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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김효정/공중식물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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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김효정/공중식물 외1편
공중식물 외1편
김효정
가끔 너를 매달아 키우는 상상을 해. 오래오래 마실 물을 주고 너를 닦이고 너를 옮기는 상상을 해
네가 식물처럼 자라는 상상을 해
너는 내 머리맡에서 자라는 걸까
천장에서 천장에 매달린 실에서 벽에서 벽에 박힌 못에서 자라나는 걸까
어디에도 싹은 보이지 않는데 자라는 것은 못일까 그래서
가려워 긁으면 피가 나는 걸까
푹푹 파고드는 감각처럼 네가 떠오르는 걸까
힘없이 늘어져 있는 게 너의 속성이라면 힘껏 붙잡는 게 내 의무라 말할게
네가 중력을 받아들이면 내가 중력을 이해할게
연두에서 연두로 몸을 연장하는 간지러움을 초록에서 초록으로 굵어지는 목소리를 내가 질문하지 않아도 알아차릴게
허공의 모든 시야로부터 너를 엄호할게
우리 달에게 기도를 하자
끊어질 듯 그러나 끊어지지는 않게 뱅그르르 도는 자몽한 그림자를 만들면서
불안의 상승 기류를 타고 유쾌하게 늘어지도록
내가 물을 주는 것을 멈췄을 때
어떤 존재보다 단단한 결속으로 우리가 자라고 완성되도록
하소연
고장 난 고양이처럼 냉골의 도시에 섰다
소리를 질렀다 요란하지는 않았다
전깃줄은 공중에서 수런대고
굉음의 차들은 차선이 되어 회전했다
도시에 부유하는 만고萬苦의 입자들이 가냘프다
*김효정 2018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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