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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최세운/어물전서魚物廛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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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최세운/어물전서魚物廛書 외 1편
어물전서魚物廛書 외 1편
최세운
타륜舵輪에 도넛이 걸렸느냐
그는 사람을 낚는 어부, 짝짝이 장화를 신은 선장이라네 애꾸눈이라는 말도 있고 선창에서 갈고리 왼손을 직접 봤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문 속엔 모래만 무성 한 가지 분명한 건 흰색 가운을 입고 신기新奇와 신기神氣를 부리는 단발머리 미숙련공이라는 거 일할 때 웃지 않는다는 점이네
서부시장에서 가스통을 매단 아파트까지 수심 이만 리는 족히 될 터인데 그는 전깃줄을 감으면서 오네 수신호도 없이 오백 촉짜리 집어등을 켜고 그물 한 채를 던지는데 연탄이 없어지고 화장실 타일이 자주 깨지는 걸 보면 헛그물질만 하는 모양 한밤중에 가래 뱉는 소리와 채찍질 소리 들리네
엄마는 뚱뚱하고 형은 집을 나갔고 나는 피라미였으니 걸린 건 아빠 팽팽한 그물코가 머리에 닿을 때 아빠의 입속에는 소금물이 차네 그물을 끌어안고 엎드리지만 펄떡 뒤집히네 애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사정해도 방생일어放生一魚의 기적은 없네 최서방, 살 만하니 가네 이웃들은 발을 모으고 할머니는 몸 안에 머리를 넣고
아빠는 일요일에 당겨지네 발목을 잡았는데 뱃놈의 손아귀는 얼마나 센지 찬송가 사절 후렴구 같네 친척들이 아빠를 더 불러보라고, 아빠 손을 더 잡아보라고 해도 새 그물은 새 부대에 담는 법 그는 선상수훈船上垂訓 떡밥 하나를 물 위로 던졌고
시장에 가면 얼음 속에 아빠 한 마리
가라사대 눈 뜨고 죽는 동태라네
모노레일
바다의 귀에서 이른 비가 내렸다 바다는 한쪽 뺨을 수면에 대고 입술을 터트렸다 내일이 길어진다고 했다 레일이 끝없이 길어진다고 했다 바다의 먼 곳에서 조등을 켠 얼굴들이 부유했다 계속 밀려오는 믿음을 보고 있었다 이불에 젖지 않는 확신을 가져야 했다 병든 양이 길 위에 나와 있었고 누구도 흘러가는 바다 앞에서 울지 않았다 절벽으로 입을 막은 여자는 목이 길어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안개 속으로 걸어갔다 늙은 성자와 연인만이 해변에 앉아 헤어지기로 했다 모든 신발을 벗고 잃어버리기로 했다 바다가 숨을 모아 간절한 이름들을 부를 때 양철 지붕으로 만든 방주들이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최세운 2014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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