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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인상/이해순/고요의 정원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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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인상/이해순/고요의 정원 외 4편
이해순
고요의 정원 외 4편
저기 바다로 낸 길을 걸어봐요
발끝에 닿을락말락한 물결이 말을 걸어요
가만히 들어봐요
가만히 들여다봐요
바위를 간지르는 고물고물 아기고동들이에요
해살거리는 햇살도 보여요
물고기 떼들의 수다소리가 파도 위로 반짝거려요
미처 돌아가지 못한 바닷물과 해초 몇이 길안내를 하고 있어요
저기로 가세요 이쪽이에요
코스모스 살랑거리는 푸른 길로 살포시 들어가요
잠시 쉬어가라는 나무의자에 앉으면
지나쳤던 바다며 숲이 보여요
꽃도 나무도 새도 잠자리도 저마다의 이름으로 말을 걸어요
오늘 참 좋은 날이죠 만나서 반가워요
산철쭉 낙산홍 황매화 동백나무 소나무 꽃댕강나무
좀작살나무 수국 수선화 로즈마리가
이름표를 달고 정원의 사이사이를 안내하네요
바다로 낸 길의 끝엔
바람소리도 바다 소리도 풀과 나무들의 소리도
맑은 그리움을 풀어놓고 있어요
분주한 발길도 고요하게 잠드는 곳이에요
잠잠하고 조용한 고요의 정원에 머물다 가세요
당신도 잠시 바다 정원이 되어보세요
숲에 갔어요
둘레를 따라 산길을 갔어요
나무와 나무의 꼭짓점을 선으로 그었어요
하늘과 맞닿은 봄의 실루엣이 살아났어요
나무의 봄
풀의 봄
꽃의 봄
하늘의 봄
바람의 봄
봄은 봄으로 번져가고 있었어요
발로 오르는 봄
눈으로 오르는 봄
초록은 초록으로 풀어지고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깊어지고 있었어요
하나를 잠그면
또 하나가 열리는
봄은,
멀리서도 더 환한 봄이었어요
노크소리
기척들이 쌓이고 있었다
웅크린 잠, 그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조금씩 번져가는 물빛이었고
점점 더해지는 온기의 파장이었다
여전히 너무 고요하기만 했다
올 것 같지 않던 길고 지난한 침묵이었다
가끔은 희미하게 들리는 숨결이었다
문득 문득 닿았다 사라지는 손길이었다
순간,
길가의 산다화는 붉게 달아오르고
나무의 연초록 생기가 퍼져가고 있다
경칩이다
‘참 좋은 비다’
그 한마디 버선발로 달려가 맞이할까
온 세상 활짝 열어 기다릴까
보일락 말락, 닿을락 말락
곤지발로 다가온 봄의 노크소리
그대, 들어 보셨나요
그대, 느꼈나요
갯벌 낚시
물 빠진 섬달천 바닷가에 가보셨나요
그곳엔 낚시꾼이 많아요
발목을 담근 채 빠르고 정확한 강태공 왜가리
살금살금 넓은 발의 구슬우렁이
위장술에 뛰어난 갯지렁이
총총 잰 걸음의 칠게 사냥꾼
푸른빛 날개 돋쳐 분주한 짱뚱어
대낮도 캄캄한 갯벌 깊숙이
붉게 물든 태양도 사진 속에 낚였네요
물끄러미 서 있다 물 때 놓친 초승달도 낚였어요
파도에 밀려든 별들도 촘촘히 걸려들었어요
낚시꾼도 낚는 섬달천 갯벌
햇빛도 별빛도 방생하는 고요한 낚시터였어요
물의 꿈
봄비가 종일 내리고
메마른 대지의 깊숙한 중심을 촉촉이 깨운다
잠들어 있던 씨앗들은 기억의 빗장을 연다
아직은 앙상한 우듬지마다 화색이 돌고
백합의 알뿌리는 빼꼼히 순을 올렸다
야생화 몇도 새 식구가 되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시간
꾹 다문 봉오리는 초록베일을 쓰고 한참을 침묵했다
창 너머의 멀리 보이는 숲은
온통 서로 다른 초록, 초록들로 번져가고
봄날 봄물이 들기 시작했다
꽃이 피기 전엔 물의 꿈은 분명 초록이라 생각했다
오후쯤 진보라색 꽃이 피었다
마침내 꽃을 피워낸 투명한 근성
작은 물방울의 힘
뿌리부터 퍼지는 그 파장은 무지갯빛 스펙트럼이다
햇살과 바람을 함께 품어낸 고요의 기다림이다
나를 건너 너에게로 간 물의 사소한 기척,
물의 꿈은 꽃이었다
심사평
정갈한 시어로 엮어낸 ‘긍정의 힘’ 돋보여
누가 뭐라 해도 ‘긍정의 힘’은 ‘부정의 전염성’을 능가하고 더 오래도록 지속한다. 아니, 해야 한다. 이해순 시인의 시를 읽고 앞의 생각이 줄곧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 접하게 된 작품 중에서 「숲에 갔어요」에서 시인은 시적 가치로서 긍정의 힘을 ‘봄의 생명력’에 덧대어 여실하게 드러낸다. “나무의 봄/풀의 봄/꽃의 봄/하늘의 봄/바람의 봄/봄은 봄으로 번져가고 있었어요/발로 오르는 봄/눈으로 오르는 봄/초록은 초록으로 풀어지고/그리움은 그리움으로 깊어지고 있었어요/하나를 잠그면/또 하나가 열리는/봄은,/멀리서도 더 환한 봄이었어요”라는 전언은 최소한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는 봄이 일시에 느닷없이 닥치는 사건이 아니라 각개의 사물과 사물의 변화가 빚어내는 어떤 결과라는 것, 따라서 그런 봄은 기분이나 취향 이전에 ‘몸’, 즉 ‘발과 눈’이라는 감각의 소여所與를 긍정할 때 비로소 나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초록은 초록으로 풀어지고/그리움은 그리움으로 깊어”진다는 전제하에 진정한 ‘봄’은 “하나를 잠그면/또 하나가 열리는” 개시開始의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다 현대인인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쉽게 체감體感하지 못하는 문제를 겨냥한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현대시는 ‘부정과 단절의 정신’ 위에 건설되었다. 어떤 경향이나 주류/비주류의 문제를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전제 위에서 ‘표현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제 시는 표현하지 못할 것, 즉 대상에 제한이 없고 쓰지 못할 말, 즉 어휘나 조어造語에 있어서 규정 문법에 충실할 필요가 없어졌다. 말 그대로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으로 보장되는 상황에서 시작詩作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자유가 모든 시인의 개성 발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직도 장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시류 아닌 듯 시류로 우리 시단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기제機制로 작동하는지 모른다. 따라서 정갈한 시어나 긍정의 힘을 보이는 시인은 만나는 것은 언제나 기쁘고 설레는 경험이다.
이해순 시인의 ‘긍정의 힘’은 사물이나 사태의 변형이나 조작을 통해 즉 가역苛役으로 힘을 행사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관조觀照의 심상에서 또렷하게 세계와 대면할 때 저절로 떠오른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갯벌 낚시」를 들 수 있다. 시인은 ‘섬달천 바닷가’ 갯벌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적시하지만, 또 거기에 낚시꾼들, 가령 ‘왜가리, 구슬우렁이, 갯지렁이, 칠게, 짱뚱어’ 등을 등장시키지만 갯벌을 이전투구의 체험 삶의 현장으로 전락轉落하지는 않는다. 시인은 작다면 작은 미물들 사이에 시간을 사냥하는 태양과 낯달을 등장시킴으로써 생존이란 치열한 투쟁이긴 하지만 결국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어떤 숭고함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각인刻印한다. 이런 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시어가 정갈하다는 것은 어휘의 부족이나 결의 다양성의 결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에 서 본 ‘봄’처럼 시에서 어휘는 늘 새롭게 그 상징과 의미를 덧대거나 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어를 계열화해서 중심어와 다양한 활용어휘의 폭을 넓히는 것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섬달천의 초승달과 와온의 저녁놀이 다 같이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다.
/장종권 백인덕 남태식
수상소감
마음 한 켠에 접혀있던 꿈이 저 혼자 자라고 있었나 봅니다. 오늘 신인상 당선 소식을 듣습니다. 중학교 어느 즈음에 꿈꾸었던 문학소녀가,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오던 고등학교 때의 시화전 액자와 시습작 노트가, ‘내가 쓰는 책 한 권’이라는 30년 후의 나의 버킷리스트가 일시에 우르르 우르르 몰려나옵니다.그 소리가 흡사 천둥소리와도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간절한 것들이 꽃이 되는가 봅니다. ‘너도 시 한번 배워볼래’ 그 말 한마디에 오래오래 웅크려있던 꿈들이 또 하나의 길이 되었습니다. 풀이며 꽃이며 풍경이며 계절이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그려온 과정들이, 일상 속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져두고 시를 줍겠다고 기웃대는 순간들이, 힘들었지만 한 편의 시가 될 때마다 빛바랜 꿈도 꽃으로 피는구나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시, 누군가에게 꿈이 되는 시에 앞서 나를 감동케 하는 나의 시,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나의 시를 쓰려합니다.
보잘것없는 제 시를 시의 반열에 세워주신 리토피아의 다독임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시는 쓰지 말고 주우라고 격려해주신 선생님과 부족한 생각의 언저리를 채워준 문창과정과 여수문협 모든 문우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이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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