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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고전읽기/권순긍/제어할 수 없는 세속적 욕망, 그 질주와 머뭇거림―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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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355회 작성일 19-06-2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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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고전읽기/권순긍/제어할 수 없는 세속적 욕망, 그 질주와 머뭇거림―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



제어할 수 없는 세속적 욕망, 그 질주와 머뭇거림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


권순긍



인생은 뜬구름처럼 헛된 것인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욕망’의 문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에 저촉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 모든 행동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물론 공동체의 가치와 종종 충돌을 빚기도 하지만) 지하철에서 젊은 남녀의 애정행각을 목도하곤 하지만 그렇게 눈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저들이 저렇게 좋다고 하는데 어떻게 뭐라고 하겠는가.
이제는 먹고 사는 형편이 나아지면서 욕망의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자리하고 있다.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거대담론이 해체된 그 자리에 개개인의 욕망이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우리에게 얘기한다. “지난 날 우리는 너무 도덕적이고 경직되게 살아온 것이 아니냐?”고. 과연 우리는 혼란스러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구운몽九雲夢』은 17세기에 이미 이런 세속적 욕망과 도덕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 작품이다. 우선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가) 육관대사의 수제자 성진이 불도에 정진하다가 8선녀를 만나면서 번뇌에 사로잡혀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부러워하였다.
(나) 꿈속에서 양소유로 태어나 8선녀가 화한 2처 6첩을 거느리고 최고의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다가,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불문에 귀의하고자 했다.
(다) 꿈에서 깨어난 성진은 인생의 부귀영화가 허무한 것임을 깨닫고 다시 불도에 정진했다.

이상의 줄거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우선 “세속적 욕망은 애초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인생의 무상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교에 귀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운몽』이란 제목도 “화려한 인생이 결국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하며(성진과 8선녀가 결국 9개의 구름인 셈이다.), 주인공인 성진性眞이나 소유少遊라는 이름 역시 ‘참된 성품’과 ‘잠깐 노닐다’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구운몽』은 당시 독자들에게 한평생의 온갖 부귀영화도 잠깐 놀다가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인생의 바른 길은 결국은 참된 성품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일깨워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는 양소유의 삶이 참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보조장치에 불과한 것인가는 여러모로 의문이다. 우리가 인생을 산다는 것이 과연 도사나 승려처럼 도를 닦아 어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어쩌면 요즘 ‘욜로YOLO’가 말하듯 한번뿐인 인생을 즐기며 잘 살기 위함인가?
우선 작품의 대부분(총 16회 중 14회)을 차지하는 것이 남악 형산衡山 연화봉의 세계가 아니라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세속적 욕망의 실현에 할애되고 있으며 작품에 나타난 현실의 세계가 오히려 꿈과 같고 꿈의 세계가 현실처럼 드러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매트릭스Matrix』처럼 꿈의 세계가 곧 인간이 사는 세속적 세상의 모습이고 현실의 세계가 오히려 인간 세상이 아닌 연화봉의 초월적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기에 현실 세계에서 마음껏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구운몽』이 내세우는 진정한 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속에서의 욕망이 허망하다는 것은 작품의 결말에서나 강조되어있을 따름이고, 부귀를 획득하고 애정을 성취하는데 더욱 절실한 관심을 보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본다면 실상 『구운몽』의 초점은 깨달음보다는 세속적 욕망의 추구에 맞춰져 있어 보인다.
『구운몽』의 세계로 들어 가보면 우선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스승을 대신하여 동정용왕에게 답례를 하고 돌아오던 성진이 봄날 석교石橋 위에서 8선녀를 보고 정신이 산란하여 번뇌에 들게 되는 과정은 그 세속적 욕망추구의 고민을 잘 설명하고 있다.

남아 세상에 나 어려서 공맹孔孟의 글을 읽고 자라 요순堯舜 같은 임금을 만나, 나가면 장수되고 들어오면 정승이 되어, 비단 옷을 입고 옥대를 띠고 옥궐에 조회하고 눈에 고운 빛을 보고 귀에 좋은 소리를 듣고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고 공명이 후세에 드리움이 또한 대장부의 일이라. 우리 부처의 법문은 한 바리 밥과 한 병 물과 두어 권 경문과 일백 여덟 날 염주뿐이라. 도덕이 비록 높고 아름다우나 적막하기 심하도다.(서울대본, 현대역 필자, 이하 같음)

불도에 정진하는 성진이 고민하는 것은 공맹의 글을 읽어 출세하고자 하는 ‘유가적 출세’ 욕구다. 불제자인 성진이 세속적 출세를 꿈꾸고 있으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제어할 수 없는 세속적 욕망의 세계를 마음껏 추구하기 위해 꿈이라는 장치(‘환몽구조’)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질주하는 세속적 욕망의 세계
그러면 『구운몽』은 세속적 욕망의 세계를 어떻게 질주해 갔던가?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 축은 “나면 장수 되고 들면 정승 되어 비단 옷을 입고 옥대를 띠고 옥궐에 조회하는”출장입상出將入相의 유가적 출세의 길이다. 15세에 집을 떠나 과거에 장원 급제하고 한림학사를 시작으로 벼슬이 계속 올라 병부상서를 거쳐 승상에 이르며, 오랑캐가 침입했을 때는 대원수가 되어 이를 토벌해 결국 황제의 매부로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짐으로써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上 萬人之下’의 최고 지위를 누리게 됐던 것이다.
다른 한 축은 석교에서 만났던 8선녀의 현신인 여덟 여자와 차례로 인연을 맺어 2처 6첩을 거느리고 “눈에 고운 빛을 보고 귀에 좋은 소리를 듣는” 애정추구의 길이다. 이 두 가지의 욕망이 하나로 모아지는 지점에서 바로 상층 사대부들이 염원하는 ‘가문창달’의 꿈을 발견할 수 있다. 곧 2처 6첩을 거느려 성대한 가문을 이르고 최고의 지위를 누리며 복락을 추구하는 삶으로, 그야말로 꿈에서나 가능한, 완벽하게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소설이 무엇인가? 『아리비안나이트』의 세라자데sherazade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엮어가듯이 결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디테일이 재미를 주는 것이다. 『구운몽』 역사 여덟 명의 신분이 다른 여자들에게 각기 개성을 부여하고 양소유와의 결연 방식 또한 다양하게 이야기를 구성함으로써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묘미를 보여주는데, 우선 여덟 여자들과의 만남을 정리해 보자.

① 과거 보러 가는 길에 화주 회음현에 이르러 진어사의 딸 진채봉과 눈이 마주치고 사랑의 시를 주고받는다.(秦彩鳳)
② 낙양 공자들의 잔치 자리에서 기생 계섬월을 만나 그녀의 집에 묵는다.(桂蟾月)
③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정사도의 딸 정경패와 정혼하다.(鄭瓊貝)
④ 정경패의 몸종인 가춘운을 취하다.(賈春雲)
⑤ 연燕나라 사신 다녀오는 길에 계섬월의 친구인 기생 적경홍을 만나다.(狄驚鴻)
⑥ 황제의 여동생 이소화가 양소유에게 마음을 두어 낭군으로 삼고자 하다.(李簫和)
⑦ 토번吐藩을 토벌하러 갔다가 자객으로 왔던 심요연을 만나다.(沈裊烟)
⑧ 꿈속에서 음병을 물리치고 동정용왕의 딸 백능파와 인연을 맺다.(白凌波)

가장 먼저 과거보러 가는 길에 눈이 마주쳐 사랑의 약속을 나눈 여자는 진채봉이지만 난리가 나는 바람에 만나지도 못하고 헤어지고 만다.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양류사楊柳詞」라는 시를 주고받은 것이 전부였다. (아쉬운 첫사랑은 그 뒤에 묘하게 이어진다.)
다음에 만난 여자는 낙양의 명기인 계섬월이다. 낙양의 공자들이 계섬월과 더불어 시를 짓고 우열을 가리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흥이 오른 양소유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시를 짓고 마침 그 시가 계섬월에게 선택되는 행운을 얻는다. 낙양 공자들의 눈치가 수상해 자리를 피하려는 양소유에게 오히려 계섬월이 다가오더니 “다리 남쪽 분장한 누각 밖에 앵두꽃이 만발한 집이 첩의 집이오니, 낭군께서는 먼저 가셔서 첩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기다리던 계섬월과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고 진채봉의 일을 비롯하여 천하의 명기들에 관한 얘기도 주고받으며 규방의 여자 중에 정사도의 딸인 정경패를 찾아보라는 조언까지 듣는다. 풍류남아 양소유에게 드디어 여복이 터져 운우지정을 나누었던 여자가 오히려 다른 여자까지 소개하는 행운을 얻는다.
그런데 노류장화路柳墻花 신세인 기생들은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명문가의 규수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모친이 특별히 자청관紫淸官의 도사로 있는 사촌에게 배필감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정경패며, 기생 계섬월이 천거한 여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풍류남아 양소유는 결혼할 여자를 직접 보겠다고 여도사로 변장하고 찾아가 거문고를 연주하며 음률에 능통한 정경패와 대면하게 된다. 그런데 진도가 너무 나가 버렸다. 양소유가 한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문군卓文君을 유혹했던 「봉구황곡鳳求凰曲」을 타자 정경패가 깜짝 놀라 거문고를 타는 여도사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남자의 모습이 아닌가? 정경패는 모욕을 당했다고 여겨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피했고, 자연 첫 대면은 그렇게 끝났다. 뒤에 장원급제한 양소유는 정사도의 구혼을 받아들여 정경패와 정혼하고 사위로 그 집에 머물게 되는데, 정경패는 ‘거문고 사건’으로 양소유를 꺼림칙하게 여기지만 오히려 장인은 양소유의 일을 듣더니 풍류가 있다며 좋아한다.
양소유의 이런 기질은 정경패의 몸종인 가춘운을 취하는데도 적극 작용된다. 혈기왕성한 풍류남아가 처갓집의 별당에 홀로 기거하고 있는데 이를 딱하게 여긴 정혼녀가 자신은 혼인 전이라 할 수 없으니 미리 몸종인 가춘운을 첩으로 보내 남편 될 사람을 보살피게 하자고 하여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성사된 것이다. 정경패는 거문고 사건을 설욕하고자 우선 가춘운을 선녀로 변장시켜 양소유를 유혹하게 하여 풍류남아 양소유가 선녀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게 하였다. 그리고 사촌 십삼랑이 어느 무덤에서 양소유가 선녀에게 써준 사랑의 시를 찾아 양소유가 귀신과 잠자리를 하고 있음을 알게 한 다음 부적을 사용하여 귀신이 오지 못하게 하여 오매불망 여귀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양소유로 하여금 그 간의 일을 실토하게 한 다음 장인이 귀신을 불러오게 하겠다고 병풍 뒤에서 가춘운이 나타나게 한 것이다. “사람이냐, 귀신이냐?”고 놀라는 양소유에게 장인이 “내 이제 진실을 말하겠네. 이 여인은 신선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라네. 우리 집에서 경패와 함께 사는 춘운이라네. 요사이 자네가 화원에서 매우 외로울 것 같기에 춘운에게 먼저 모시도록 한 것이라네.”고 그간의 사정을 알려주었다. 정혼녀가 기획하고 장인이 주도하여 처가살이하는 풍류객 양소유에게 가춘운으로 하여금 먼저 첩이 되도록 배려(?)한 것이다. “춘운은 새신부로 말석에 앉아 있다가 날이 저물자 초롱을 들고 양소유를 모시고 화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하북河北의 명기 적경홍을 얻게 되는 과정 또한 흥미롭다. 양소유가 사신으로 연燕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미소년이 양소유를 쫓아와 거두어달라고 부탁해 같이 낙양을 지나게 됐다. 마침 과거 전에 만나 인연을 맺었던 계섬월을 찾아 그 집에 묵는 중에 미소년과 계섬월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손을 맞잡고 회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서 물어보니 그 누이와 친한 관계로 얘기를 나누었다고 둘러댔다. 밤이 되어 계섬월과 회포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날 밤에 계섬월과 더불어 촛불 아래에서 옛말을 이르며 연하여 여러 잔을 마시고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나아가니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더니 아침 해가 동창에 비친 후 양소유가 바야흐로 머리를 들어보니 계섬월이 먼저 일어나 거울을 대하여 연지와 분을 바르고 있었다. 놀라 일어나 자세히 보니 푸른 눈썹과 맑은 눈과 구름 같은 귀밑과 꽃 같은 보조개며 가는 허리와 약한 태도 종종 계섬월과 비슷해 보였지만 다만 계섬월이 아니었다. 양소유가 크게 놀라 누군지 측량치 못하였다. …… 홀연 계섬월이 밖에서 들어와 양소유에게 이르되 “상공께서 새 신부 얻으심을 하례하나이다. 첩이 전일 하북 적경홍을 천거하였더니 첩의 말이 어떠하나이까?”

계섬월이 자신의 친구였던 하북 명기 적경홍을 양소유에게 소개하는데, 그것이 마침 잠자리에서 이루어졌으니 기생다운 발상이랄까? 인연치고는 기묘한 인연이다. 어쨌든 두 명의 명기들은 모두 양소유를 따르기로 마음을 먹는다.
양소유와 인연을 맺는 여자 중에서 가장 어렵게 이루어진 인물이 황제의 여동생인 난양공주 이소화다. 공주가 어떻게 해서 양소유와 인연이 맺어지게 됐는가? 발단은 이렇게 시작됐다. 양소유가 퉁소를 불면 청학이 내려와 춤을 추곤 하는데, 마침 난양공주도 그러하여 두 사람이 서로 인연이 있다고 여겨 황제가 친히 불러 그 재주를 떠보고 태후도 잘생긴 양소유를 보고 좋다고 하여 황실과의 혼사가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경패였다. 양소유가 이미 정혼한 몸이어서 할 수 없다고 황실과의 혼사를 물리치자 태후는 진노하여 옥에 가두라 명했다. 정경패의 집에서는 황제의 명이라 어쩔 수 없다고 낙담해 있고, 양소유의 첩으로 있던 가춘운마저 정경패와 죽고 살기를 같이 한다며 양소유를 떠났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 이소화와 혼인할 수도, 정경패를 취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것을 삼각관계라 했던가? 통속 드라마에서는 이 경우 둘 중 하나가 죽거나 어디로 사하져서 자연스럽게 남은 인물과 맺어지게 된다. 둘을 다 살릴 수 있는 윈윈의 방법은 없을까?
『구운몽』에서는 기막힌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토번(지금의 티베트)이 장안을 침범하여 들이치자 황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옥에 갇힌 양소유를 풀어주고 ‘병부상서 정서대원수’로 삼아 토번을 치게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도 풍류남아 양소유는 자객 심요연과 인연을 맺는다. 토번의 자객으로 양소유를 죽이려고 왔던 여자가 오히려 양소유와 인연이 있어 칼을 던지고 양소유의 품에 안기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심요연은 원래 양주楊州의 여자로 자신과 인연이 있는 대당국의 귀인을 만나고자 자객을 자처해 온 것이다. 병영에서 자신을 죽이러 온 자객과 신혼의 잠자리를 가졌으니 그 기분이 어떻겠는가. 『구운몽』에서는 “이 밤에 양소유가 심요연과 더불어 장중에서 잠자리를 같이 하니 창검 빛으로 신혼 촛불을 대신하고 병영의 북소리로 음악을 삼아 진영 가운데 달빛이 뚜렷하고 옥문관玉門關 밖에 봄빛이 가득하였으니 한 조각 각별한 사랑이 깊은 밤과 비단 장막에서 지날 듯하였다.”고 그 정황을 묘사했다.
그런데 전쟁 통에 심요연만 만나게 아니다. 토번을 물리칠 계책을 생각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양소유의 삶이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꿈속에서 또 꿈을 꾼 셈이다.) 동정용왕의 딸인 백능파를 만나 그를 겁박하는 남해 태자를 혼내주고 동정용녀를 취하기도 한다. 백능파는 말하자면 인어공주인 셈인데 남해 태자에게 핍박을 당해 그녀가 피신한 반사곡의 물이 얼음지옥처럼 되어 다른 곳의 물고기들이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 방어막을 친 것인데 마침 자신의 인연인 양소유를 만나자 그 맺힌 한이 풀어져 물이 순해져서 양소유의 군사들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토번과의 전쟁 중에 난양공주 이소화와 정경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양소유가 황실의 청혼을 물리친 것에 자존심이 상한 난양공주는 도대체 정경패가 어떤 여자인가 알아보고 싶어 궁궐을 빠져나와 저자거리에 방을 얻고 수를 놓아 그것이 정경패의 손에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수놓은 족자를 매개로 서로 왕래하며 상대방의 용모와 재주에 감탄해 의형제를 맺으려고까지 하였다. 이소화는 양소유와 같이 살고 있는 가춘운까지 보고 ‘춘운을 직접 보니 이름보다 더 아름답구나. 양상서가 총애함이 당연하다. 주인과 종이 저렇게 아름다우니 양상서가 어찌 버리려고 하겠는가.’는 생각에 이른다.
마침 이소화가 급히 떠날 일이 있어 수놓은 관음보살상에 정경패의 글씨를 받자고 초대했는데 정경패가 도착하자 궁궐의 내관과 군사들이 들이닥쳐 그들을 호위해 궁궐로 데려갔다. 태후가 정경패를 직접 보고자 함인데 그 재주와 미모에 감탄한 태후는 정경패를 양녀로 삼아 영양공주에 봉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양소유의 부인으로 보내고자 했다. 말하자면 정경패를 공주에 봉함으로써 두 사람 모두 양소유와 결혼할 수 있는 윈윈의 길을 마련한 것이다. 양소유는 변방에서 심요연과 백능파를 취해 전생의 인연을 맺고 있을 때 장안에서는 이런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양소유와 정혼한 여자인 정경패가 영양공주가 됐으니 전의 정경패는 없어진 셈이다. 이 부분에서 태후의 요청으로 정경패가 죽었다고 거짓 유언을 전하여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뒤에 양소유는 황실의 청혼을 거절할 수가 없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공주가 둘이라 영양공주 정경패를 제 1부인으로(물론 양소유는 영양공주가 자신과 정혼한 여자라고 아직은 알지 못한다), 난양공주 이소화를 제 2부인으로 삼아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기에 이른다. 여기서 첫사랑인 진채봉은 난양공주의 궁녀로 있다가 양소유의 첩으로 봉해진다. 세 명의 여자와 동시에 결혼한 셈이다.
처가살이를 할 때 양소유의 첩으로 관계를 맺었던 가춘운은 어찌 되었는가? 정경패가 죽었으니 당연히 의리를 지켜 양소유를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양소유가 영양공주가 정경패가 아닌가 여겨 닮았다고 한 것이 사단이 되어 공주들이 양소유를 거부하고 진채봉도 거기에 가세했다. 무료해진 양소유는 궁궐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영양공주 방에서 가춘운과 같이 네 여자가 모여 주사위 놀이를 하면서 예전 일을 얘기하는 것을 보고 영양공주가 정경패임을 알아차렸다. 이제는 양소유가 속일 차례다. 정경패의 혼령이 왔다고 헛소리를 하여 영양공주가 자신이 정경패라는 실토를 받아내고 가춘운도 다시 첩으로 맞이하게 된다.
그러면 다른 네 여자들은 어느 계기에 합류하는가? 양소유는 벼슬이 승상에 이르자 이제는 어머니를 모셔와 같이 살고자 하여 어머니를 위한 헌수연獻壽筵을 열게 되었는데 그때 기생인 계섬월과 적경홍이 나타나 자리를 빛내주었다. 그런가 하면 황제의 동생이자 양소유의 처남인 월왕과 낙유원에 모여 미색과 풍악을 겨뤄보자는 낙유원 잔치는 두 집안의 미색과 풍악이 총동원되어 화려하게 펼쳐졌는데, 때마침 심요연과 백능파가 도착하여 양소유 집안이 월궁을 제압하게 된다. 이제 드디어 8선녀가 화한 여덟 여자가 다 모여 양소유를 중심으로 한 가정을 꾸린 것이다.
그런데 8명의 여자들이 서로 질투하거나 다투지도 않고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어찌 보면 양소유를 중심으로 8명의 여자가 결합하여 거대한 가문을 형성하는 것이 너무 남성중심적인 설정이 아니냐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여덟 명의 여자들은 인연을 맺을 때는 양소유를 중심으로 모였지만 8명이 다 모이고 난 뒤에는 양소유와 별도로 그들만의 ‘패밀리’를 형성한다.(이 놀라운 반전!) 자신들의 패밀리를 결성하면서 그들은 관음상 앞에 이렇게 맹세까지 한다.

유 모년 모월일, 제자 정경패, 이소화, 진채봉, 가춘운, 계섬월, 적경홍, 심요연, 백능파는 삼가 관세음보살님께 아룁니다. 저희 여덟 사람은 비록 다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라서는 한 사람을 섬기게 되었으며 마음은 서로 하나입니다. 마치 한 나무에 달린 꽃이 바람에 날리어 어떤 것은 구중궁궐에 떨어지고(이소화; 필자 주), 어떤 것은 규중에 떨어지고(정경패), 어떤 것은 시골에 떨어지고(진채봉/가춘운), 어떤 것은 길거리에 떨어지고(계섬월/적경홍), 어떤 것은 변방에 떨어지고(심요연), 어떤 것은 강남에 떨어졌으나(백능파) 그 근본을 따지자면 어찌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오늘부터 맹세컨대 형제가 되어 죽고 살고 괴롭고 즐거운 모든 것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혹시 다른 마음을 품은 자는 천지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관음보살님께서는 복을 내려주시고 재앙을 제거해 주셔서 백년 뒤에 함께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무슨 조폭들이 패밀리를 결성하듯이 다른 마음을 품은 자는 천지가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위로는 공주로부터 아래로는 천한 기생에 이르기까지 8명의 여성들이 그들만의 결사를 만든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도원결의桃園結義’처럼 그런 거창한 결의식을 거행한 것이다. 그래서 『구운몽』은 여성비하가 아니라 페미니즘feminism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기도 하다. 중세 봉건시대 여성들만으로 이런 세계를 만드는 것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여성들만의 세계를 그린 네덜란드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을 연상시킨다. 『구운몽』은 중세 사대부 남성들의 이상이기도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한국판 중세 페미니즘의 이상을 그린 것이 아니겠는가. 

성진과 양소유, 어느 것이 거짓이고 어느 것이 진짜인가
양소유는 이제 중세시대 사대부 남성들이 소망하는 모든 이상을 성취하였다. 최고의 벼슬에 최고의 가문을 형성한 것이다. 김만중이 모든 영화를 잃고 죄인의 신세로 전락한 선천宣川 유배시에 『구운몽』을 지었다는 사실은 꿈을 통해서 자신이 바라는 가문창달의 소망을 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을 잃은 자만이 진정 꿈을 꿀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말 꿈으로나 가능한 세계를 『구운몽』은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욕망추구의 최대치에서 양소유는 돌연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처럼 욕망의 극한까지 가 봤기 때문에 느끼는 것일까? 아무래도 애초 성진의 회의와 비교해 보면 절실함이나 필연성이 약화되어 있다. 수많은 영웅들의 무덤을 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삶의 허무를 느낀 것이다. 오랜 회의와 번민의 과정을 거친 것도 아니고 삶의 무상감을 느낄 만한 필연적 동기도 제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속적 욕망을 다 충족한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위장된 제스처처럼 보인다. 온갖 영광을 다 누린 솔로몬 왕이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고민의 정황을 『구운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 양소유는 본디 회남 땅 베옷 입은 선비라 성스러운 천자의 은혜를 입어 벼슬이 대장군과 재상에 이르고, 여러 낭자 서로 따르는 은정은 백년이 하루 같아 전생의 오랜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모두 인연이 다하면 각각 제 갈 곳으로 돌아감은 천지에 떳떳한 일이라. 우리 백년 후 높은 대 무너지고 굽은 못이 이미 메이고 노래하고 춤추던 땅이 이미 변하여 거친 언덕과 쇠한 풀이 되어 나무꾼과 목동이 오르내리며 탄식하여 가로되, ‘이것이 양승상이 여러 낭자와 더불어 놀던 곳이라. 승상의 부귀풍류와 여러 낭자의 옥 같은 모습, 꽃 같은 태도 이제 어디 갔나뇨.’ 하리니 어찌 인생이 덧없지 아니리요.

  그리고 집을 나서서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도를 닦이 세상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뛰어넘겠노라고 여러 부인 첩들과 이별을 고하며 이별주를 나누었다. 그때 어디선가 노승이 나타나 양소유가 그를 알아보고 토번 정벌시에 꿈속에서 만난 일을 얘기하자 봄꿈을 아직 깨지 않았다며 지팡이로 난간을 치자 아홉 개의 구름이 일어나며 부귀영화를 누리던 양소유는 연화봉의 성진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인간세상 부귀를 지내니 과연 어떠하더뇨?”라고 묻자 성진은 ‘하룻밤의 꿈’이었다고 대답한다. 인생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깨달은 것이 기껏해야 우리의 기나긴 인생살이가 ‘일장춘몽’이라는 것이다. 대개 일장춘몽이란 말은 지난하고 신산스러운 인생살이에 많이 비유된다. 이광수의 소설 『꿈』으로도 형상화됐던 『삼국유사』의 『조신몽생調信夢生』이 그렇고, 고사로 많이 소개되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 그렇다. 이미 꿈속에서 온갖 역경과 고통이 주어지고 꿈을 깨어남은 그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을 의미한다. 꿈속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깨어나면서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꿈속에서 이미 꿈을 깨기 위한 계기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양소유의 꿈은 깰만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토록 온갖 부귀를 다 누리고 즐거운데 무엇 때문에 꿈을 깨려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꿈을 깨고 도달한 세계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 다시 정리해보자. 꿈속에서 온갖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것도 그렇다고 꿈을 깨고 불도에 정진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구운몽』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성진의 말에 육관대사는 다음과 같이 설법한다.

네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으니 내 무슨 간여함이 있으리오. 네 또 이르되 인간 세상에 윤회할 것을 꿈을 꾸다 하니 이는 인간 세상의 꿈을 다르다 함이냐. 네 오히려 꿈을 채 깨지 못하였도다. ‘장주가 꿈에 나비 되었다가 나비가 장주되니’ 어느 것이 거짓이오, 어느 것이 진짜인 줄 분별치 못하나니 어제 성진과 소유가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꿈이 아니냐?

육관대사의 이 말은 세속적 욕망추구를 부정한 말에 대한 재부정인 셈이다. 성진은 애초 연화봉의 세계를 부정하고 세속적 욕망을 추구했다. 그리고 꿈을 깨고 나서 이를 다시 부정했다. 하지만 육관대사는 그 모두를 문제 삼았다.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나 도를 닦는 것이나 어느 한쪽만이 진실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우리의 삶은 흑백처럼 분명하게 한쪽의 긍정이 다른 쪽의 부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어떻게 쉽게 단정할 수 있겠는가. 육관대사의 설법은 바로 그거다.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꿈이 아니라고, 또는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거짓이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세속적 욕망을 긍정하는 것도 이를 부정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속적 욕망의 적극적 추구와 이를 거부하고 도에 귀의하는 그 두 극단의 사이에 무수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우리네 삶은 그 지향과 고민의 심도에 따라 각각 규정되게 된다.
김만중은 그의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어찌 별개의 것이겠는가? 이를 임금에 비유한다면, 도심은 임금이 조정회의를 보거나 강론을 하고 있을 때와 같고, 인심은 잔치를 벌이거나 한가롭게 놀 때와 같다. 그것은 사실 한사람의 몸인 것이다. …… 대저 한 사람의 한 몸 안에 마치 두 마음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운몽』이 얘기하고자 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삶, 곧 세속적 욕망과 도의 추구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나름대로의 해답인 셈이다. 그래서 『구운몽』은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마음껏 즐겨라.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또 다른 세계가 있지 않은가.” 마치 『파우스트Faust』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황금 소나무일세.”라고 속삭였던 것처럼 말이다.


권순긍 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 교수. 저서 『활자본 고소설의 편폭과 지향』,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고전소설의 교육과 매체』, 『고전, 그 새로운 이야기』,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2011, 공저), 『한국문학과 로컬리티』등. 평론집 『역사와 문학적 진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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