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70호/신작시/이영희/한 알의 약에 삼켜진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10회 작성일 19-06-25 12:32

본문

70호/신작시/이영희/한 알의 약에 삼켜진 외 1편



한 알의 약에 삼켜진 외1편


이영희



호주 뉴질랜드 여행길에 만난
가이드의 짧고 달콤한 혀
얼마나 귓바퀴를 은밀하게 파고드는지
주저할 사이 없이 카드를 꺼낸다


청정지역 1급수처럼 걸러준다는
혈관 청소 약은
남편과 함께 먹어야 해서 기백만 원
만병을 거뜬히 누르고 남을
면연력을 지녔다는 프로폴리스
온 가족 분량으로 백여만 원
일기 예보를 잘 맞추는 관절
시원하게 풀어준다는 푸른 홍합까지
망설임 없이 구입 품목에 넣는다


깔때기의 꼭짓점처럼 좁아진
혈관 훤하게 뚫리고
면역 세포들 활기를 되찾아 준다는 말에
쏟아 부은 카드 속 숫자
준비해간 지갑까지 활짝 열어
놓은 길 아무도 모른다


여행에서 돌아와 펼친 가방
아무리 뒤져도
시드니 야외음악당의 맑은 연주 소리
들리지 않고
뉴질랜드 초원을 뛰노는 양들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흑인가수의 입술처럼 튀어나온
카드 청구서
1년을 내리 갚아도
그대로 남아 있다
야금야금 작은 병을 잡아가던 약
끝내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킨다




안경



너를 들이대기만 하면
흐릿하고 안개 낀 세상
맑은 얼굴로 돌아올 것 같아서
너에게 초점을 맞춘다


네가 없는 세상에선
읽어야 할 책 속의
구불구불한 글자들
바르게 시야 속으로 몰아넣을 수 없다


너를 내 곁에 둔 날부터
아이의 눈처럼
맑은 눈망울에 담긴 세상
온통 초록색이다


차가운 얼음도 따뜻하게 만들고
구겨진 옷까지도
천연색 영국 소품으로
보이게 하는 따뜻한 세상


그 끝없는 왜곡 속으로
온전하게 던진 나를
누구도 모른다


어긋난 초점 밖
발톱으로 완강하게 붙들고 늘어진 세상
다 버릴 때
비로소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한 줄기 깨끗한 허상…




*이영희 2002년 《문학과세상》으로 등단.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