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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특집 창간 20주년, 《리토피아》가 걸어온 길/백인덕/문학의 위의威儀와 역사의 척도尺度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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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20회 작성일 23-01-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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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특집 창간 20주년, 《리토피아》가 걸어온 길/백인덕/문학의 위의威儀와 역사의 척도尺度 앞에서 


백인덕 시인


문학의 위의威儀와 역사의 척도尺度 앞에서 



1. 뉴 밀레니엄과 맹아萌芽의 때

도무지 사족을 앞세우지 않고서는 이 글을 감당할 재량이 없다. 《리토피아》의 ‘20년’을 돌아보려니, 부족한 내 기억의 용량도 어마어마하고 그 순서와 갈피는 물론 그간 세월에 왜곡된 내용이 많으리라 짐작된다. 따라서 자료에 의존하려니 그 양과 갈래도 또한 만만치 않다. 결국, 편의상 내가 함께한 20년을 몇 시기로 나누어(순전히 자의적으로) 그때마다 이용 가능한 자료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리토피아》 20주년 소사小史를 써 보고자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각지나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하나의 문예지가 창간되고 존속하는데 어떤 한 인물의 중추적 역할, 즉 굳은 의지와 자기희생이 따른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모든 종류의 문예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기관지 형태로 발행인이 달라지고, 만드는 사람들이 수없이 바뀌어도 지속하는 잡지도 있고, 여러 사람이 동인의 형태로 뜻을 모았다가 나중에 체계적으로 진용을 갖추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창간인 또는 초기 발행인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손을 떼면서 전혀 다른 사람에게 인수되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문예지도 있다. 이 여러 상황 중에서 《리토피아》는 한 개인의 흔들림 없는 주관과 희생을 바탕으로 아직 굳건하게 역사의 면면을 이어가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현재도 《리토피아》의 발행인(부인 정기옥)이자 주간의 역을 맡고있는 장종권 시인은 《리토피아》 시작의 처음이자 현재까지 과정의 산 증인이고 기획자이자 조성자이며, 든든한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장종권 시인의 《현대시학》 후배라는 인연으로 몇 차례 시인의 꿈, 또는 향후 계획, 나아가 시인이 한국 문학에 기여하려는 바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모지의 행사 뒤풀이 자리에서, 또 한국시인협회의 지방 세미나에서, 어떤 작은 모임(‘글발’이라는 공 차는 시인들 모임이었나)이 끝난 후이기도 했다. 시인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꽤 오랜 기간을 홀로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01년, 뉴 밀레니엄의 해괴한 공포가 가라앉자마자 계간 《리토피아》가 현실화되었다. 창간사는 당시 가장 활동적인 고명철 평론가가 정리하여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초기 창간의 정신이 ‘리토피아’의 가장 큰 자산이었기에 전문 인용한다.)


“새 천년의 문턱으로 들어서면서 우리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열망으로 들떠 있다. 지난 세기에 점철된 환멸과 오욕의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새롭게 펼쳐질 역사의 대지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수확할 기쁨에 들떠 있다. 사회가 온통 도래할 미래의 전망을 향한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이처럼 꿈꾸기의 욕망이 넘실대는 사회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성을 억압하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의 경계를 넘어 '삶의 해방'을 향한 꿈꾸기의 욕망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지만 정작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꿈꾸기의 욕망이 자본주의의 사용가치 혹은 효용가치로 수렴되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성장한 천민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사실 이러한 우리의 기우는 기우가 아니라 눈앞에서 버젓이 목도되고 있다. 디지털 혁명과 생명공학 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전개될 우리의 삶에 짙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더욱 교묘해진 삶의 억압기제이다. 그것은 해방을 향한 꿈꾸기가 아니라, 해방을 가장한 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관리하기 위한 꿈꾸기이다.

이제 《리토피아》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악무한적 영토를 해체하기 위해 첫 삽을 뜬다. ‘리토피아’는 문학literature과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로, 문학을 통해 현실의 온갖 금기와 억압으로 벗어나려는 꿈꾸기를 실천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의 사용가치와 효용가치로 치닫고 있는 우리의 삶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무엇보다 현실과 유리된 공허한 말이 아닌 현실과 밀착한 구체성의 언어로써 이것을 실천할 것이다. 점점 현실과 유리되거나 현실에 순응함으로써 알맹이 없이 껍데기가 화려한 말의 수사학이 아니라, 튼실히 여문 알맹이의 진실된 언어로써 유토피아를 향한 꿈꾸기의 욕망을 실천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우리들의 작업은 순탄치 않다. 삶의 유토피아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디지털 혁명과 생명공학 혁명으로 한갓 물화된 대상으로 파악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중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앞만 보고 질주하는 우리의 삶, 그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삶을 거시적인 맥락에서 조망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질주의 삶 속에 미시적으로 다원화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의 욕망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리토피아》의 꿈꾸기는 바로 이러한 이중의 작업을 성실히 우직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리토피아》는 주목한다. 가깝게는 지난 1990년대의 문학(혹은 문화) 지평이 거세게 몰아치는 삶의 변화의 광풍 속에서 자신들의 존립만을 위해 삶의 미시적인 부분에 집착한 나머지 삶의 전체를 동시에 성찰하지 못한 현상을 말이다. 꿈을 꾸되, 그 꿈은 자폐적인 꿈이며, 어디까지나 이미 확보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꿈꾸기였다.

《리토피아》는 거듭 말하지만, 예의 자족적인 분위기에 빠진 문학의 꿈꾸기를 부정하고 이를 갱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리토피아》는 ‘정통문학’이라는 문학의 엄숙주의가, 자칫하면 문학을 향해 가해오는 편협한 문학의 엄숙주의를 경계하면서, 문화의 각 장르간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모색해 가고자 한다. 그러면서 문학이 독자로부터 이반되는 현실을 냉철히 응시하고, 독자의 곁에서 호흡을 같이하는 문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낼 것이다. 게다가 지금-여기에서 분출하고 있는 문학과 문화를 향한 패기어리고 참신한 글쓰기의 주체를 존중할 것이다. 《리토피아》는 문학과 문화의 갱신을 위해 전복과 위반의 에너지로 충만된 주체의 생산적 역동성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리토피아》는 전통을 폐기처분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법고창신法故創新의 정신을 곱씹으며,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응해나간 고전문학(문화)적 전통을 오늘의 현실의 맥락으로 전유하는 노력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유토피아는 요원한 것이고, 그 어디에도 없을지 모른다no where. 하지만 유토피아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유토피아를 향해 내딛는 걸음마다 대지로 흘러드는 피와 땀은,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바로 지금-여기now-here에서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이는 징표이다. 《리토피아》는 이 땅의 어딘가에서 이러한 꿈을 꾸고 있는 자들을 찾아갈 것이며, 그들과 함께 새로운 복토福土를 개척할 것이다.”


창간호에 ‘삶의 역동성을 모색하는 유토피아의 언어’라는 표제로 발표된 내용이다. 여기에 참여한 편집위원은 이경림 시인, 엄경희 평론가, 맹문재 시인, 고명철 평론가, 김남석 평론가 등이었다. 물리적인 연배를 따지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젊고 패기가 넘치는 면면이었다 할 수 있다. 이들이 하나로 동의한 점은 ‘역사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오늘의 인간 형상과 면모를 외면하지 않는 문학’을 기치로 했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지나치게 원대하고, 너무 넓은 범주라 쉽게 상이 잡히지 않았지만, 사실 그것은 ‘리토피아’가 한 호, 한 호 회를 거듭할수록 쌓아서 보여 주어야 할 일종의 목표, 지향점과 같은 것이었다.

내 엉성한 기억에 의하면, 나는 창간호가 아니라 2호쯤에서 편집위원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그때 주간도 모르게 ‘맹약’ 같은 것을 했다. 내용은 특집 기획에 최선의 역량을 다하고, 문단에서의 위상 등은 그다음 순번으로 미루고, 따라서 내실이 충분하다고 편집위원 일체가 동의하기까지 ‘신인상 제도’를 운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마 그 상한을 10호까지로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몇 호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리토피아’를 신인을 발굴해도 손색이 없는 문예지로 만들고 말겠다는 객기 어린 포부가 일맥상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편집회의나 기타 ‘리토피아’의 방향과 관련하여 철저하게 불간섭을 원칙으로 해주었던 장종권 주간과 황희순 편집장의 인내와 수고가 있었음이 너무도 명백하다.

뉴 밀레니엄은 욕망의 충일을 넘어 분출의 시기였고, 각종 문예지가 끝없이 창간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문단의 원로, 중진에게 기대지 않고 종합 문예지를 오직 특집과 신작의 질만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것은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2. 외연外延의 확장과 성숙의 때

만약, 《리토피아》를 문예지사의 입장에서 공부한다면, 표지의 디자인 변화만으로도 《리토피아》가 앞선 감수성으로 문단을 인식하고 일정 부분 끌어나가고자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예지는 앞표지에 원로나 유명 문인의 사진을 노출해서 독자들의 이목을 끄는 방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리토피아》는 창간호부터(중간에 편집 디자인상의 이유로 잠시 앞표지에 사진이 게시된 경우가 있지만) 줄곧 혁신적인 디자인을 적용했다. 지금은 거의 표준화되어 《리토피아》의 선도적 의미가 퇴색했지만, 이마저도 기성의 권위에 의탁하지 않으려던 《리토피아》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외연, 아무래도 새로운 시인과 평론가 등을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리토피아》의 외연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의 남태식 시인, 박정규 시인과 김효선 시인을 비롯하여 지금은 백여 명의 시인과 평론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리토피아》는 발행에 관여하는 사람들과 작품을 게재하는 분들 나아가 《리토피아》를 출발선으로 삼은 신인들 모두에게 ‘우리’였지만 ‘울타리’로 위리안치圍籬安置하려는 의도를 가져본 적이 없다. 결속력이 약하거나 문단에서 소위 통용되는 영향력이 작아서가 아니었다. 《리토피아》의 창간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신은 외연보다 내실이라 해야 하겠지만, 소위 문단의 이슈라는 편협함을 넘어 도시, 환경, 노동, 생태 등 기존의 특집 내용만 살펴봐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리토피아》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한 마디를 지난 즈음, 한국 문학의 미래에 기여하는 방안으로 ‘김구용시문학상’을 2011년에 제정했다. 유족과 운영위원회와 《리토피아》가 공동 참여했지만, 그 실행과 지속은 온전히 《리토피아》의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첫 번째 수상자를 결정하면서 《리토피아》는 익히 알지만,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김구용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한 첫 번째 본격적인 탐구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가 2011년 봄호(통권 41호)에 특집으로 실렸는데, 세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구용 시의 초현실주의와 사회성’을 장이지 시인이 썼고, ‘김구용 시의 여성 이미지’를 민명자 선생께서 분석해 주셨다. 그 외 고명철 평론가가 진행을 맡아 ‘김구용 시인, 시와 정신’이라는 제하에 특집 대담을 진행했는데 여기에는 김구용 시인과 강단에서 함께 시를 논했던 강우식, 김동호 시인과 평소 가까웠던 김여정, 박제천 시인 등이 참여하여 김구용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 제정의 당위성에 힘을 보태주었다. 필자는 까마득한 후배이자 후학으로 거듭한 김구용시문학상에서 몇 차례 김구용 시인의 시적 특질에 대해, 때로는 수상자의 시 세계에 대해 특집의 한구석에 자리할 수 있었다. 

간과하기 쉬운 김구용시문학상 제정과 시행의 의의는 《리토피아》가 한국 문학의 미래를 위해 순수하게 투자의 입장을 취한 점이다. 자생 문예지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문학상을 통한 자기 홍보가 아닌 한국 문학, 특히 현대시의 미래 중추가 될 시인들을 발굴하여 격려하고 고무하고자 하는 뜻과 김구용 시인의 시 정신, ‘올곧음과 본질을 간파하는 혜안’이 각종 뉴미디어로 인해 황폐화하는 인간 정신세계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는 문학적 자기희생이었다는 점에 있다.

역대 김구용시문학상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2011년 1회 권정일, 이어 2회 장이지, 3회 김중일, 4회 김성규, 5회 김안, 6회 남태식, 7회 안명옥, 8회 허은실, 9회 하상만, 10회 윤의섭 시인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고 시단의 중추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반적인 현상으로 2010년 이후 문학, 특히 문예지를 에워싼 환경은 극도로 나빠졌다고 할 수 있다. 뉴 밀레니엄과 함께 시작된 욕망의 분출은 무엇이든 가능한 것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이미 끝난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싸움이 전제되어 있었다. 신문, 회보, 잡지, 서적과 같은 올드 미디어는 독자 이전에 후원자와 광고주를 잃었고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뉴미디어는 문학예술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 활동 전반을 지배하며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형상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문예지가 어떤 위상을 가졌는가, 또는 문예지를 포함한 출판계 전체의 상황에서 볼 때 문예지의 몰락이 어떤 함의가 있는가, 등의 문제를 차치하고 당면한 위기에 대해서는 응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간 《리토피아》는 몇 개의 문예 계간지들과 연합하는 전략에 동의했다. 처음에는 8개 정도의 지역 문예지들이 각 지역의 대표성을 담보한 채 함께 지면을 공유하고 필자를 교류하고 공동의 어젠다를 개발하면서 일 년에 한 번 만나 나름의 한마당을 열었다. 이렇게 ‘전국계간지편집자회의’에 참여하였다. 함께 하며 수고한 문예지 편집자들을 위해 각 문예지는 각기 수상자를 선정하여 함께 축하하고 공동 사화집에서 이를 공개, 발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20년은 창간 20주년을 맞은 《리토피아》가 그 축제의 주관사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순연되었음이 안타깝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계간지는 제주의 《다층》, 인천의 《리토피아》, 전주의 《문예연구》, 서울의 《미네르바》, 광주의 《시와 사람》, 대전의 《시와정신》, 서울경기의 《열린시학》 등이고 올해부터는 대구의 《시인시대》가 합류할 예정이었다. 여기서 시행하는 ‘전국계간지작품상’의 수상자로 《리토피아》는 첫해인 2014년 천선자, 이후 정치산, 박하리, 이외현, 정령, 정무현, 정미소 시인 등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또한 《리토피아》는 ‘리토피아문학회’를 중심으로 계간 《리토피아》에 우수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예지의 발전에 공헌한 수고를 기리기 위해 ‘리토피아문학상’을 시행하고 있다. 이 수상자들은 2012년부터 1회 김승기(시인), 2회 남태식(시인), 3회 김영식(수필가),  하두자(시인), 천선자(시인), 최향란(시인), 정미소(시인), 안성덕(시인), 허문태(시인)이다.

급변하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려는 《리토피아》의 또 하나의 선도적 시도는 ‘시노래’의 창작 및 보급이라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리토피아》의 역사는 송년회의 면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초장기는 ‘발언의 시기’였다. 《리토피아》를 만드는 사람들과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 모여 마치 무슨 전략회의를 하듯 차분하게 나긋나긋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다음은 ‘연설의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인이 등장하고 필진이 늘면서 문단의 선생님들을 모시기 시작했는데 한 분, 한 분 덕담을 듣다 보면 예약 마감 시간에 쫓기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시노래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다. 인천, 간석오거리의 ‘아름다운 시절’도 떠오르지만, 기본적으로 참여한 여러 시인들의 시가 음률을 타고 전문 가수들에 의해 불리는 특별한 감흥이 기대되던 때가 있었다. 

이처럼 ‘시노래보급운동’은 《리토피아》가 앞으로도 앞장서 추진할 시의 영역 확장과도 같은 사업이다. 분명한 시각 이미지와 해설 같은 시를 결합해 시가 뉴미디어에 의해 배척당하는 현상을 돌파하려는 시도는 사실 무의미하다. 시를 읽는다, 눈으로 읽는다, 그래서 시각적 행위다라는 이해는 시에 대한 몰이해의 가장 극단이다. 시는 보여지는 이미지가 아닌 생성하는 이미지기 때문에 시인 것이다. 이때 시는 눈이 아니라 입과 귀라는 즉, 시각에 종속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를 보존하려 하기에 ‘그림’이 아니라 ‘노래’가 된다. 모든 시가 보여지는 것, 혹은 볼 수 있는 것을 포착하려는 노력이 아닌 다음에 시적 이미지란 오직 우리의 정신에서만 빚어지고 해체되는 것이 옳다. 따라서 ‘시노래’는 시의 외연 확장에 가장 적합하고 바람직한 방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이 주최한 ‘창작시노래콘서트’는 17회까지 성황리에 진행된 바 있다. 코로나 정국 이후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리라 짐작한다.


3. 문학과 유토피아, 지연遲延되는 꿈을 향하여

아무리 약사略史라 해도 모든 역사는 결국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기록되고 기억된다. 지난 20년, 계간 《리토피아》는 우리, 함께하지만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으려는 정신과 자세로 매호를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일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사람을 기억해야 하고, 그 모두와 함께 지연하는, 내일 또 내일 자꾸 내일로 미뤄지기만 하는 ‘유토피아’를 향해 가야 한다. 문학은 미지를 향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이 또한 유토피아와 같다. 아직 써지지 않은 글이 최고의 글이고, 도착하지 못한 그곳에 ‘꿈’이 있다.

알게 모르게 《리토피아》를 이끌어 주신 분들이 계시다. 강우식, 김동호, 조건상, 문효치, 박범신, 송재소, 허형만, 박찬선, 고창수 선생님(무순)과 작고하신 이가림, 임강빈, 강인섭 선생님이시다. 또한 편집진으로 수고해주신 권정일 시인, 현재 편집위원으로 수고하고 계시는 김유석, 김중일, 김성규, 남태식 시인과 김익균, 허희 평론가들이 《리토피아》의 진정한 가족이라고 믿는다. 오랜동안 《리토피아》를 편집해온 숨은 공로자는 아마도 현재 편집장인 박하리 시인일 것이다. 《리토피아》는 한결같은 걸음으로 앞으로 20년도 함께 할 것이다.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짐작의 우주』.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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