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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특집Ⅰ│내 시의 모멘텀/최명진/나와 시와 흰 당나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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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965회 작성일 19-02-1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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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특집Ⅰ│내 시의 모멘텀/최명진/나와 시와 흰 당나귀들



과학자를 꿈꾼 적 있다. 먼 이야기다. 뉴턴의 사과나무를 기대했으나 깨어보니 땡감 한 알을 품고 있는 꼴이랄까. 아마도 시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인지 무명시인으로 살기에 일상은 곳곳에서 난처할 때가 많다. 확, 때려치우라 할 때 그랬어야 했나. 한편으로 이런 시가 있어 내 삶의 가치를 가늠하며 산다.
아주 우연찮게 찾아왔다. 학창시절 밑줄 그어가며 해석하던 김소월 시인의 ‘초혼‘을 어느 날 찬찬히 곱씹어보다 울컥, 하고 마음 어디가 저릿함을 느꼈다. 그걸 뭐라 할까. 내 이성이 죽은 줄만 알았던 감성을 보고 초면에 몹시 당황했을, 그 쭈뼛함을 아직 기억한다. 그렇게 ‘무엇인가‘에서 ‘어떤 것인가‘로 세상에 대한 질문을 바꾼 나는 즐기던 과학상식을 접어두고 시집 한 권을 책가방에 넣었던 듯하다. 그때부터 응앙응앙 울기 시작했을까. 당나귀들 말이다. 갈기가 고운 흰 당나귀가 아니라도 절뚝이는 절뚝절뚝,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어느 날부터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살고 있다.
가난하고 태평한 내가 결혼을 하고 아내는 나를 사랑하니 잔소리 충만하고 나는 베란다 너머를 응시하며 소주를 마신다. 혼자 피식 웃으며 생각한다. 그날 장모의 제스처, 말투, 진지하고 즐거웠던 술자리. 나는 어느덧 처가와 격식이 사라져 부끄러움을 상실한 사위가 되었다. 이 버릇없음은 다름 아닌 장모당나귀와 아내당나귀가 나를 잘못 훈육한 탓이다.


장모는 기분이 좋을 때
좌로 우로 고갯짓을 하며
내게 강조하신다


매번 모른다지만
그 버릇 속엔 콧노래 같은 게 들어있다


울산에 살 때 장인이 내주던 식은 홍게찜이라던가
어릴 적 마당에서 먹던 곶감이라던가
냇물에 훌훌 씻어낸 생오이라던가
처음 가 본 하롱베이의 풍경이 그렇다


술이 거하게 취할 때도
그 말투는 풀이 죽지 않고


언젠가 장사를 접고 마셨을 쓰디 쓴
소주 서너 병 쯤 기본으로 녹아있다
몇 번 부서진 살림살이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처남을 낳은 강원도의 쪽방이나
아내의 첫 재롱잔치나 더러
맛깔 난 것들도 안주처럼 깔려있다

지금도 그것은 저녁식탁에서
말 달리듯 발랄하여


오늘 이모랑 간 찜질방 말이지
넓기도 넓고 말이지
얼마나 좋은지 몰라아


그녀가 모를 리 없다
이 구역의 모든 찜질방을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나는 시를 덮어두고 일어나 베란다로 간다. 아내의 잔소리가 꼭대기에 달했기에 빨래건조대에 널어둔 빨래를 개고 베란다 창을 열어 구겨진 이불을 허공에 탈탈 턴다. 탈탈 털며 생각한다. 안녕. 밤의 도시는 청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명암으로 가득하다. 저 속에서 떠돌이 당나귀들은 외따로이 서있거나 앉았거나 가로등 밑을 걷고 있을 것이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만삭으로 뒤뚱거리는 아내여.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중간 정도에 자리한 유인원처럼 아내는 허리를 꺾은 채 무언가를 자꾸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한다. 불룩해진 몸에도 곧 태어날 아기의 보금자리를 위해 저리 바쁘니 뭉클하다. 저 모습이 가치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작년에 장인이 돌아가셨다. 창창한 나이에 어여쁜 그의 당나귀들이 크게 앓았다. 나는 격한 마음을 달래줄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슬픔에 온전히 내가 함께 들어앉을 수 있을까. 내 시가 부끄럽기도 했다. 바라본다는 것. 그것이 내가 당도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인 것이다. 당나귀야, 슬퍼하지 마. 허물 뿐인 위로는 싸라기눈처럼 부스러졌을 것이다. 그래도 막막한 앞길을 타박타박 걸어 여기까지 왔다. 아내여. 삶을 희로애락으로 나눈다면 아내에겐 첫 아이가 생겼다는 것이다. 소파에 앉아 배를 쓰다듬는 아내의 희미한 미소를 이해한다. 저 미소에 어찌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있겠나.
시는 여전히 어렵고 그 방법에서 힘이 들어갈 때가 많다. 내 시를 비유하자면 그렇다. 완전한 절망을 끄집어내기 위해 나를 절망에 가둘 수 있다. 한들, 그것은 내 절망이 아니기에 보석처럼 화려하다. 내 욕심을 비유하자면 그렇다. 나는 보석을 갈망하는가. 말하자면 간절히 그렇다. 그러기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당신을 지켜보는 일. 내 감정에 속지 않는 일. 이것이 시를 위한 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디즈니 ‘겨울왕국‘의 OST를 따라 흥얼거리는 음치인 아내를 본다. 나의 당나귀. 신혼여행 중에 비보를 듣고 와르르 무너졌던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득하다. 시 한 편을 썼다. 아직은 스산할 마음 조금이나마 위로되기를 바라며.


긴 터널처럼 아내가 운다


새벽녘 파리공항에서
까마득한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옆에서


멀리서, 저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우리는 고작
두 사람으로 엉켜

지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견디고 있다


공명통으로 벌어진 아내의
메마른 입술이 가여워,
옹알이로 부르짖는 말들


그게 당신을 위한 숭고한
기도인 줄 나는 안다


너무 텅 비어 꽉 찬
마음들로 하나씩


하나씩 돌려보내는 아내여


오늘을 평생 놓치지 않을 것처럼
꼭 쥔 두 손으로


그리고 아버지
우리를 잊지 마소서
―「잠든 자를 위한 기도-장인의 부고」



최명진 2006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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