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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특집-청소년 시선의 흐름/김미희/절박함이 낳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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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39회 작성일 19-06-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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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특집-청소년 시선의 흐름/김미희/절박함이 낳은 시



절박함이 낳은 시


김미희



2016년의 일이다. 서울대학교 교정에 반창고로 붙인 현수막이 나부꼈다. 처음부터 반창고가 붙었던 건 아니다.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QIS가 “관악에 오신 성소수자 비성소수자 신입생 여러분 환영합니다.”라는 입학 환영 현수막을 걸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 현수막은 칼에 찢겨 훼손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이고 불편을 드러낸 행위였다. 성소수자 입장에서는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이 동아리에서는 현수막을 다시 제작하는 대신 학우들에게 찢어진 현수막을 반창고로 붙여달라고 했다. 누군가는 성소수자를 혐오하지만 이렇게 지지하고 연대를 보내는 학우들이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이는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저, 어크로스, 2018)에 나온 이야기다.
지난주 독서모임에서 이를 토론하며 우리 중 누군가가 말했다.
“이 동아리 사람들 참 똑똑하지 않아?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우리 구성원 대부분은 성소수자가 되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일차적인 감상이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를 이해하지 못하고 찢긴 현수막을 반창고로 붙이는 퍼포먼스 아이디어에 감탄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머리가 좋아서 그런 생각을 해낸 게 아니라고. 그들은 다만 그만큼 절박하고 상처 받아왔기에, 상처를 치유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생각이라고.
절박함은 필요함을 넘어선, 고통을 겪은 이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청소년시라는 장르는 필요함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절박함이 수반될 게 뻔할.
청소년시를 그다지 읽어보지 못했을 누군가는 청소년시라는 장르가 필요해? 반문하기도 했다. 그들은 청소년의 마음을 외면하고 청소년 편에 서 있지 않던 사람들이 아닐까. 시를 함께 읽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 보았을까. 물론 고민하신 선생님이나 시인들도 계시리라. 청소년이 읽기에 좋은 시들을 뽑은 시집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양적으로 부족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청소년의 시선을 끌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하리라. 시를 읽지 않은 시대. 시가 주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황금기를 넘길 아이들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할까. (이러면 내가 사명감만으로 불타 시를 쓴 것 같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이 차지하고 있음은 묻어둔다.)
나는 동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다. 내 곁엔 항상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과 생활하며 동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게 축복으로 느껴졌다. 이들과 동시를 나누며 보람 있었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자라 청소년이 되었다. 아들딸의 친구들도 청소년이 되었고 중년이 된 내 친구들도 청소년을 둔 엄마 아빠가 됐다. 사춘기를 둔 부모의 넋두리가 이어졌다. 이는 사춘기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 나라 가정, 사회의 문제였다. 나는 잠깐이었지만 중학교 사서교사로 근무했다. 늘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보였다. 안타까웠다. 책을 참 안 읽는구나. 시집은 더구나 멀리 하는 구나. 일 년이 가야 시집을 빌려가는 친구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했다. 이를 어쩌나!

마침 2016년 아침독서신문에 청소년시를 소개하는 꼭지를 청탁 받았다. 그때 나는 되도록 재미있는 시를 소개하려고 노력했고 시 감상평에 시 읽는 세상을 그리는 이야기로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나도 사랑 ‘한번 해 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열린 마음으로 사랑을 맞이할 준비하기! 그러므로 오늘 그대가 할 일, 사랑이 들어가 살 성을 지을 재료부터 모으기, 시부터 주워 모으기!”(2016,4월호. 이정록 시 ‘가을비 단추-첫사랑’ 소개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수업시간에 귀가 따갑도록 듣는 이야기. 사탐시험에도 따라올 단어, 인의예지. 시험지 속에만 살던 단어가 시詩옷을 입고 나왔다. 거침없는 똥침을 날리며 걸어온다. 보라, 옷 밖으로 시 근육이 불룩인다.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현실의 감옥을 훌쩍 뛰어넘을 멋진 근육이다. 초콜릿 복근을 열심히 만드는 친구는 더러 있다. 새롭지 않다. 고로 유명해지기 힘들다. 내가 추천할 근육은 따로 있다. 바로 시 근육. 시집을 아령처럼 들고 헛뚤! 헛뚤! 오, 저 시 알통, 시 라인! 부럽다 부러워. 그때쯤 나는 시 그만 쓰고. 흐릅, 그대를 보며 침 흘리는 사람들의 입을 닦는 손수건이나 만들어서 팔련다. (2016, 5월호. 김선경 시 ‘新 인의예지’ 소개 글)

읽자마자 랩이 되는 시. 시가 뭐냐고 묻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을 제시한다. 그것도 흥겨운 노래로. “시 같은 건 이렇게 맘대로 갖고 노는 거야” 보여주는 시. 그대가 곧 시! (2016,10월호. 정민식 ‘시’ 소개글)

시시한 이야기를 시시하게 여러 번 지껄였다. 녀석들이 ‘대체 시가 뭣이기에 저리 집착하나 못 말리는 척 시집이란 걸 구경해볼까’ 이런 마음을 갖기를 간절히 바라며 일 년 연재를 했다. 이쯤 되면 절박함을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휴머니스트), 『소크라테스가 가르쳐준 프러포즈』(휴머니스트)에 이어 세 번째 청소년시집 『모험생 개구리』(창비교육)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간 청소년시집을 접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몇 편만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엄마 아침마다/톡톡 두드려가며/내 얼굴에 골고루 로션을 발라주신다//아침마다 새 날이고/새 날을 맞으며 나를 어루만지고/쓰다듬어주는 따스한 손//불쑥불쑥/내 안의 외계인이 나타나/성질을 부리니 외계인에게 발라주는 거란다//엄마가 문득/호호 할머니가 되어 어느 날 문득/엄마 속의 외계인이 나타나/어린애처럼 네게 보채거든/그 때 네가 엄마 얼굴에 로션을 발라 드려라/아버지 한 말씀 거드신다//
                   ―「외계인을 위하여」


뒤집어 벗어놓은 내 양말을 빨며/엄마가 내 결혼 축하 자작시를 한숨 섞어 읊는다/딴따다딴 딴따다딴/저기 우리 며눌이 걸어오네/알파걸 엄친딸/저런 어여쁜 며눌이 우리 차지가 되다니/조상님이 돌보셨구나//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양말 신고 벗고 가방 싸는 것 잠자는 것까지/하나하나 일일이 가르치고 가르쳐도/학습효과는 언제나 낙제/아이고, 말을 말자 입만 아프다/내게 인내를 가르쳐준 아들/내게 쓸개가 있던가/쓸개의 존재를 거듭거듭 확인하며 키운 아들/이제 며눌아 네게 넘겨주노라/우리 집엔 안 들러도 타박하지 않으마/아들 거저 줄 테니 통째 가져라/대신 AS 불가서에 도장 확실히 찍어라 며눌아//결혼식 날 이렇게 너를 넘겨줄 것이다. 이눔아!//세탁실에서 결혼 축시 낭송이 끝나자/구정물 흐르던 내 양말이 깨끗해졌다//
                                   ―「미리 쓴 결혼 축시」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는 큰아이와 작은어른이 함께 읽는 청소년시집이란 부제가 붙었다. 청소년기를 이미 거친 부모(박철수와 김영희)는 몸 안에 청소년 DNA를 가지고 있고 지금 한창 청소년기를 거치는 아들딸 (가람이와 여울이)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으며 ‘내가 알아서 할게요’를 외치며 어른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이들 양 세대의 이야기를 한 권의 소설처럼 구성했다.
우리 집의 이야기로 보이겠지만 우리 집 이야기는 일부다. 쓸 당시 중학교 학부모 독서모임에 열심히 나갔고 유료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죽치고 서핑을 했다. 생생한 사례들이 담겨서인지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청소년들은 시가 재밌을 수도 있구나 새삼 느꼈다고 했고 어른들은 반성문을 남겼고 가족이 둘러 앉아 시 반상을 받았노라 리뷰를 남겼다. 자발적 리뷰들이었다. 기겁할 줄 알았는데 아들에게 로션을 발라주니 내심 좋아해서 놀랐다는 체험 후기까지.
나는 고무되었다. 이는 두 번째 시집을 쓰는 용기가 되었다. 삶의 기초체력인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나갈 청소년들에게 시가 어떻게 마중물 역할을 할까 고민은 계속 되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붙은 부녀회 모임 공고를 아버지와 딸 모임으로 안 어느 중학생들의 대화를 들으며 풋 웃음이 났다. 한자 지식의 미천함을 지적질 하는 선생이 아니라 유머러스하게 인생을 얹어 넘어가 주는 선생님이 계신 세상을 그렸다. 부녀회를 오독하는 이 여중생들의 일화에서 힌트를 얻고 인문학 도서를 읽으며 청소년의 삶을 결부시키려 애썼다. 그렇게 『소크라테스가 가르쳐준 프러포즈』는 개똥이도 철학하게 하는 청소년시집이란 부제를 달고 나왔다. 


쌤, 오늘 야자 빼주시면 안 돼요?/오늘 밤 8시에 아버지와 딸이 모이거든요//아버지와 딸이 모여?/모여서 뭐하는데?// 그거야 나도 모르죠/아파트 게시판에 붙었더라고요/부녀회 8시라고요//그럼 당연히 야자 빼줘야지/어머니 부녀회 가시거든/아버지랑 둘이 심도 깊은 인생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라/통닭 한 마리 시켜 먹으면서//
                                 ―「개똥이도 철학하는 시간 2」


동창회 다녀온 엄마가 가방을 내던지며 말했다/당신 월급은 쥐꼬리만 해서 쓸 게 없어//아빠가 요란하게 신문을 덮으며 맞섰다/벌어다 준 돈 다 어디다 썼냐고? 가계부 가져와 보라고!//가장 예민한 곳, 역린/서로의 목에 거꾸로 돋은 비늘을 건드리며 으르렁거렸다//게임을 하던 나는 컴퓨터를 끄고/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밖은 고요해졌다/나를 길들이려 서로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다//
                       ―「시험공부를 위한 전략’:한비자 편」


삶이 빠진 시는 시가 아니다. 공감을 잃기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의 삶엔 청소년만의 빛깔이 있다. 그 빛깔은 그들만이 낼 수 있는 색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도록 하얀 도화지 한 장 되리란 절박함에 기대 쓰고 있다. 나는 시인이니까. 나아가 이런 세상을 꿈꾼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어제에 이어 청소년 중독 실태를 진단해볼 텐데요. 요즘 청소년들이 심각하게 시에 빠져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면서요?”
“맞습니다. 매스컴에서도 게임 광고 자리를 시집 광고가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도 시를 읽는 모습을 경쟁적으로 SNS에 올리고 있고요. 청소년 장래희망 1위가 시인이라고 대답하는 것만 봐도 시 중독 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전철에서도 휴대폰으로 시집을 읽는 모습이 수시로 포착되고요.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은 유행에 뒤떨어져 루저 취급을 받는 실정에 이르렀습니다. 피시방들도 시시방으로 발 빠르게 업종 변경을 하고 있고요…….”

이런 뉴스가 나오는 날,
“시 쓰는 중. 조용히 통행하시오! 경적 절대 금지.”
교문 앞 이런 플래카드가 걸리는 날, 그날을 그리며 달릴 뿐이다. 그날은 꼭 오고야말 우리의 미래이기를 바란다.


김미희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 청소년시집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 『소크라테스가 가르쳐준 프러포즈』. 동시집 『예의 바른 딸기』, 『동시는 똑똑해』. 동화『엄마 고발 카페』, 『우리 삼촌은 자신감대왕』등. 푸른문학상 동시와 동화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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