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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서춘희/복사하는 사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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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38회 작성일 19-06-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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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서춘희/복사하는 사람 외 1편



복사하는 사람 외 1편


서춘희


신중하게 시력을 잃기로 합니다 무엇에도 기대지 않은 빛이 흘러나오고
신의 뒷모습을 닮은 면과 면 사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를 가두지 마세요
펼쳐진 눈밭에 새의 딱딱한 부리처럼 시야 밖에 꽂혀서

릎까지 자란 식물의 줄기를 부러뜨리며
생각해 보지 않은 생각을 처음했다


나는 나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로 늙는다
뿔이나 날개가 어디서든 솟아날 수 있지만 폭우가 폭설로 바뀌는 일도 언제든 가능하지만


자꾸 눈을 깜박인다
무력한 기분의 활기


누구도 무엇도 배울 수 없습니다
미치도록 앓는 기침소리가 떨어지는 각도로


기운 곳도 벌어진 곳도 없는 벽
물을 벗어난 열대어가 무럭무럭 자란다


정확히 겹치는 알맹이와 껍질의 균형을 계량한다




연태고량주



처음 가 본 도시의 중국집이었지요
한 무리의 관광객 사이 가을빛이 떨어지는 자리에서
지나간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추기름이 뜬 접시에 젓가락을 문지르며
벌써 그렇게 되었나
딸기는 지금도 좋아하니
투명한 그림자가 어깨를 스치며 사라지고
매일 하는 일과 가끔 죽는 법에 대해
같은 시간에 두 개의 약속을 잡고 둘 다 저버린 기억을
새가 뱉은 씨앗을 주워 먹기도 했다며
재미 삼아 거실은 공원이 되고 의자는 웅덩이가 되더라는
눈발이 흩날리면 걷는다 했지요
어디선가 어디에도 없던 내가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눈만 없는 눈사람의 형상으로 작고 작아진다고
손톱 같은 색색의 지붕을 인 마을을 지나면
달의 얼굴을 한 이들이 한쪽을 바라보며 자고 있을 것 같다고
주먹을 펴는 푸른 시간이 선명하게 가까워질 때
당신의 두 손에서 마지막 숨을 놓았던
죽음에 대해 편지를 쓰듯 말했지요
들리지 않는 기도로 구원받기 위해
무릎 꿇을 수 있는 자리를
비워둔다고
 
비가 내리고 한 사람이 지나간다
삼키면 내내 짜고 독한 무엇
경주 줄포 구로에서


서춘희 2016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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