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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집중조명/정찬일/신작시/눈물의 근원 외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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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집중조명/정찬일/신작시/눈물의 근원 외4편
눈물의 근원 외 4편
―각주脚註로 가득한 날들
정찬일
며칠 전 한라산 횡단도로를 넘어갈 때였습니다. ‘어제 넘었던 한라산 중턱을 오늘 다시 넘는군’이라고 생각하는데 속절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구부러진 길의 끝에서 다시 구부러지는 길의 반복, 봄 나무들의 표정을 살필 겨를도 없었습니다. 눈물의 근원이 몸 밖에 있기보다는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금 전 생각했던 문장을 되짚었습니다.
어제·넘었던·한라산·중턱을·오늘·다시·넘는군. 순서에 따라 ‘어제’를 제일 먼저 떠올렸습니다. 어제, 아내와 함께 한라산 넘은 일은 있었지만 눈물 날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무슨 얘길 나눴는지조차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봄날, 화창한 오후에 부부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눈물을 흘릴 만한 감수성이 내게 남아 있지 않아서 가장 먼저 지웠습니다.
‘넘었다’라든지 ‘넘는다’에 함축적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했지만 뒤를 따르는 차들의 속도에 밀려 그럴 겨를도 없었습니다.
한라산, 그래 한라산 하면 많은 눈물을 자아내기엔 충분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무자년, 아니 ‘사월’이라는 단어를 한라산 곁에 갖다 놓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펑펑 쏟아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서늘한 산의 사월이란…. 하지만 조금 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격렬히 쏟아지는 눈물도 아니었습니다.
벌써 문장의 중턱에 이르렀는데도 눈물의 근원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중턱을 이미 넘었고, 한참이나 넘었으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내가 고작 한라산의 중턱을 넘는다는 것 때문에 회한의 눈물을 흘릴 리는 없었습니다.
‘오늘’과 ‘다시’만 남았습니다. 주성분도 아닌 고작 수식어 따위에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눈물을 흘릴 때까지 그러니까 오늘 눈물을 흘릴 만한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어제와 다른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 어린이집 등원 차량에 내가 아이를 태워줬던 겁니다. 그게 억울해서 눈물이 났느냐고요? 그런 사소한 일로 눈물을 흘렸다면 눈물의 근원이 너무 시시한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한심한 존재이긴 해도 그렇게 쪼잔한 존재는 아닙니다.
이제 ‘다시’만 남았습니다. ‘다시’하고 발음해 보았습니다. 몇 번 반복하니 받침이 없는 게 꼭 일본어 같기도 하고, 곁들인 안주로 해석되는 ‘쓰키다시’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거참, 눈물이 주룩 나더군요. 이상하더군요.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절망 같은 것이 가슴 밑바닥에서 스며나더군요. 봄이 가장 낮은 밑바닥과 속에서 먼저 밀려나오듯이 말입니다. ‘다시’라고 발음해 보았습니다. 백목련 한 송이가 가슴 속으로 툭 떨어지더군요. 영원히 못 볼 그 꽃이 떨어져 내리는 겁니다. ‘다시’라고 천천히 발음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붉은 아기동백이었습니다. 떨어진 꽃들을 다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다시’라는 말 뒤에는 누구도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눈물의 근원이 ‘다시’라는 말의 등에 끝 모를 영원永遠이 등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끔 ‘다시’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되기도 합니다.
다음 주에 우리 다시 볼까요?
어떤 신호
눈물은 밥물 같은 것. 이른 새벽 장롱 서랍을 열어 함께 떠나보내지 못한 어머니 옷가지를 본다. 새벽 빈방으로 스며드는 그것. 문득, 내 삶과 죽음이 시시해진다.
*
고구마 하나, 죽음에 이르러 제 몸 속엣것 일으켜 세운다. 싹 하나 겨우 눈을 뜬다. 그리움이란 저렇게 목숨을 거는 것이다.
*
날된장으로 밥을 비빈다. 도닥도닥 타들어가던 아궁이불 알 리 없는 즉석밥 전자레인지에 데워 혼자 비빈다. 오래전 날된장만으로 비벼 먹던 밥이 떠오른다. 가난한 밥에 슬며시 스쳐 지나가던 손 그림자 묻어 있기 때문일까. 몸의 한 부분으로부터 날이 저문다. 12층 창밖에 한 남자가 서 있다.
*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전제가 그립다. 돌로 꾹 눌러놓았다고 그립지 않겠는가.
*
빈터에 던져 놓은 호박 한 덩이. 물컹하게 썩은 호박에서 젖니 같은 싹들 한 무더기 돋아났다.
*
벽도 넘으면 꽃이 되고 꽃도 넘지 못하면 벽이 되는 시절을 지나왔다.
하늘이 낮게 당겨져 있다. 한 노파, 걸어온다. 지나간다. 지나칠 뻔했다 저 하늘에 든 수많은 주름들.
*
내 길이 충혈된 까닭에 숨결이 가쁘다.
*
결핍은 어디서 오는가. 밖에 흘리고 온 게 많나 보다. 아무도 없는 창밖 내다본다. 지금도 내 눈빛은 나를 겨우 견디며 어딘가를 건너가는 중이다.
*
깊이를 보여주지 않는 거울 속, 내가 거느린 어둠으로 가득하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바람
골목을 막 빠져나온 바람이 오른쪽 뺨을 스친다. 따닥따닥 걸어가는 여자의 차가운 아랫도리를 지운다. 봄은 차가운 발자국들을 지우고 바람은 길 위의 발자국들을 지운다.
골목을 빠져나온 바람이 달리고 달려 산토리니의 모난 하얀 지붕들을 다스리고 카라코람 산맥 절벽 향해 내달린다. 일 년 내내 겨울 표정으로 서 있는 절벽,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 눈만 종일 들여다본다. 소리도 없이 나는 너무 자주 웃는다.
바람이 손차양이 필요 없는 날처럼 골목을 빠져나온다. 펼쳐진 책장冊張같이 살아와서 골목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더욱 궁금하다.
종아리 검게 탄 아이들 소리가 바람을 뚫고 골목 안에서 돋움체로 뛰쳐나온다. 제 몸에 눌려 하얗게 갈라진 뒤꿈치처럼 딱딱하다.
날것들, 속내가 불편치 않다
징검다리를 건넌다. 징검돌만을 말한다. 징검다리식으로 말할 때만 너는 알아듣는다. 징검다리를 읽고는 이해했다는 듯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징검다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 병렬이다. 너는 환유적인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징검돌처럼 단절된 얘기만 한다. 그래야 너는 이해했다는 듯 졸린 고개를 끄덕인다. 0과 1 사이에 나는 산다. 환유적으로 산다.
*
거울 속 내 그림자를 읽는다. 화려한 빛깔의 그림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불편하지 않다. 작은 강가에 나가봐라. 나무와 나무로 이어지는 점과 점의 연결이 아니라 그 사이를 봐라. 그곳에 내가 있다. 나비의 날갯짓 그 사이에 흩어지는 내가 살고 있다. 강 이쪽과 강 저쪽 사이에 강이 있다. 강의 흐름이 있다. 강의 오랜 내력이 있다. 강 이쪽과 강 저쪽 사이, 강의 몸속에서 연어들이 거슬러 오르고 구월 열사흘 달이 떠올랐다가 소리도 없이 진다. 내 아닌 것과 내 아닌 것 사이, 그곳에 내가 산다. 그곳엔 이지러진 달이 또 뜨고 또 진다.
*
오른손과 왼손 사이에 내가 있다. 그 사이에 연둣빛 시간이 있다. 나는 내 몸과 가까운 곳에서만 산다.
*
칠 년 동안 그 여자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같은 길로 출근했다. 가끔 부딪히는 눈빛이 어색했다. 오늘 아침 그 여자가 출근하던 길을 벗어난 곳에서 목을 매달았다고 한다.
*
우연한 기회에 내게 술잔을 내민 옆집 남자가 지방 뉴스에 나왔다. 남자는 십 년 만에 붙잡힌 노출증 환자였다.
*
여자는 느닷없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었다고 했다. 여자의 얼굴과 이름이 겹쳐지지 않았다. 종일 내 이름이 불편했다.
*
앞집 남자는 담으로 스며드는 바람의 길을 3년 동안 열심히 메웠다. 낮 동안에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3년이 지나도 적들은 남자의 집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 그 남자의 벽은 틈이 없는 성처럼 견고해 보였다. 그 남자가 잠든 사이에 - 지금도 남자의 방엔 불이 꺼지지 않았다 - 비가 내린다. 그 남자의 집이 온통 비로 점령되는 것을 나는 새벽녘까지 계속 지켜본다.
*
일 년에 한 번 위탁교육에 참석하는 아이였다. 수업 때마다 달빛 같은 격려를 해줬다. 그 비유가 얼마나 유효했는지 모른다. 그 아버지가 자살했다. 그 후로 골목에서 만날 때마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그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뒤돌아서지 않았다. 텅 빈 골목 안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를 앙물었다. 눈물은 눈물샘에서 배어 나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1
동생이 죽었다.
*-2
겨울을 다 보내고도 한참 동안 목련이 피지 않았다. “너를 내다볼 흐린 창문 하나 낸다.”라는 문장을 쓰자마자 창밖으로 차갑고 어두운 밤이 지나갔다. 네가 창밖으로 지나가기까지 오래도록 흐린 창문 하나 가진 문장을 들여다보며 기다린다.
*
섹스하는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달랐다. 몸과 몸 사이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강이 흘러갔다.
*
여덟 살이었던 나는 집 변두리 새들의 길 안에 누워 자주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딱 눈높이에서 벌건 해가 지고 있었다. 가끔 화장터 높은 굴뚝에서 회색빛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누가 버린 잡스러운 마늘이 시월 장마 속에서 싹을 틔워 퍼런 잎사귀로 낮게 뜬 하늘을 쿡쿡 쑤셔댔다. 하나님이 변비가 걸린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님 이름 위에 파리가 앉아 있었다. 너무 가는 파리의 다리여서 자꾸만 웃음이 터지는 걸 참는 하나님 얼굴이 떠올랐다. 덩달아 내 겨드랑이도 간지러워 하나님 대신 웃었다. 내 웃음을 들은 나무들이 깔깔깔 웃으며 몸을 활짝 펼쳤다. 그게 꽃이라고 했다. 꽃들을 볼 때마다 깔깔깔 웃는 웃음이 떠올랐다. 어느 방향으로 봐도 꽃은 꽃처럼 보였다. “꽃 앞을 지난다.”라는 문장이 비문처럼 보였다. 그래서 방향성이 없는 꽃 앞을 지나갈 때마다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
몇 번을 물어도 선생이라는 작자는 내 질문과는 다른 말만 늘어놓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똥을 누었다. 잠자리 똥구멍에 강아지풀을 끼워 넣은 채 날려 보냈다. 생각보다 멀리 날아가서 보이지 않았다. 밤마다 나는 잠자리가 되어 날았다.
*
지구는 수많은 종들이 사는 집합체야. 사십 년 만에 만난 친구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뻔히 아는 얘길 빼고 나면 나눌 얘기가 별로 없는 生이다. 어쩌면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뿌리를 내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침묵했는지도 모른다.
*
국적國籍이 다른 신은 어린 내 기도에 응답이 없었다. 십 년이 지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하나님이면 이 정도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이해가 됐다. 꿈에서 깨어나면 ‘춥다’라는 말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해할 나이가 벌써 됐던 것이다.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제서야 처음으로 하나님이 그럴 줄 알았다며 껄껄껄 웃었다.
*
징검돌 사이로 여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징검돌 위로 뛰었다. 단번에 내가 뛰어내린 곳은 징검돌과 징검돌 사이었다. 첨벙. 심심한 소리를 내며 물의 무늬가 저 혼자 출렁거렸다. 그때 내 발바닥이 외롭다는 것 처음 알았다. 헛디뎌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중심을 잃어야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발바닥이 외로운 날이 자주 찾아온다.
*
불편한 내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얘기에 열중하는 사이에 징검다리를 훌쩍 뛰어넘어 갔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간직한 차가움으로 몸을 뒤척인다.
내 이야기를 하는 이유
인과를 따라가다 보면 나에게 도착하지 못한다.
지루한 이야기를 하므로 페타바이트 시대와 어울릴 수 없는 나 자신이 된다.
건널목 출발선에 서면 숨결들이 가깝다. 여름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아이들의 검은 종아리에서, 허옇게 금이 간 임산부의 뒤꿈치에서, 제 표정을 삼킨 여학생들의 새하얀 교복에서 열이 감지된다. 그들의 숨결로부터 다가오는 저녁,
저녁의 행간을 읽는가? 읽을 필요가 없다. 그곳에 지루한 내가 살아간다. 내 生에는 행간이 존재한 적이 없다. 행간 속에 내 몫의 눈빛이 머물 틈이 없었다. 生이 똬리를 틀고 있을 뿐이다.
아픈 눈빛들로 나는 저녁에 가 닿아 있다. 저녁이 오기 전에 이미 저녁은 건널목 이편에 와 있다. 저녁이 품은 열기들이 번져온다.
내 생은 매일 결을 바꾸는 바다의 비문을 닮았다. 읽는 순간, 내 몸에 새겨진 결들이 몸을 뒤척이며 표정을 바꾼다. 사람들은 비인칭非人稱인 내 몸에 제 문장을 새겨 넣지만, 나는 비인칭인 내 몸에 인칭인 네 문장을 새겨 넣는다.
사람들과 나 사이에 지지고 볶고 뒹구는 날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지러진 달……이 뜬다. 달은 진눈깨비 내리치는 차가운 플랫폼을 떠올리게 한다. 몸이 버겁다. 내가 본 달은 언제나 과거의 내 모습이다. 한눈파는 사이에 달맞이꽃은 제빛을 버리고 젖은 눈빛으로 내린 달빛으로 존재를 갈아입는다. 그리고 시든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나는 주사主辭조차 붙일 수 없는 내 꿈이 ‘춥다’라고 안 나이를 오래전에 지나왔다.
뿌리는 씨앗의 숨결을 향해 나아간다. 뿌리와 꽃 사이, 꽃과 씨앗 사이에 뜬 달이 행간을 두지 않고 내 길을 무찌르며 한 번도 되돌아서지 못했던 길을 간다. 건널목 출발선에 선 사람들이 제 경계를 훌쩍 뛰어넘지 못하는 눈물 덩어리 같은 밤, 비로소 찾아온다.
내력을 엿볼 수 없는 밤의 밀교들이 유행이다.
인과를 따라가다 보면 나에게 도착하지 못한다.
*정찬일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죽음은 가볍다』, 『가시의 사회학社會學』. 제주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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