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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미니서사/박금산/‘성’과 ‘연봉제’를 오해하는 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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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295회 작성일 23-01-0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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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미니서사/박금산/‘성’과 ‘연봉제’를 오해하는 박 교수 


박금산 소설가


‘성’과 ‘연봉제’를 오해하는 박 교수 



‘성과연봉제 개정과 관련하여 공청회가 열리오니 참석 바랍니다.’ 박 교수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 교수는 화들짝 놀랐다. 


이러면 안 되지. 곤란하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남성의 연봉과 여성의 연봉을 별도로 책정한다는 것이냐! 정신 차려라, 이 버러지들아! 성gender과 연봉salary이 무슨 상관이 있냐 이 말이다. 


박 교수는 삐딱한 시선으로 공청회 안내문을 읽었다. 


박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흔들었다. 

“박 교수야! 정신 차려라. 제발 성에서 해방되어라! 성꽈연봉제라잖냐! 스엉과 연봉이 아니라잖냐! 섹스와 연봉이 아니라잖냐! 젠더와 연봉이 아니라잖냐! 이런 식으로 성이라는 글자의 노예가 되어서 성희롱과 성차별을 떠올린다면 너 언젠가 미치고 만다. 정신 차려라.” 

박 교수는 거울을 향해 외쳤다. 


박 교수는 얼마 전 성적成績을 ‘성적性的’으로 잘못 대한 뒤 소스라치게 놀라서 자숙한 적 있었다. 성적을 입력하다가 수강생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성별 성적 결과를 분석했는데 여학생의 성적이 남학생의 성적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럴 거라 예상했는데 사실이 그렇게 나오자 남과 여의 구별이 또렷함을 느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자기도 모르게 성희롱, 성혐오, 성비하의 검열에 걸려들었다. 학생들의 성별을 기준으로 통계를 냈다는 것 자체가 성비하, 성희롱, 성혐오였다. 그는 궁금해서 그랬던 것뿐이지만 자신이 몰래 그랬다는 것이 바깥에 알려질까 봐 겁이 났다. 성적成績을 ‘성적性的’으로 해석한 몰염치한 짓이었다. 박 교수는 자신의 남성성을 학대하며 반성했다. 


박 교수는 안전한 삶을 위해 ‘성’이라는 글자를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머릿속에서 남과 여를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최대한 ‘성’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안간힘 썼다. 일기장에 ‘삶이 간당간당하다’라고 적었는데 이튿날 ‘강간강간하다’라고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실수인 줄 알았으나 불안감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실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강간을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성과연봉제Performance-based salary system는 박 교수의 표현대로 ‘성꽈’ 연봉제이지 성별gender로 연봉을 나누는 남성여성연봉제가 아니었다. 교수씩이나 되어서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박 교수는 성을 먼저 떠올리는 자신이 지겨웠다. 매사에 성희롱 여부를 검열하는 박 교수는 성의 노예가 되어서 스페셜의 S가 섹스의 S로 읽혀서 토가 나왔다. 업무실적에 따라 S(Special), A, B, C, D 등급으로 나누어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성과연봉제였다. 


박 교수는 첨부 문서를 열었다. 공청회 자료를 읽었다. 


개정 예정인 성과연봉제 규정에 성gender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성sex과 관련된 언급이 있었는데 교원이 ‘성희롱’ 등의 가해자가 되면 학교에서 성과연봉을 지급하지 않을 것이며 기간 중에 몰랐더라도 시간이 경과하여 지난 기간 중에 그런 일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면 지급했던 연봉을 회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개정되면서 새로 추가된 내용인지 원래 있었던 내용인지 따지고 싶지 않았다. 박 교수는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그런 규정이 없었던 시절이 용납되지 않을 뿐이었다. 몸을 지키기 위해 매사에 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뀌는 규정에서 그는 잠재된 D등급이었다. S등급과는 아예 거리가 멀었다. 성차별과는 관계가 없었다. 

박 교수는 공청회 알림 메시지를 삭제했다. 성에서 해방되기 위해 페미니즘 책을 열었다.





*박금산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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