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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이선균/잎샘추위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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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이선균/잎샘추위 외1편
잎샘추위 외1편
이선균
야간열차 타고 떼지어 달려와
눈뜨는 연둣빛
호흡 가다듬는다.
대지의 에너지를 모아
내 안의 기운까지 뒤져
만 배가 넘는 돌무더기 밀어 올린다.
땅의 근육이 풀리는 계절
박자를 맞출 수가 없다.
꽃샘보다 더 매서운 잎샘
강물도 뼈가 시려 비늘을 턴다.
헤아릴 수 없는 박자
월요일, 너 그거 아냐? 내가 장기를 잘 둬 무형문화재 된 거 말이다아! 원 살다 살다 별 일도 다 있구나. 정부에서 월급도 준다지 아마. 언제들 오려무나, 소고기 실컷 구워먹게.(장기가 아니구요, 아버진 ‘메나리 노래’ 무형문화재잖아요.)
화요일, 얘야, 내일부터 주간보호센턴지 뭐시깽인지 나 안 다닐 테니 그리 알거라! 무형문화재구 나발이구 다 필요 없다! 죄다 병충이들만 있구 치매는 전염된다는데 치매 걸린 사람도 있구. 아 나는 논밭도 돌봐야 하구 할 일이 맬간인데 우두커어니 여기서 뭐하는 짓이냐 이게! 전화로 긴 말 할 것 없다. 그만 끊자.
수요일, 너 지금 테레비 보구 있냐? 어떤 여편네가 내 노래 부르는 거 말이다! 아아 글쎄 ‘백세 인생’*은 내 노랜데 내 허락두 없이 저렇게 막 불러두 되는 거냐? (저도 잘 모르겠네요. 경찰에 고발할까요, 아부지?) 그럴 것까지는 없구 그냥 좋게 처리하거라.
금요일, 아휴으 하루가 너무 지루하구나아. 어디 늙은이들 좀 있나 알아보려엄. 말동무할 사람 좀 찾아 여기로 보낼 줄 수 없겠니? 장작 팰 거라도 있으면 좋겠구나. 왼종일 우두커니 여기가 감옥이지 뭐니.
토요일, 잘들 지냈니? 날도 꾸물꾸물 돌아가신 느이 할머니가 보구 싶구나, 우리 엄마……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지.
전화기를 붙잡고 아버지 우시네.
울음이 그칠 때까지 아무 말 못 했네.
*가수 이애란의 노래.
*이선균 2010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 『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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