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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김지헌/무뚝뚝한 제빵소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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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김지헌/무뚝뚝한 제빵소 외1편
무뚝뚝한 제빵소 외1편
김지헌
사는 일이 꼭 거창할 필요 없다는 듯
하루 분량의 반죽과 숙성에 정성을 다하는
무뚝뚝한 아저씨 혼자
종일 빵을 만드는 집
식빵 몇 가지와 치아바타가 전부인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은 듯한
이상한 빵집이 생겼다고 했더니
남편은 아마 그것도 상술일 거란다
그의 눈은 먼 곳을 보는데 왜 그것이 배후라고 생각할까
딸애도 아마 상술일 거라고 거들다가 한마디 던진다
엄마가 시인이라 그럴 거야
작은 빵집은 나날이 문전성시다
무엇이든 뒷면까지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가진 사람과
허공에서 떨고 있는 별들을 신의 눈동자라고 말하는 사람의
우격다짐을 저녁의 평화로 바꿔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우리 동네 무뚝뚝한 빵집아저씨
변함없이 구수한 이스트 향 반죽해
카바이트 빛 저녁을 빚어내고 있다
그게 상술이든 무뚝뚝한 정이든
오늘도 나는 빵이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툭, 톡
지상의 마지막 여행에 동반하는 소리
툭!
늙은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 허공에서 허우적대다 두 손 내려놓을 때,
골리앗크레인이 지구를 번쩍 들어 우주 한가운데 집어던지는 충격으로, 아니 늦가을 떡갈나무 잎사귀가 조용히 일생을 내려놓는 소리
얼마나 아팠을까
동백이 붉은 피 뚝 뚝 흘리며 순교하던 그 순간 우주의 단두대에서 투신하던 별들, 사랑에 신열 앓던 시절 맥없이 울고 웃던 연애라는 거
길 못 찾아 허우적대던 철없던 시절, 한없이 가벼웠던 사랑법이라니
꽃과 별이 조응하던 그 이치 못 알아보고 톡 톡 옮겨 다녔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둔 방안에서 두 팔 늘어뜨리고 홀로 떠나신 아버지는,
홀연히 투신하던 꽃과 별들은,
지나가는 구름을 불러 세워 물어본 들 대답해 줄 것인가 후다닥 뛰어가는 소낙비를 붙잡고 물어본들
툭! 의 씀씀이를 알 것인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소리
툭!
지금 반 발짝 앞에 걸어가는 당신의 어깨에 닿을 듯한
톡!
*김지헌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배롱나무 사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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