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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류성훈/어른 어른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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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류성훈/어른 어른 외1편
어른 어른 외1편
류성훈
사과를 베어 무니 벌레가 있다
가장 끔찍한 건 몇 마리일까
반 마리
목숨을 외면하거나 거래한다면
더 나쁜 건 어느 쪽일까
고민하는 쪽
회의가 질문을 가지면 조롱
질문이 회의를 가지면 농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용서가
해저를 걸어 걸어 돌아올 때
실신한 세상을 베어 무는
농담 같은 벌레들이 있다
거대한 뿌리
꿈을 버린 이에겐 야망이 없고
가진 이에겐 욕망이라 부르는
너희는 얼마나 불 붙어 있을까
빛과 연기의 과포화 속에서
그 약장사 모자부터 벗지 너는 다른 너를 팔고 거의 재고도 없는 세계 앞에서 세계라는 말을 팔고 세계는 그저 회전할 뿐이어서 너는 회전도 팔 수 있고 어린 허벅지와 붉은 입술에 경외와 멸시를 동어반복하면서 비싼 지탄느 포장을 까면서
대동강 수질이 그렇게 좋대 약이란 다 그런 거지, 볼일에 물 내리듯 담배를 뭉개면서 지적인 침을 뱉으면서 그런 걸 희망, 이라고 부르는데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런데 그런 게 너희들의 뿌리, 라고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론論자를 사랑하는 늙은 별들과 더 사랑하는 젊은 방들과 병든 대륙성 고기압과 더러운 물안개는 어울려 놀 수도 몸을 섞을 수도 있었지만 서로 안부는 물을 수 없었다 혹시 말, 의 반대말은 책임, 입니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언어를 번역까지 하겠다고
나는 젊은 방에서 양파 구근을 건져낸다 뿌리 없는 곳에 새로 뻗는 공부들을 너희는 쭈글쭈글 짓밟고 그래도 비집고 올라오는 줄기들이 있는 것인데 진실이란 본디 식물보다는 가위의 편이니 나도 구석구석 잘도 잘려 보았지만
걱정 마세요 내가 키운 건 양파가 아니고
뿌리는 불편한 곳에 있기에 뿌리인 것이다
*류성훈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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