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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집중조명/정찬일/시론/내 몸을 관통한 것들에 대한 사소한 읊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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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집중조명/정찬일/시론/내 몸을 관통한 것들에 대한 사소한 읊조림
내 몸을 관통한 것들에 대한 사소한 읊조림
정찬일
부사副詞처럼 견디다
깊은 골 다 지우던 푸른빛 무찌르며
집에서 너무 멀리 와 잔 것 같다.
건너갈 수 없는 길 너머 가보지 못한 숲이 멀리 보인다.
여린 생명을 서로 촉촉이 감싸고 있을 젖은 숲. 물기를 머금어 내 발목을 적시거나 말간 제 그림자를 삼킨 물방울을 맺은 숲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 한여름을 건너는 진초록의 나무 한 그루조차 내 그림자의 끝에 이르지 않는다. 내 그림자의 한끝조차 적시지 못하거나 먼 곳,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서 있는 숲은 내게 숲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 여름의 한복판에서 나는 견딘다. 제 몸을 뒤척이지 못하는 부사副詞의 몸으로 기껏 장소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나는 견디고 있다. 인과에 단단히 붙잡혀.
아주 작은 씨앗조차 몸을 뒤척일 때 단단한 제 세계를 뚫고 싹이 튼다. 갇혀 있을 수 없는 날 생生의 간지러움. 그게 원인이 되어 나무는 연둣빛 싹을 밀어 올리고, 붉게 속살 다 드러난 흙의 민둥산 한쪽에도 노란 빈혈 같은 달맞이꽃의 계절은 찾아온다. 여느 시인은 이런 연후지사로 시어를 토해내기도 한다. 말의 노출증이다. 한마디로 따라가고 싶지 않은 인과因果이다.
인과에 오래도록 사로잡혀 있다 보면 건널목 출발선에 선 여린 숨결들을 감지하지 못한다. 여름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아이들의 검은 종아리, 허옇게 금이 간 임산부의 뒤꿈치가 전해주는 고단함, 제 표정을 삼킨 여학생들의 새하얀 교복에서 감지되는 생명의 열을 감지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들의 숨결로부터 다가오는 저녁을 어찌 감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면에서 시인은 이 인과를 앞서가거나 인과를 벗어난 종족이다.
인과를 따라가다 보면 영원히 ‘자신’에게 도착하지 못한다. 오늘도 나는 뒤척이지 않는 제 몸으로 타자들을 명확히 드러내는 부사처럼 존재한다.
때때로 옷을 갈아입는 시론
나에게 시론詩論이란 어릴 적 추억과 같은 추상적 존재다. 추억은 아련한 기억일 뿐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시적 대상이나 형상화의 길이 더 많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시론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논論이란 것이 다 그렇듯 나에게 정리된 시론은 이미 굳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같은 과거의 흔적이다. 그래서 굳이 나에게 시론이란 현재 진행형이고, 계속 진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시적 대상의 형상화에 따라 나의 시론은 때때로 전혀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렇다고 시론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의 완고함을 경계할 뿐이다. 시적 대상이 품고 있는 내재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에 알맞은 표현법을 구사한다. 어쩌면 내가 구사하기보다는 시적 대상이 드러내는 이미지가 구사하게 만든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그래서 내 시에는 때때로 묘사가 지나칠 때도 있으며 진술이 시의 주류를 이룰 때도 있다. 그것은 나의 문제이기보다 시적 대상이 품고 있거나 내가 드러내고 싶은 의미나 이미지가 시의 형식과 표현법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시인도 온전히 자유로운 존재는 아니다.
웃음이 유형이나 무형의 대상이나 그 비교에서 오듯 내 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자라는 대상에게 시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형상화의 방법이다. 비단 시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갈래가 그렇듯 작품은 적어도 두 개의 공적 기능을 가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 갈래에서는 정확한 언어의 구사가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상에 대한 형상화가 그것이다. 그러기 위해 모든 시인은 구체적인 서사적 사건을 통해 의미를 한정하기보다는 비유를 통해 의미가 더욱 확장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사적 에피소드도 훌륭한 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문도 열어두고 있다.
꽃의 이름을 바꾸다
저물 무렵은 누군가에게서 묻어오는 감정의 흔적들이다.
높은 담 이마 너머로 하나 둘 형광등 켜진다.
이제 막 화살나무의 작은 싹들이 돋아 오르고
아기 손톱만 한 연둣빛 감잎들
그 곁에 세 그루 적단풍의 연한 잎들이
내 뺨을 스치는 바람에 소리 없이 흔들린다.
낮은 담 너머 아가의 여린 손금 조심스럽게 펴지듯
잎맥 펼치는 무화과나무, 장손의 표정으로 말없이 서 있다.
자잘자잘 꽃잎 매달린 마을 어귀 팽나무에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무렵이다.
일흔 해 전 그날도 이랬겠다.
각지불 하나 둘 낮고 성근 돌담 너머로 번지며 켜졌겠다.
이제 막 화살나무 작은 싹들이 돋고
아기 손톱만 한 연둣빛 감잎들
그 곁에 적단풍 몇 그루의 연한 잎들이
보릿고개 넘기는 수척한 누이의 봄 뺨을 스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겠다.
바람의 길 너그럽게 풀어놓은 낮은 담 너머 무화과나무,
아기 손에 난 여린 손금 조심스럽게 펴지듯
잎맥 펴고 있었겠다.
캄캄한 밤, 불로 일렁이며 붉던 오름들도
저녁노을 아래 낮 동안의 고단한 표정 가라앉히며
침묵의 밤으로 깊어가고 있었겠다.
마을 어귀의 팽나무 자잘자잘 꽃잎 매달려 있었겠다.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날이었겠다.
성근 그늘에 꽃 핀 봄날 저물 무렵이었겠다.
간절함 없이 따라온 내 길 뒤돌아본다.
비어 있다.
먼 길 걸어온 얼굴들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듯
먼 길 걸어온 나무들의 길 뒤돌아보면 눈물이 스며 난다.
쭈그려 앉은 나무들 눈이 시리게 바라보고 있으면 새잎처럼 눈물이 돋는다.
그날도 백목련 개나리, 앵두꽃 벌써 진 봄이었겠다.
산 목련 피려면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하는 날이었겠다.
마을 가까운 머흘왓* 밭담 위
으름과 멍 덩굴에 성급한 꽃들 한창이었겠다.
오랜 밤 거쳐 온 길 다 옷 벗는 봄빛 새잎들 앞에서
꽃잎들 앞에서
내 말들이 저녁 물빛처럼 침묵한다.
저물 무렵의 나무들,
누구도 심문하지 않는 침묵의 밤으로 깊어가고 있었겠다.
*머흘왓 : 지면에 돌 따위가 박아지고 자갈이 많이 섞인 밭.
요즘 내 시 쓰기의 범주가 많이 달라졌다. 등단 이후 줄곧 개인적 실존 찾기와 소외된 타자에게 눈길 주기가 내 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몇 년 전부터 내가 발붙이고 사는 지역에 대해 눈길을 주고 그 역사에 대해 시적 형상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올해가 시로 등단한 지 20년이 되는 해지만 그동안 소설小說과 날 것의 생에 눈길을 돌리다 보니 시 작품에 몰두한 지 고작 몇 해가 되지 않았다.
많은 시인의 작품을 보면서 왜 이들의 작품에는 시인 자신이 사는 지역의 역사를 다룬 작품들이 보이지 않지? 하는 많은 의구심이 자주 들었다. 시 작품으로 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이 사는 지역의 역사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50여 년 제주 섬 땅을 빌려 살아왔기에 제주는 내 마음의 고향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이 섬에 사는 의미와 고마움, 그리고 글을 쓰는 시인으로 마음 한편에 항상 부채 의식이 남아 있었다. 물론 내가 사는 제주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는 20대부터 꾸준히 관심을 두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 땅의 노래에 대한 시편들은 부끄러울 정도로 적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주 역사에 대한 작품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관성을 벗어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시 작업에 제주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물을 끄적거리자 내 얼굴이 흐렸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떠오릅니다
누군가의 환생처럼 감나무 밑에 놓여 있던
전기밥솥의 낡은 내솥,
뜨거움을 다 내보낸 내솥 하나 자주 떠오릅니다
밥알 한 톨 남아 있지 않은 내솥이었습니다
누군가 한 날의 시간을 모두 지워버려
한낮이었는지 저녁 무렵이었는지,
아침나절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그곳이 무등이왓 방에*가 있던 자리,
뜨거움으로 마지막 숨을 멈추던 곳과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조차 잠복 학살하던 곳에서
뒤꿈치 살짝 들면 훤히 내려다보이는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보리 성출 공고판 들여다보며 내뱉던
순한 눈빛의 아버지 탄식 들리던 거리였습니다
광신사숙에서 아이들 글 읽는 소리 울담 너머 너머로
또랑또랑 들리던 거리였습니다
강귀영 씨 우영팟*을 빠져나온 비명들
선명히 들리던 거리였습니다
부끄러움 없다며, 제 밑바닥 상처 말갛게 다 드러낸 내솥에 말간 하늘 담겨 있었습니다
수면에 뜬 겨울의 빈 감나무 가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바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제 오래된 속 감추듯 누군가 나 몰래 옴츠리고 앉아 수면을 끄적거리는지 작은 파문이 일었습니다
말간 상처 위로 비친 내 얼굴 흐려졌습니다
이른 봄이었는지 연둣빛 감잎 하나 보이지 않던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방에 : 연자방아.
*강귀영 씨 우영팟 : 1948년 11월 15일 광평리에서 무장대 토벌을 수행하고 무등이왓에 들이닥친 토벌대들이 소개령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주민들을 집결시켜, 주민 10여 명을 팔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구타했는데 덜 맞아 육신이 온전했던 사람들은 도망을 쳤고 나머지는 모두 강귀영 씨 우영팟에서 총살당했다.
건너갈 수 없는 길 너머, 가보지 못한 낯선 숲이 어둠에 잠겨 있다.
*정찬일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죽음은 가볍다』, 『가시의 사회학社會學』. 제주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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