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71호/신작시/조성례/강원도의 봄 외1편
페이지 정보

본문
71호/신작시/조성례/강원도의 봄 외1편
강원도의 봄 외1편
조성례
이랴 소리가 힘차게
앞산을 흔들고 돌아오면
흙은 겨우내 묵었던 굳은살을 들친다
수줍게 내민 붉은 속살,
고랑마다 정선 아리랑을 한 자락씩 심는다
아리이랑, 아리이랑 구비구비 산자락을 넘어오는
어린 날을 밭고랑에 펼쳐놓으면
앞산이 구성진 고개를 넘어서
먼 산에 계신 아버지를 불러낸다
“우리 아버지 정선아리랑은
온 산을 울렸지
그 소리 한마디에 겨우내 묵혀 두었던 씨갑씨들이
깨어나고 걸려있던 연장들도 모두 춤을 추며
들판으로 달려나왔지”
이때쯤이면
개나리도 목련도 참꽃도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깊이 잠든 아버지를 깨우곤 한다
묵묵하게 골을 키고 있는 소의 허벅지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면
허벌나게 쏟아지는 오줌 줄기,
이랴아 이랴아 한 번쯤은 소의 등을 후리치며
허기를 몰고 오던 어린 날이 돌아 나온다
소의 발자국을 재우치는 소리를 들으며
꽃밭에 구근들을 듬성듬성 심는다
적막
한낮이 마당에 누워 있다
나는 고요를 접어서 자꾸 날린다
꽃잎들이 함께 날아간다
잠자리 한 마리 긴 꼬리를 끌며 날아오더니
스스로 자리를 비워 주고 간다
그 빈자리에 또 하나의 내가 앉아서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새가 날개를 한 번 접을 때마다
겨드랑 사이로
퐁 퐁 퐁 구름을 낳는다
그가 떨어트린 새털구름이 어미를 감싸 안아
마당에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주고
대추나무 저 혼자 바람을 끌어안는다
문득
나를 깨우는 수탉의 긴 홰 울음소리
허공도 내게 흔들리며 기운다
활처럼 휜 허리에 더욱 힘을 주며
오후가 접히고 있다
*조성례 2015년 《애지》로 등단.
- 이전글71호/신작시/글의 가을이 진다 외1편 19.06.26
- 다음글71호/신작시/조미희/철심의 유효기간 외1편 19.06.2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