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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전장석/수색역을 지나며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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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전장석/수색역을 지나며 외1편
수색역을 지나며 외1편
전장석
수색은 내 스무 살 무렵의 간이역
버스가 난지도에서 심하게 울렁거릴 때
세상의 모든 쓰레기가 숨을 쉬고
깨끗한 이별을 위해
우리는 주저없이 그곳을 통과했지
회색의 역사驛舍를 빠져나온 사람들
까만 먼지들로 새처럼 날아가고
새들은
붉은 하늘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비만 오면 온통 물바다라 물빛골마을
가난 때문이 아니라는 듯
작은 상점이며 채소밭이며 골목들이
순순히 물길을 내어주곤 했지
물이 다시 빠지면 온통 뻘밭이었다
발이 느린 노을이 어기적어기적 빠져나가고
무채색의 달이 밤새 상처를 어루만지면
마지막으로 고향마을을 떠났던 사람들
새떼가 되어 돌아와 젖은 군무를 펼치곤 했다
물이 빚은 동네, 물의 형상을 기억하느라
아직 물색이 남아있는 대장간과 이발소와 그리고
몇몇 낡은 입간판들
고속의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수전증手顫症을 앓고 있다
흑석동 비사秘史
강물을 깔때기처럼 옥죈, 유배지같은 지형地形이다.
가난도, 낯설음도 희게 빛나던 흑석黑石이라는 동네
그래 비만 오면 잠기던 게 어찌 가구뿐이랴 비릿한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까맣게 젖은 얼굴과 집장촌이 접두사로 떠오르던 연못시장, 사타구니가 대책 없이 무너지던 게 어찌 철철 넘쳐 흐르던 젊음뿐이랴
사과궤짝만한 어둠을 실어나르던 언덕길 리어커
절뚝거리던 서달산 자락 아래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다는 봄날
젓가락 장단질이 서툰 열아홉 살 순이는
명수대 벼랑으로 달려간 진달래꽃
진달래꽃
뻐꾸기 울음소리 왜 설움인지
해마다 왜 물바다로 허우적거려야 하는지
막걸리집 흐린 유리창가에 미처 인화하지 못한
그날의 흑백사진들
얼룩진 눈물 삭아 반쯤 내려앉은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검은 돌들로 씻겨내려간 날들
노을 속에서 오랫동안 훈제한 기억이 있다
*전장석 2011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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