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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서평/안성덕/선도적 시 쓰기 방식 ―남태식 시집 『상처를 만지다』, 김영진 시집 『옳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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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서평/안성덕/선도적 시 쓰기 방식 ―남태식 시집 『상처를 만지다』, 김영진 시집 『옳지, 봄』
안성덕 시인
79호/서평/안성덕/선도적 시 쓰기 방식
―남태식 시집 『상처를 만지다』, 김영진 시집 『옳지, 봄』
마르셀 뒤샹,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의 예술과는 확연히 다른 반예술적 경향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팝아트나 미니멀아트 등 20세기를 지배한 현대미술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유명한 작품 「샘Fountain」은 그냥 단순한 남성 변기로 보일 수도 있다. 위생용품점에서 구매한 남성 소변기에 제조업자 이름을 암시하는 가명 R.Mutt로 1917년 뉴욕의 전시회에 제출한다고 한다. 이 소변기는 전시회 측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결국 전시회 내내 전시회장 밖에 밀려나 있게 되었다.
문학, 음악, 미술, 건축, 무용, 연극 등 장르 불문하고 예술은 항상 새로워지려는 경향이 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려 작용한다. 때로는 기존의 틀을 지키려는 반작용과 투쟁(?)을 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전혀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기도 하며 기존의 인식이 바뀌기도 한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려는 작용은 발상, 인식, 표현 등의 변화로 나타나기도 하며 내적, 외적 외형의 변화나 아이디어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아름다울 美 자를 파자해 보면 양 羊 자와 큰 大 자이다. 고대에는 몸집이 큰 양이 절대 아름다움이었다. 배고픈 시절에는 여럿이 배불리 나눠 먹을 수 있는 통통하게 살찐 양이 얼마나 예뻤겠는가. 또 지금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비만을 혐오하지만 몇십 년 전만 해도 대머리에 적당히 배가 나온 뚱보가 사장감, 장군감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이 아름답다는 기준은 브이라인에 팔등신을 넘어 이제 구등신으로 변했다. 이처럼 예술과 미에 대한 기준은 항상 기존의 인식과 틀을 깨고 변화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1. 남태식, 『상처를 만지다』
2003년 《리토피아》로 등단한 남태식 시인이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내 슬픈 전설의 그 뱀』, 『망상가들의 마을』에 이어 4번째 시집인 『상처를 만지다』를 상재 했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다른 방식의 시 쓰기를 보여준다. 타인의 시에 시를 덧입히는 “시에 시”가 바로 그것이다.
올리브비누를 보았다.
옆자리에 3단의 높이로 놓여 있었다.
리어왕이 사랑한 프로방스의 향기라고 쓰여 있었다.
애초에는 옆자리의 올리브비누를 알지 못했다.
올리브비누 하나를 들었더니 향이 강했다.
애초에는 느끼지 못했던 올리브비누의 향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들어오면서
3단의 높이로 옆자리에 놓인
올리브비누를, 올리브비누의 향을 잊었다.
앉자마자 올리브비누의 향이 온몸을 감쌌다.
급기야는 올리브비누의 향이 온 카페에 가득 찼다.
올리브비누를 보지 않았어도 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지금 올리브비누의 향에 싸여 있다.
카페를 나서기 전까지 이 올리브비누의 향에 취할 것이다.
보기 전에는 애초에 느끼지 못했던 향이었지만
이건 사실일까.
한 번도 꽃 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꽃들은 아직 피고 있을까.
순서 없이 꽃들이 지고 피고 또 지고 있다.
*시에 시, 안도현 「순서」.
―「수구守舊」 전문
주지하다시피 안도현의 시 「순서」는 매화, 산수유, 조팝나무, 앵두나무, 사과나무, 탱자꽃 등 봄꽃이 단 한 번도 그 피는 순서를 어기지 않고 피어나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황사가 꽃샘추위가 암만 기승을 부려도 자연의 섭리대로 꽃은 피어난다는 말이다. 세상은 돌아간다는 말씀이다. ‘수구守舊’의 사전적 의미는 옛 제도나 관습을 그대로 지키고 따름이다. 작품 수구에서 시인은 “한 번도/꽃 피는 순서/어긴 적 없이” 라는 안도현의 「순서」를 “순서 없이 꽃들이 지고 피고 또 지고 있다.”고 배반한다, 역설이다. 순리(?)대로 옛것을 지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에 쉽게 휩쓸리고 마는 세상을 비판한다. 그간에도 다른 작품을 한두 행 인용한다던가, 이미지를 빌려온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태식 시인처럼 “시에 시, 안도현 「순서」”와 같은 여러 편의 작품을 선보인 것은 분명 새로운 시도 임이 분명하다.
때로는 3:1이었다가 때로는 1:3이었다가
어쩌다가 2:2가 될 때도 있지만
하던 말만 이어 하는 답이 없는 말에
우리는 지금 우리끼리 팽팽하다.
달리던 기차는 멈췄고
기차는 시나브로 잊히는데
잊은 기차는 언제 기억하려는지
우리는 지금 우리끼리 팽팽하다.
그 기차 앞뒤 얼굴 바꾸고
길을 돌아 떠나버리면
그제서야 함께 맞을 폭풍은 탄식이리니
우리는 지금 우리끼리 팽팽하다.
*시에 시, 이경림 「지렁이들」.
―「우리는 지금 우리끼리」 전문
우리 인간들의 삶을 ‘지렁이들’로 압축한 작품이다. 몸을 꿈틀거리며 동문서답하는 지렁이들, 서로 잘났다고 우기는 인간 군상과 다름없다.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 S자 L자로 구부리고 바닥을 기는 사이에 지렁이 몸이 마르듯, 핏대 세우고 목청 돋우는 사이 우리 인간들의 한평생이 금방 지나간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끼리」도 이경림의 시 「지렁이들」에서 주제를 빌려온 작품이다. “시에 시” 말고도 남태식 시인은 “그림에 시”, “영화에 시”, “편지에 시”, “산문에 시”, “소설에 시” 등 여러 장르의 텍스트를 소재 또는 주제 삼아 선도적 작품들을 보여준다.
2. 김영진, 『옳지, 봄』
남태식 시인의 새로운 시도가 ‘형식’에 중점을 두었다면 김영진 시인의 새로움은 ‘내용’에 방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형식의 변화가 파격적이고 적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내용의 변화 시도에 중점을 둔 시도가 소극적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달 보드레 나르샤』 이어 두 번째 출간한 시집 『옳지, 봄』에서 김영진 시인은 새로운 시도를 한다.
산에다 뿌린 심장의 핏물에 칼을 씻는구나.
어젯밤 사랑했던 목련꽃 가슴 들어냈느냐.
그년 속옷 예쁘게 물들인 꽃단풍 십일월에
검붉은 사랑이 찾아올까 몸치장을 하는구나.
새들은 면면히 내려오는 습관으로 쪼아대고,
나뭇잎은 피를 흘려 물들었다 여긴다는구나.
전등사 배경으로 순록의 뿔 같은 바람을 타고,
새들은 시베리아를 향하여 날아오르는구나.
갯벌에 찍힌 새들의 팔만대장경 사랑 때문에,
새들은 일생 다 읽지도 못하고 죽는다는구나.
잊힌 계절에 검붉은 단풍을 자세히 바라보면,
사랑은 그저 맹목적 맹렬이라 쓰여있다는구나.
―「검붉은 단풍」 전문
사람은 평생 사랑을 원하며 산다. 그러나 사랑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희박하다. 그렇기에 즐겨 문학적 소재로 호출되는 ‘사랑’은 달콤하다기보다는 아리고 안타깝고 씁쓸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버린 사랑에 대한 원망과 오지 않는 사랑에 대한 절망 등이 대부분이다. 상식을 배반이라도 한다는 듯 김영진 시인의 사랑은 호쾌하다. “전등사 배경으로 순록의 뿔 같은 바람을 타고,/새들은 시베리아를 향하여 날아오”른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새들은” “일생 다 읽지도 못하”는 “팔만대장경”을 읽는다. 김영진 시인의 사랑은 가냘픈 꽃잎이 아니라, 금세 스러질 풀잎 위에 이슬이 아니라 “그저 맹목적 맹렬”인 것이다. 그 폭이 강화도 전등사에서 저 시베리아까지 멀고도 멀다.
보름달이 피를 토한다. 천둥 번개 치면 폭풍우가 찢어놓은 구멍으로 물이 들어차 화성에서 날아온 물고기가 사각사각 파먹는다. 칠흑 속에서 보름 동안 다듬은 조각달이 검푸른 바다로 떠난다.
(중략)
소똥 줍는 날이다. 내장에서 아름답게 다듬어진 물체다. 애기뿔소똥구리가 경단을 굴리던 밤의 기억들이 발가락 사이로 삐져나온다. 풀죽을 구수하게 되새김질하다가 뱉어낸 소똥 속 멸종 위기의 곤충들이 다듬어 지고 있다.
―「다듬어지는 것에 대하여」 부분
“천둥 번개 치면 폭풍우가 찢어놓은 구멍으로 물이 들어차 화성에서 날아온 물고기가 사각사각 파먹는다. 칠흑 속에서 보름 동안 다듬은 조각달이 검푸른 바다로 떠난다.” 어린아이의 꿈속에나 나오는 풍경이다. “보름달”, “화성”, “물고기”, “검푸른 바다”, “애기뿔소똥구리” 등의 시어로 일상에 동화를 덧입힌다. 김영진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은 첫 시집 『달 보드레 나르샤』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시가 잘 읽히지 않는다는 시절, 이런 시 쓰기 방식은 분명 그의 충만한 실험정신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그의 시 쓰기가 단지 호쾌한 화법과 동화적 상상력에만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재에 대한 감각적인 접근도 그의 방식이다. 남태식 시인의 방식에 비해 김영진 시인의 선도적 시 쓰기 방식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 한다면 그건 편견이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원래 군사용어로서 전투 시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부대를 뜻한다. 19세기 초에 계급투쟁의 선봉에 선 정당과 당원을 가리키는 정치용어로 사용되었고, 19세기 중반부터 미지의 문제와 대결하여 지금까지의 예술을 변화시키는 혁명적 예술 경향이나 그 운동을 뜻하는 예술용어로 정착되었다. 전위예술가들은 자신의 주관적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시각적·언어적으로 꾸미게 된다고 한다. 역설·모호성·불확실성도 전위예술의 특징일 것이다.
낯설게 하기는 예술기법의 하나로 러시아의 형식주의자인 빅토르 시클로프스키가 개념화했다. 그는 사람들이 매일 마주치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것보다 새롭고 낯선 대상으로부터 미학적 가치를 느낀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낯설게 하기’를 언어, 특히 시어의 효과로 받아들인 데 반해 초현실주의자들은 이것을 사물의 효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사물을 낯설게 받아들이도록 특별한 오브제를 사용했다. 이들은 무의식 속에 습관화된 이데올로기나 일상적인 대상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경이로움을 느끼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언급한 마르셀 뒤샹의 「변기」다. 남성 소변기를 우아한 미술관에 전시함으로써 소변기는 전혀 낯설고 새로운 대상이 된다. 이때 변기는 변기라는 용도를 넘어선다. 그 자체로써 독립적인 대상물로 인지하도록 하여 보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이다.
k-pop의 위상이 대단하다. 가히 충격적이다. 오늘날 전 세계가 열광하는 k-pop의 원조를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라고 보는 견해는 지극히 타당하다. 기존의 창법과 화법을 무시하고 전혀 새로운 노래를 들고나왔다던 그들은 당시 ‘십대들의 대통령’ 혹은 ‘문화혁명가’로 불렸다. 1980년대까지 대중음악의 주류를 이루던 트로트와 통기타 음악에 안주했더라면, 그들의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k-pop은 탄생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시의 화법에 전위적이고 실험적으로 새로움을 시도하는 남태식, 김영진 두 시인의 시의 향방이 자못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성덕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몸붓』, 『달달한 쓴맛』, 리토피아문학상 수상,《아라문학》 편집위원, 원광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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