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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박단영/표절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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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박단영/표절 외1편
표절 외 1편
박단영
언 땅에다 뭔가 긁적이던 여자가 일어섰다
후드득, 뱁새 떼가 날아올랐다
몸속에선 꿈을 꾸는 듯 아이가 칭얼거리고
창 너머 새의 부리 같은 잎눈 조잘거린다
저 여자
산수유를 목련을 진달래를 필사하고
개나리를 벚나무를 아그배꽃눈을 필사하고
얼음장 덮인 강을 필사하고
초록의 바람을 필사하고,
너무 많은 각주 때문에
표절시비에 휘말릴 것이다
오래된 일간지를 뒤적거리며
뒤란으로 돌아간 햇빛이
촘촘한 주석을 다는 정오
수만 마리 애벌레들이
연둣빛 수액이 흐르는 버드나무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간지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얼굴이 수척해진 구름이 밤새 흰 외투를
벚나무가지에 걸어두고 유령처럼 사라졌다
봄이 편년체로 완성된다
자폐
늦은 밤 네가
후들거리는 다릴 끌고 들어왔어
턱관절을 우두둑거리며 나는
너를 빨아들이기 시작했지
문 밖엔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어디선가 따라붙은 역한 냄새
속이 쓰려와
붉은 안개 속
이 완고한 옹벽을 맨주먹으로 깨부술 거야
내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
달이 빠져나간 움푹한 자리를 들이받으며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물어 뜯을 거야
핏빛 흥건한 생각들이 나를 조롱하고 있잖아
사방연속으로 피어 있는
모란꽃잎들은 향기도 없이
칠흑 같은 허기로
나비들을 불러 모으고 있어
우글거리는 생각들을 모조리
뽑아 내동댕이칠 때까지
스스로 시지프스가 되는 길
전력을 다해 밀어내지만
더 센 힘으로 쾅쾅 못질하는
내가 되어버린 너는 무뇌아
우리는 온종일 캄캄하고,
*박단영 2017년 《다층》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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