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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김효은/에덴산부인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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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김효은/에덴산부인과 외 1편
에덴산부인과 외 1편
―투어기
김효은
있잖아 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애아빠는 먹튀를 했다구요
당신이 키워줄 건가요
나라에서 애를 봐주나요
미혼모에게 고작
지원해주는 금액이 월 십만원인 건
알고나 하는 얘기에요
시설도 잠깐이죠
곧 퇴소해야 하는데
여관 달방이나 고시원에서 애를 키울 순 없잖아요
말 마요 국가에서 하는 개소리
결국엔 이 아이 수출밖에 더하겠어요
아니면 국내 입양을 권하겠죠
법으로 규제해도 소용없어요
포털 사이트에
인공 중절
검색만 해도
브로커들에게 쪽지와 메일이 수십통이 온다구요
초기일수록
수술도 간단하고 저렴하댔어요
상냥한 여의사가 말했어요
죄책감 갖지 말라고요
난황도 심장도 구체적으로는 생기지 않았다네요
수술대 위에 누워요
양다리를 벌리고 천장을 똑바로 보는 건
아무래도 제일 힘든 경험이에요
흡사 팔다리 다 잘린 채
뒤집혀서 한 자리만 빙긍빙글 돌다가
죽기만 기다리는
풍뎅이 같죠
비집고 나온 속옷처럼
날개가 마구 헤집어져 있죠
차라리 홈키파를! 하고
외칠지도 모르죠
아무래도 여러 모로
여의사가 나을 거예요
혈관을 잡은 후
조무사가 체중과 신장을 물어봐요
주사액 투입구를 응시하세요
천천히 떨어지는 방울 수를
세어 봐요
하나, 둘, 셋……
눈을 뜨면 회복실이에요
미역국 대신
3만원 5만원 9만원 하는
영양제는 선택 사항이에요
무난하게 5만원 짜리를 선택했어요
진통소염제를 처방 받아
거리를 나와요
부축 없이도 걸을 만하네요
저녁엔 갈비를 먹을 거예요
달걀 노른자에 사각사각한 희디흰 배를 잔뜩 썰어 넣어
통깨와 참기름을 뿌려 야무지게 무친
육회도 한 접시 먹으려구요
에덴이 별 건가요
지옥에서 벗어나면 에덴이죠
오늘부로 전 에덴 시민권자가 됐어요
친절한 의사의 범법정신과
그리고 내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
내 자궁이 국가 기관 소속은 아니잖아요
보호자 동의는 필수인데
사정 잘 말하면 그냥도 해주더라구요
참, 결제는 현금만 되는 거 알고 있죠?
129를 아세요
129를 눌러본 적이 있나요
119랑 같아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응급 전화예요
마음에 머리에
심장에도 불이 나거든요
잊고 싶은 기억이 많다고요
빚이 많다고요
아 그런 조건들은 아무래도 가연성이 높죠
게다가 지독한 유독가스를 유발하며
삽시간에 활활 타오르죠
129를 눌러본 적 있나요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유성펜으로 적어
지갑에 넣고
다녀본 적 있나요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성수대교나 영동대교
마포대교 위를 걸어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처음으로
당신의 구두와 지갑을
의식하게 될 거예요
추레하게 입었다면
그것 역시 곤란하죠
당신은 난간에 기대어
검푸른 강물의 물살을 보며
신발을 벗었다가 신었다가
해본 적이 있나요
핸드폰을 만지작 만지작
다 새벽에 전화할 때가 마땅히 없었겠죠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로
꿀꺽 마른 침을 삼킨 적이 있다구요
아 아 그런 때일수록 침착하게
129를 눌러요
공중 화장실에 붙은 스티커
신장거래 무모증 치료
이런 번호 말고요
129요
당신은 희망의 전화
129를 기억하세요
당신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이미 태어난 이상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교회에 나가 볼래요
절에 가 볼래요
죽어 죽어 죽어
이미 환청이 들린다고요
동의해줄 보호자가 없다구요
시장 군수 구청장 입원이나
자의입원이란 것도 있는데
입원해서 집중 치료를
받아보는 건 어때요
병원비가 문제라면
그것도 상담해서
해결 가능해요
365일 24시간 상담 가능하다구요
번호가 어렵다구요
서울 경기라면 다산콜도
아니면 119나 112라도 상관은 없어요
당신, 129를
검색해 본 적이 있나요
*김효은 200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0년 《시에》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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