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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특집-청소년 시선의 흐름/채지원/학교에서 청소년시 쓰기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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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54회 작성일 19-06-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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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특집-청소년 시선의 흐름/채지원/학교에서 청소년시 쓰기와 읽기



학교에서 청소년시 쓰기와 읽기


채지원


학교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지내온 지도 어언 20여 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아이들의 일상 또한 달라졌다. 학교에서의 일과 뿐 아니라 방과 후에도 거의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이어지는 학원수업 등 아이들을 옭아매는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언젠가부터 그러한 아이들의 일상이 연민으로 다가오면서 나는 교실에서 한 편 두 편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 세월동안 곁에서 지켜본 청소년들의 일상은 시가 되었고, 재작년 봄, 그간 창작된 시들을 정리하여 청소년시집을 발간하였다. 처음에 ‘청소년시’란 무엇일까 고민이 많았다. 기존에 창작된 시집들이 몇 권 있긴 했지만, 청소년시의 정체성은 여전히 안개 속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집을 꾸리면서 ‘청소년시’의 본질 등에 관해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청소년시’란 한마디로 청소년의 삶이 드러난 시이다. 이 때 시의 화자는 대부분 청소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나의 시집 속에 등장하는 시의 화자는 하루의 대부분을 청소년과 함께 생활하는 선생님이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생활하면서 바라본 청소년들의 삶에 드러난 유쾌함과 발랄함, 그리고 슬픔과 연민 등이 작품의 주조를 이룬다. 이는 기존에 청소년의 삶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은 있었어도, 시는 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나의 작품에 드러난 청소년들의 삶에서 청소년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를 함께 치유해나가고자 하는 모색들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청소년의 삶을 다룬 ‘청소년시’는 계속 창작될 것으로 본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 때문에
방과 후에 뮤지컬 연습도
하지 못한다
                 ―「학원」 전문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야 방과 후에 아이들이 그리 바쁜 스케줄에 쫓기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방과 후에 또래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놀이도 하고 또 친구네 집에 가서 실컷 놀다오기도 하고 그런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종례시간이 되면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들썩들썩 하는데 나는 처음에 그 이유를 잘 몰랐다. 심지어 교외 동아리활동이 있는 날도 마치는 시각을 물으며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이 이해가 안 되어 나무라기도 하고 그 시간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방과 후에 다음 학원스케줄에 묶여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원시간 과외시간 때문에 방과 후에 있을 뮤지컬 연습이나, 대의원 총회, 기타 다양한 학교 활동의 연장인 모임들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학교마다 실정은 다르겠지만 지금도 서울의 대부분 지역의 학생들은 방과 후에 학원스케줄을 소화해내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현실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고 지금도 전날 피로 때문에 아침부터 엎드려 있거나 과도한 학원숙제들을 수업시간에 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지금 우리 청소년들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파스 붙이고
한의원 가서 침 맞고
또 다시 의자에 앉아
종일 공부하는 아이들

살긴 사는 걸까
                 ―「삶」 전문


요즘 아이들은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다 퇴근하고 나서 특별한 일정이 있어서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다음날 매우 피로함을 느낀다. 그래서 일주일 일정을 부담이 없는 선에서 짜곤 한다. 그리고 주말엔 되도록 푹 쉰다. 한 주간의 피로를 풀기 위해 나름대로 휴식을 잘 취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로 놀라운 경우가 많다. 거의 매일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귀가하곤 집에 가서도 과제 수행에 매달리다 12시를 넘겨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말에도 학원 등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경우가 많고,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아이들은 허리며 어깨며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파스를 붙이고 또 종일 앉아 공부한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지만 시간이 흘러도 별로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초등학생으로 연령대가 내려가는 과열된 분위기가 있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야근하는 어른들…… 야간 자율 학습하는 아이들…… 아이들의 행복한 일상을 찾아주는 국가적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4일 간 가출했다 어제 엄마랑 싸우고
보건실에 들른 나를
선생님은 귀찮아 한다
아빠랑 이혼하고 새로 결혼한 엄마가 밉다
새로 태어난 동생은 보기도 싫다
그래서, 매일 집밖에서 새벽까지 술 마시고
노는데
세상 어디에도 내가 쉴 곳은 없다
이부자리며 침구며 새로 정리하기 힘든 건 안다
그래도 이 세상 허허로와 기댈 곳 없는 내게
잠시 잠깐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는 건 왜일까
보건실에 가서 감기약이라도 먹고
좀 쉬면, 그나마 좀 살 것 같다
아빠랑 가끔씩 만나는 날은 천국이다
난 아빠가 더 좋은데
왜 함께 살 수 없는 걸까? 새로 태어난 동생 때문일까?
오늘도 나는 어제 새벽까지 바깥에서 놀다 학교에 와서
또 다시 보건실을 기웃거린다
                                       ―「보건실」 전문


어느 해인가 담임을 맡았던 아이인데, 평소 학교 교칙에 어긋나는 생활이 빈번해서 선생님들 마다 혀를 내두르시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와 1년 간 생활해보니 그 아이가 왜 그렇게 방황하고 마음을 다잡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여학생은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고 늦게까지 놀다 다음날 학교에 늦거나 빠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아이들 대다수가 새로 구성된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여학생은 보건실을 자주 찾곤 했는데 보건선생님은 특별히 아파보이지도 않는데 자꾸 방문하는 아이를 귀찮아했다. 그 여학생에게 보건실은 새로 구성된 가족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결핍을 치유할 수 있는 휴식처로서의 의미였을 것인데, 특별히 아픈데도 없어 보이는 그 여학생의 방문을 달갑잖아 하는 선생님의 태도에서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욱 커진 어느 날, 교실에서 불쑥 위의 시가 탄생되었다. 가족 관계 때문에 힘든 아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틴트 바르면 매춘부라고
아직도 울퉁불퉁한 회초리를 치켜드는
선생님의 직업은 미술 샘 아니세요?
우린 치장하고 싶고
색색이 고운 컬러들, 마음껏 흩뿌리고 싶은데
화장은 안 되나요?
얼굴 썩는다는 말은 궤변이에요
너무나 초라한 변명
똑똑히 알려주세요
우리 얼굴에 우리가 치장해서 잘못된
진짜 이유를
무엇이 죄인가요?
왜 맨날 소모적인 벌을 내리시는지
모르겠어요
샘처럼 색색이 고운 날개를 달고
맘껏 날고 싶은데
왜 우린
화장하면 안 되나요? 예?
                         ― 「틴트 고운 입술로……」 전문


요즈음 청소년들은 예전에 비해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중학생이 되면 틴트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다 사용하고 간단한 색조화장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교는 아직도 청소년의 화장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일쑤다. 대다수 아이들이 화장을 하는 세태에 비추어 학교에서의 화장 금지는 결국 아이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만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몰래 하거나 학교를 벗어나면 화장을 하는 등 맘 놓고 떳떳하게 화장할 수 없는 현실은 아이들을 위축시킨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치장을 하고 선생님과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을까? 현실에 기반한 학교 생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다.


쉬는 시간마다 노상
핸드폰만 한다고
엄마들은 걱정이지만
그 속엔 무한한 세상이 있다
게임, 자유, 친구, 그리고 세상......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일도 줄어든
스마트한 세계
IT 강국의 교실 풍경
                                ―「핸드폰」 전문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1인당 한 대씩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핸드폰을 사준 어른들은 걱정이 많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핸드폰 속 세상을 유영하며 즐거움 속에 빠져든다.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공방은 치열하다. 그리고 자칫 청소년의 인권이 침해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IT강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교실 풍경은 때때로 경이롭다. 핸드폰의 부정적인 면만 보지 말고 긍정적인 면도 함께 보는 것이 어떨까? 아이들은 스마트한 환경에서 더 스마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2 병 딸을
계속 부추기는
중2 병 엄마
나도 덩달아 중2가 되어 간다
―「중2병」 전문


중2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아이들이다. 질풍노도의 정점에 있는 중2는 하루 종일 까르르 깔깔 웃어대기도 하고 갑자기 울기도 하는 등 그 정서가 파도처럼 출렁댄다. 그런 중2학생들과 생활하는 나는 어느덧 그들에게 동화되어 교실에서 함께 떠들고 웃곤 한다. 사소한 바람 한 점에도 찬란하게 반응하는 중2는 그래서 사랑스럽다. 인간이 성장해가는 변곡점의 한 모퉁이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맘껏 발산하는 중2 시절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때가 아닐까. 그런 중2들의 배후에는 엄마들이 있다. 중2 못지않은 감수성으로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우는 엄마들이야말로 중2들의 백그라운드이다. 중2는 질풍노도가 아니라 인생의 한 정점에서 화려한 불꽃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자유 시간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판치기
친구 무릎에 앉아 수다 떨기
판타지 소설 읽기
스마트폰 세상 친구랑 함께 즐기기
혼자 엎드려 음악 듣기
소리 지르며 말달리기
누가 말렸을까?
우리들의 자유를
누가 억눌렀을까?
우리들의 심사, 드높은 하늘에 펼쳐진
무지갯빛 감흥을
그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내 영혼 속 무한한 자유를
                      ―「자유 시간」 전문


요즘 아이들은 그야말로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학교를 파한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옥 같은 스케줄은 아이들을 옥죈다. 어느 날 청소년시집이 거의 탈고될 무렵 아이들에게 시집 제목으로 좋은 걸 골라보라고 하였다. 그 중 ‘자유 시간’ 을 으뜸으로 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평소 우리 아이들이 시간에 대한 여유가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닌 지 생각하게 되었다. 자유란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부과하기만 하고, 자생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24시간 중 스스로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될까? 어느 날 자시(자유 시간)을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허락하고 바라본 풍경을 담은 위의 시편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포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학교란 무엇인가. 아이들이 매일 오는 곳이지만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오래 전서부터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해 왔기에 무엇보다 아이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아왔다. 그리고 그런 청소년의 삶들이 시로 써진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청소년의 삶을 다룬 청소년시야 말로 청소년에게 위안과 희망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학교에서 청소년 시를 읽는 것은 아직까지는 낯선 일이지만 앞으로 더 확대되지 않을까싶다. 독서캠프나 그 밖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청소년시를 접하게 되는 것은 아이들로서는 신나는 일임에 틀림없다. 청소년 시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현실을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직껏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청소년의 삶을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하루빨리 제도적으로 정비되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꿈을 키우고 행복한 일상을 지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시는 청소년을 지키는 버팀목이며, 청소년과 함께 성장시켜야 할 중요한 장르임에 틀림없다.


채지원 2008년도 계간 《문학과 의식》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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