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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안은주/다시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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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안은주/다시 외1편
다시 외 1편
안은주
무엇을 추구하지 않는다.
봄에 사생아가 된 눈이 내린다. 눈이 갓 피어난 동백을 후려친다. 저만치 버렸던 체인을 찾아와 다시 차바퀴에 씌운다. 정적인 흰빛이 더 정적인 붉은 빛의 매개자 역할을 한다. 둘은 교차수분을 위해 서로 다른 시간을 뛰어넘는다. 입술의 슬픔처럼 얼어버린 동백은 허공에 멈춰 떨어지지 않는다. 지루함을 팽창시킨
말이 온종일 내게 내려앉았고
말이 내 몸 구석구석 흘러내렸고
눈은 계속 오고 동백은 더 붉다. 얼어붙은 차를 두고 길을 걷는다.
와락 젖어
변덕스러운 달 아래에서는 맹세하지 말라고 줄리엣이 말했다지. 봄만 되면 왜 연분홍 벚꽃은 미친년처럼 달 아래에서 예뻐질까.
그렇게 어두운색도 아닌 밤하늘 아래에서 반짝이는 푸딩처럼 부풀어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경계를 넘어가지 못한 밤, 슬픔을 못 이겨 뛰어내린 꽃잎을 잡겠다고 나는 왜 로미오처럼 무릎까지 꿇는 걸까. 내일의 비가 내리면 달빛이 아름다운 꽃잎을 뚫고 흘러내린다고 해도 돌아보면 벚꽃은 미친년처럼 웃고 있겠지. 사랑한다면 한참 동안 벚꽃의 달궈진 화상*에 맞아 죽어도 좋겠지. 그래 사랑한다면 저 벚꽃처럼.
*니체.
*안은주 2016년 《시인광장》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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