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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박봉희/낙법 익히기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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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박봉희/낙법 익히기 외1편
낙법익히기 외1편
박봉희
거의 죽은 나무
이끼 낀 나뭇가지에 꽃이 폈다
나무는
나무야, 나무에게로 돌아가라,
제 안의 검은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제 영정에 망각의 꽃을 바친
나무는
나무에게로 돌아가서
나무가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귀로 읽는 귀거래사
귀는 모서리로 귀결되는가
살면서 피해갈 수 없는 모서리
아슬아슬한 난간인 듯 누르고 문지른다
그것에 피가 돌 즈음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계단 모서리에 귀가 찢기고 떨어져나가 붕대를 감고 있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우유 배달, 요양원 간병, 식당 설거지로 전전하던 친구는 정신없던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자궁, 쓸개, 위를 하나씩 절제했다 모서리를 모서리로 들이받아 액땜한 얼굴에 피 말려 각축한 해골 같은 고흐 자화상이 걸려 있다
귀와 모서리의 함수 관계가 성립되는 날
귀는
와전되어 들려오는 욕
살기 위해 깎아내는 뼈
한때 도연명이 몸 담았던 세상으로 우뚝 섰다
어느 날 민감해진 귀를 단발로 가리고 다니는 내 앞에
숏커트 한 친구가 나타났다
이목 끌던 두루뭉술한 귀를 환하게 드러내고
*박봉희 2013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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