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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이위발/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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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신작시/이위발/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외 1편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외 1편
이위발
너의 진실은 불편했지만 거짓말은 나를 흥분시켰다.
우리 사랑이 강 앞에 있다고 하는데 너는 뒤에 있다고 했다.
없다고도 했다. 가슴속에 있었다고 하다가, 뒤에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화면조정시간, 똑같은 화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앞뒤 구분이 없는 것처럼
아이들이 집 그림을 그리면 지붕부터 그린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생각 없이 빨아대던 사탕처럼 나는 이리저리 빨리던 사탕이었다.
너는 질문이 많았다. 그래서 숨길 게 많았다.
그래서 너의 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니었다.
음습한 곳의 곰팡이처럼 건조하게 살았으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을
물 스며들 듯 살을 섞었으니 너의 품도 따뜻할 수 있었겠지
우리가 맺은 관계의 넓이가 누릴 수 있는 낭만만큼의 크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너는 세상에 맞추는 현명한 사람이었고, 세상을 너에게 맞추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지
우직한 어리석음은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 되었겠지만
너의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었고, 너의 불편함 또한 흐르는 강물이었다.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딘가에 잠들지 못하는 물이라는 것을 너는 알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살려는 것의 명제라고 하지만 나는 너의 중간쯤에 서 있었다.
그 지점은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그 풍요에 나는 너를 가두어 버렸다. 바로 뒤에서.
필론의 돼지*
필론의 돼지처럼
잠자고 있는 것을 흉내 내면서
벌 한 마리 방안에 들어와
머리 처박고 떨어졌다가 다시 처박곤 하는데
한쪽에 열려있는 문 보지 못하고 창호지만 두드리다
어느 사이 빠져나갔는지 모른다
의식이란 스스로 발라놓은 창호지 같아
진실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사람의 진실이
나의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하늘 높아 보일 때 사람들이 외로워 보여
높은 것을 싫어하듯이
내일을 말하지 않는 사람 곁에서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듯이
돼지는 뒷걸음질 치며 악을 쓰고 있다
용서할 거리가 없다고 우기는 사람에게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힘 드는지를
*현자賢者로 알려진 필론이라는 사람이 배를 타고 여행하는 중에 폭풍우를 만났는데 사람들은 기도를 하거나, 울부짖거나, 탈출을 하겠다고 애쓰지만, 배에 실린 돼지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이위발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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