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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박호은/낯설지 않은 이별에 대하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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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70회 작성일 19-06-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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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박호은/낯설지 않은 이별에 대하여 외 1편



낯설지 않은 이별에 대하여 외 1편


박호은


우리의 손이 서로를 안을 때
손금의 통로를 지나 초록별을 총총히 걸어
마음에까지 닿았던 때가 분명, 있었던가


눈동자 속 문장들이 거침없이
마음을 읽어내던 투명한 살해


최초의 아름다움을 입은 탱고처럼 탱탱하던 포도가
마음에 이르러 멍든 활자로 터져버린 허무


영원을 안부처럼 물었으나
문득 찾아온 이별이 낯설지 않아서 슬픈 일
다만, 누군가를 호명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눈물 속을 헤엄치는 지느러미처럼 미끄럽다


아스팔트 길가 구석진 모서리에
바람에 쓸려 모여진 낙엽더미가
건조한 다독임으로 서로의 무덤이 되어주는 일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온 새벽은
어느 별에서도 네 눈동자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고아가 된 문장들이 가시를 게워낸다 순간, 붉어지는 허공


슬픔은 아침처럼 젊어지고
기억은 언제나 먼 곳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이별을 안부처럼 물으며 초록별 속으로 총총히 익사하는 너처럼




수제비 끓이는 아침



가짜 미대생을 재워주고
한 달 생활비를 도둑맞은 날
철퍼덕 주저앉은 쌀독이
그녀가 그리다 만 구절초의 발목을 붙잡고있다
-빌어먹을 동정은 사치였어


집 밖으로 나가는 길은 허공으로 빨려가는 모래사막
바깥으로부터 마음이 갇히는 순간의 침묵 속으로


꼬박꼬박 깨어나는 아침이
모래수제비 국물을 마실 때
동생의 젖니에 물려있는 허기는
수제비 속에 둥근 감자가 달처럼 부풀어 올라 더욱 환해지는 슬픔


허술한 주머니 속에 짤랑대는 동전 두 개
누나의 근심이 따라간다
-주머니에 구멍이 났는지 확인해봐
혹시 점심이 새어 나갈지 모르잖아


자꾸 뒤를 돌아보는 도시락 없는 가방이
헛바람을 넣으면서 불록히 배를 불렸다
쿨럭쿨럭 굽은 등의 엄마와 걷던 신장로에 이젠,
사내아이의 작은 어깨가 떨거덕 매달려 간다, 길은 어둑히 점점 넓어지고

허상과 현실이 실핏줄을 타고 횡단하는 금호동 산동네 등굣길
죽은 엄마가 안녕을 묻는 길


어둠을 반죽해 끓인 수제비에서
울음을 걸러내는 일들이 육수보다 진할 때


늙은 거지가 덮고 자던 신문지의 구걸을 의심하는 일
잘린 다리를 감은 낡은 타이어 속을 의심하는 일
빈 쌀독을 삼킨 목구멍의 울음과
교회당 붉은 불 빛을 스캔한 가슴이 부딪히는 오늘



박호은 2016년 《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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