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9호/신작시/이사철/이중거울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10회 작성일 19-06-23 15:23

본문

69호/신작시/이사철/이중거울 외 1편



이중거울 외 1편


이사철


나는 그를 읽어보지 않았다.


그는 이따금 고개를 숙였다. 그는 머리 위로 하얀 풀들을 키웠고, 그는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가 계속 고개를 반듯하게 버티고 있었다. 멀리서만 바라보라고 손을 내저었다. 머리 아래에서 그림자들이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이미 뿌려져 있어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그를 아래로 읽을 준비가 되어있었고
그는 ㄱ과 ㅎ 그리고 ㅏ와 ㅣ사이에 있었다.


그도 나를 비즈니스 상대로 여기고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그와 나는 사이와 사이에서 쫓고 쫓겨 다녔다. 그는 그처럼 나는 그처럼 서로가 스캔되어 아주 많은 부분이 읽혀져 있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갈수록 뻔뻔해졌다. 그는 다가왔고 그림자는 지워졌다. 그는 ㅂ과 ㅂ사이에서 ㅕ와 ㅑ를 업고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비즈니스 했고


그가 몰래 그어놓은 줄들이 반대로 고개를 저으며 출렁거렸다.


유리가 부서져 불빛이 새나가고 있었다.
머리 위의 하얀 풀은 없었고


나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신이었다.




오돌토돌 그 분은 있다



나는 지금 단지 조금 이상한 어느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다. 왜 조금 이상한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여튼 세시 몇 분경에 집안에 도둑이 들어 잠이 깬 것은 분명하다. 몇 권의 문예지와 김선우 시인의 시집을 훔쳐갔다. 지금 시간은 네 시 삼십구 분을 넘어가고 있지만 경찰은 오지 않았다. 경찰이 올 때까지 어느 시인의 시 초연을 읽으며 불현듯 커튼콜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무도 몰랐다, 를 읽고 다음 페이지로 이동하는 순간 거기에 커튼콜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커튼콜, 경찰, 커튼 뒤에 숨어 있는 제재에게 보내는 메시지 아무도 신고 받지 않은 커튼콜, 그녀의 커튼콜은 구덩이 속에 있었다. 나는 그가 왜 구덩이 속에 빠졌는지 몰랐고 팔을 뻗어봤지만 닿지 않았다. 삭정이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에는 커튼콜이 사라지고 없었다. 달 하나만 저만치 빈정거리면서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커튼 뒤에 숨어있던 경찰을 알아보지 못했다. 경찰도 달과 내통하고 달아났다. 도로 건너편에서 누렁이가 이쪽을 향해 몰락했다. 내가 커튼 뒤에서 경찰 시늉을 하면서 어른거린다고, 초연에 죽는다고 죽겠다고.


이사철 2015년 《시와소금》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어디 꽃피고 새우는 날만 있으랴』, 『눈의 저쪽』, 『멜랑코리사피엔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