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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권두칼럼/장종권/풍문으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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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40회 작성일 19-06-2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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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권두칼럼/장종권/풍문으로 듣고 싶다



풍문으로 듣고 싶다


장종권



풍문으로 듣는다. 바람이 물어다 주는 소문이다. 고향을 떠난 금순이가 서울 가서 고생고생 하다가 좋은 남자 만나서 아이들 낳고 잘 산다는 풍문, 옆동네 철수는 동대문 시장에서 양말을 팔다가 옷장사로 발전했다가 떼부자가 되었다는 풍문, 누구는 그렇게 좋아하는 술 끝내 끊지 못하고 술 마시다가 사고가 나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풍문, 풍문 속에는 신화도 있고, 전설도 있고 꿈도 있고 간혹 슬픔도 있고 절망도 있기는 하였으나 대부분 아름다운 이야기이거나 신비로운 구석이 오히려 많았다.

분명하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고, 어디에서 만들어진 소문인지도 알 수가 없었으나 그런 대로 듣는 사람들에겐 적지 않은 바람이나 인정이 묻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으로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끊임없이 퍼져 나가며 삶과 사람을 키웠다. 그 풍문으로 하여 사람들은 살맛이 나기도 하였고 그 풍문을 삶의 경계로 삼기도 하였다. 진실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았다. 알고 보면 사실은 풍문과는 달리 전혀 엉뚱한 모습인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저 바람은 우리에게 숱한 궁금한 소문들을 실어다 주며 따뜻했다.

온갖 뉴스가 SNS를 통해 난무하는 세상이다. 방송매체의 보도도 다르지 않다. 정말 사실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여 묘사하고 설명하고 해설까지 보탠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연이어 터진다. 세상이 변하여 예측 불가능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도무지 이해하기 곤란한 사건이나 사고가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점령한다.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상황묘사에 심리묘사까지 동원하여 어김없는 진실임을 강변한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의 진실은 정말 진실일까.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정의는 정말 정의일까. 진실은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정의는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사건의 전개논리는 정말 추리한대로이거나 주장하는 근거대로일까. 사람을 중시하자는 세상이 갈수록 사람을 경멸하는 세상으로 퇴보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사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진실은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정의 역시 칼자루를 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정의일 수 있다.

과학이 만들어낸 기계들로 사람과 사회를 읽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다. 문명이 덧씨운 위선과 조작의 산물들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다. 풍문과 다른 정확한 소식이라고 주장하며 풍문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과 건강함을 모조리 묻어버렸다. 무엇이 과학적이고 무엇이 논리적이고 무엇이 이성적이며 그것들은 과연 사람에게 유익하기만 한 것인가. 과학과 논리와 이성이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 풍문보다 못한 뉴스로 우리는 풍문에서 얻었던 값진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람은 결국 문명의 산물들 앞에서 무릎을 꿇을까. 문명은 자연을 딛고 넘어 인류의 미래에 꿈을 심어줄 수 있을까. 조금은 더딘 바람, 조금은 더딘 풍문, 그래도 감성이 묻어있고, 인정이 묻어있고, 삶이 묻어있는 풍문으로 듣고 싶다. 적나라한 인간의 해부와 사건의 해부와 삶의 해부가 없는 풍문으로 듣고 싶다.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고 복수도 없는 풍문으로 듣고 싶다. 분명하지 않고 자세하지 않고 직접적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풍문으로 듣고 싶다. 그것이 시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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