 호응관계를 생각하면서
헤어진 연인들처럼 앞뒤 문맥은 늘 다르다는 것
왼발 다음에는 오른쪽 뺨
여기저기 흩어진 발자국을 배치했던 것
미끌미끌한 꼬리가 물크덩한 검은 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밤
당신의 손등을 덮고 있는 한 손 등을 읽고 있었다.
삶은 쥐는 대로 손금이 그어진다는데
당신이 산도를 빠져나오기 전 쥐고 있었던
투명한 강물을 나는 베끼고 있었다
데칼코마니
-의역
추락금지, 이곳에서 떨어지는 한 실패를 모릅니다
수심 깊음, 수심이 깊어서 주름을 새기는 깜깜한 사람은 수심을 재보기 바람 (단, 헤엄치기 없기)
개조심, 개를 알려면 일단 물려 보기
역설법, 양푼에 밥을 비벼 한 숟가락 욱여넣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
자살, 자, 살아보자고 엉겁결에 나왔다가 내리는 우박을 피해 급히 돗자리를 걷는 일
실패, 잃어버린 패를 상대가 쥐고 있다는 것
소망, 모든 불안의 집합체
접근금지, 거봐! 가장 참기 힘든 유혹이 될 테니까. 너는 결국 전기스위치를 켤 테고
직역, 단 하나의 충실한 것들은 없어. 이 모두가 유사한 종족들
*하기정 201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밤의 귀 낮의 입술』. 5.18문학상 수상. 작가의 눈 작품상 수상. 불꽃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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