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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특집 제7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시와사람|손수진·수상작 관매도 외 1편 /신작 세상에서 가장 짧은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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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62회 작성일 23-01-1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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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특집 제7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시와사람|손수진·수상작 관매도 외 1편 /신작 세상에서 가장 짧은 안부 


손수진


시와사람─수상작 


관매도 외 1편

―우실



저쪽은 바람의 길이고 신의 길이여


돌담이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만드는 바람의 언덕 

만장도 없이 상여 하나 나간다 

할미중드랭이굴을 지나 

하늘다리 쪽으로 

 

아가, 아가, 울지 말그라

아무리 애달파도 여그서는 보내야 하는 거여 

저쪽은 산사람의 영역이 아니랑게

네가 따라갈 수 있는 길이 아니랑게

 

하늘 문을 열어달라는 종잡이가 앞장서  

망자 대신 마을을 향해 하직인사를 하고

절벽 아래는 파도가 흰 거품을 물고 달려들고

바람이 상두꾼의 허리를 휘어감는다


이 사람들아 정신들 바짝 차리게


앞선 사람이 하늘에 빈다

바람을 재워 주십사

무사히 하늘다리 건너게 해주십사

언덕에 남은 이들도 신에게 손을 모은다

우실을 나간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십사


뱃길 백오십리

매화가 아름답다는 섬 관매도 

옥황상제가 공기놀이를 하다 떨어뜨렸다는 

커다란 꽁돌이 있는 바닷가 언덕 

재액도, 역신도 함부로 넘어올 수 없다는 성과 속의 경계 





귀얄무늬 분청



거칠고 투박하고 억척같은 가시내

적토에 뿌리내린 양파 같이 

매운 근성 지닌 가시내

찻잔도 되고, 주발도 되고  

때론 항아리 같이 웅숭깊은 기질을 품은 


도공의 딸로 태어난 가시내


시집가는 날

차마 민낯으로 가기 부끄러워

아껴둔 백토 분 손수건에 묻혀 

아버지 몰래 얼굴에 찍어 바르고

가마 속으로 걸어들어간  

순하고 착한 월선이 그 가시내  


흰 물새 한 마리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노을 진 바닷가 

열사흘 희미한 낮달로 떠서 

봉곳한 아랫배 쓸어내리며

물결무늬로 울던 


귀얄무늬 그 가시내





신작


세상에서 가장 짧은 안부



별다른 용건도 없이

밥 먹었냐? 

묻고 뚝 끊어 버리는 전화

아버지는 그런 전화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하셨습니다

밥 먹었냐는 그 한마디 속에 

모든 안부를 꾹꾹 눌러 담아

쥐어박듯 가슴팍에 퍽 안겨 주고 끊어 버리는

장작개비처럼 뭉툭하고 거친 말 속에 스며있는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짧은 안부를 

이제 들을 수 없겠습니다





심사평


전통적 서정을 계승



계간 《시와사람》은 손수진 시인의 「관매도」(2019년 시산맥 겨울호)와 「귀얄무늬 분청」(2020년 시와사람 여름호)을 올해의 계간지 우수작품상으로 선정한다. 손수진의 작품들은 보기 드물게 서정시의 위의와 본령을 실천한다. 서정시의 전통을 새롭게 발현하는 그의 시는 주로 서사를 이끌어가며 독자친화적인 언어로 쉽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관매도」에서는 “저쪽은 바람의 길이고 신의 길”이라고 인간과 신의 경계를 설정한다. 그곳은 “돌담이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만드는 바람의 언덕”이다. 이렇듯 인간의 영역에서 신의 영역의 경계에선 상여 아래에서 누군가 울지만 산 사람이 갈 수 없는 영역으로 망자가 가야하는 상황이다.

마침내 바람이 잦아들고 망자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신의 영역으로 건너간다. 이러한 장례식 전통은 관매도라는 남해섬에서 이어져 왔는 바 시인은 “재액도 역신도 함부로 넘어올 수 없다는 성과 속의 경계”에서 죽음을 공손하게 인식하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통찰한다.

「귀얄무늬 분청」 역시 시인이 사는 무안지방의 분청사기의 전통에서 시적 착상을 하였는바, “거칠고 투박하고 억척같은 가시내”를 귀얄무늬 분청자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묘사하였다.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귀얄무늬 분청을 의인화시킨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좋은 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귀얄무늬 분청자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도공의 딸로 태어났다”는 시행을 통해 귀얄무늬 분청자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장치가 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의 백미인 “시집가는 날” “가마 속으로 걸어간/순하고 착한 월선이 그 가시내”라는 견고한 정신성과 정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 서정을 계승하면서 참신하고 개성있는 손수진 시인의 작품은 이른바 미래파 소동 이후 전통적 서정을 노래한 시편들이 낡은 것처럼 치부되는 우리 시단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시와사람 편집위원회





수상소감


좋은 시라면 영혼이라도 팔고싶어



한 때 시에 미쳐 있을 때가 있었다. 

미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심지어 꿈속에까지 시는 나를 따라다녔다. 

메모지와 팬을 머리맡에 두고 한 줄의 영감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칠 때가 있었다. 

고전에 남을 시 한 편 쓸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다.

그렇게 미쳐 있는 나를 보고 그가 말했다. 가정을 택하든 시를 택하든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나는 가차 없이 시를 택하겠다고 했다. 그 후부터 그는 더 이상 태클을 걸지 않았다.

밤을 새워 시를 쓰던 책을 읽던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랬던 때가 있었는데 그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현이 점차 느슨해져 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상하고는 거리가 멀다고만 느꼈었는데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에 선정 되었다니 감개무량하다. 부족한 시를 선정해 주신 시와사람사에 감사드린다.





*손수진 2005 년 《시와사람 》으로 등단. 시집 『붉은여우 』, 『방울뱀이 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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