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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구애영/크레바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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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74회 작성일 19-06-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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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구애영/크레바스 외 1편



크레바스 외 1편


구애영


눈 속에서만 머물고 싶은 서사일까
그래 그것이 발자취라면
이해할 수도 견딜 수도 있었으리라
백 만년 동안 걷고 싶었다던 태도이었으니까
그날 이후 내 발가락도 한군데 붙박여 있을 수 없었지


자고 일어나고 모이면 흩어지는, 통증의 기록 같은
왼쪽 발목이 늪지대를 기억하고
오른쪽 발목이 폭설을 낯설어 할 때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당신의 맨발을 구경하지 못했다
누구나 다 가는 방향이라지만 아무도 못 가본 골짜기,
그곳은 도발적이든지 생명력이 죄다 소진해서야 갈 수 있는 흔적일까


너무 얕게 파였거나
헐거워라
감각하기 전에 이미 나의 일부였기에
몸속의 사금파리처럼
통증은 거기 있었고 나의 해찰이 벌려놓은 균열이라고 단언하고 싶었다


당신의 슬픔은 얼마나 깊숙이 갈라졌나
돌아올 수 없다와 돌아가지 않겠다 사이에 거대한 지층이 있다


슬픔으로 지워진 국경을 우리는 너무 차갑게 끌고 다녔던 걸까




손톱



초승달이 그대로 서 있으면 내일이란 노래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암 병동의 밤은 백야처럼 환하다
603호 2인실 탁자 위, 종이컵에 담겨진 물이 아직 자란자란한데
간헐적으로 링거수액 한 방울씩 스며들던 소리
나는 애써 귀를 열지 않으려 하고


환자복 소매 끝을 걷고 당신의 손톱을 자른다
몸의 안부와는 상관없이 손톱만은 주기적으로 꽃눈을 단다


잘라낸 횟수만큼 동백꽃은 피었지만 꽃잎들은 전부 한꺼번에 소진되기도 했을 거다
마지막이란 이렇게 쉽게 다가오는 단순인 것을
말하지 못한 말이 차갑게 떨어져 나간다
손톱의 시초들이 달의 모서리를 긁고 있었던 걸까
어제보다 한 뼘 더 수척하게 자랐을 음역까지 딱딱하다


라디오에선 조용필의 그 겨울 찻집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오토리버스 되어 흐르는 노래 속에 서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묵직한 커피 향과 섞이는 가벼운 페놀냄새
어느 누구에게로도 스며들지 못한 채
묘연하게 증발된다


구애영 201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정형시집 『모서리 이미지』, 『호루라기 둥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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