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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제8회 리토피아문학상/김유석/담백한 서정으로 터치하는 삶의 담채―안성덕의 신작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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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제8회 리토피아문학상/김유석/담백한 서정으로 터치하는 삶의 담채―안성덕의 신작시 읽기
일전에 좀 두꺼운 시집 한 권을 받았다.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좋은 시들을 선정해 묶었다는 따로 표제가 없는 시집이었다. 비록 한 편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시인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묶음이어서 비교적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이런 앤솔러지에 한 눈 팔리는 것은 내용의 다양성에서다. 개개인의 사유와 의식을 염두에 둘 수 있고 개성 있는 시적 장치나 틀 까지도 어림할 수 있어 한 사람의 작품집을 읽는 것보다 아기자기한 맛이 난다. 주관적 취향이겠으나 연말 쯤 이런 시집 한 권 읽어보는 것도 썩 괜찮을 듯싶다.
아스피린 두 알을 먹었다. 절반쯤 읽고 한 알, 다 읽고 나서 또 한 알. 그러고도 한참이나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역시 개인적인 취향이나 좋은 시를 읽은 후에는 머리가 텅 빈다. 어떤 시가 좋은가는 우문에 지나지 않지만 좋은 시에 대한 반응이라면 일단 생각이 말끔히 표백된다. 그 후 잠시, 새물내 나는 빨래 같은 머릿속을 좀 전 읽은 작품의 한두 구절이 맴돌 때이다. 그 한두 구절이 전체의 여백을 오랫동안 일렁이게 하는 시를 만났을 때 아스피린 대신 공연히 술 한 잔을 마시게 된다.
마치 여러 명이 관여한 한 사람의 작품집을 읽었거나 적어도 한 사람이 관여한 여러 명의 시를 읽은 듯한 느낌으로 책 속을 빠져나오며 요즘 쓰여 지는 시들을 생각해 보았다. 크게 세 가지 경향에서다.
우선은 전통적 시 쓰기이고 다음으론 서정에 유사관념을 끼워 넣는 형태의 시편들이다. 신선한 바람을 불어왔던 그 신서정들은 유행(?)한 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원관념이 보조관념을 끌어오고 그 관념이 또 다른 3,4차 관념을 파고드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작품들로 가름할 수 있다. 의식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현대시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으나 의미의 해석과 함께 감성의 전이 또한 시의 본질 중의 하나임을 고려할 때, 어느 편이든 그것은 시인 각자의 몫일뿐이다.
다소 장황하고 난해한 시들에 억류되어 있던 탓인지 안성덕의 신작을 읽는 잠시 환기되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골판지는 골판지대로 깡통은 깡통대로
끼리끼리 모여야 밥이 된다고
삼천변 요요要要자원* 파지 같은 생들이
마대자루에 빈 페트병 고봉으로 눌러 담는다
오락가락하던 진눈깨비가 물러간다
유모차에 생활정보지 걷어오는 할머니
치마꼬리 따라온 손주 볼이 발그레하다
어슬렁거리던 누렁이가 꼬리친다
쥐불 놓는 아이들의 함성 오종종 모여 있는 갈밭
풀린 연기 사이로 북녘을 가늠하는
오리떼 몸통이 통통하다
버들개지 은대궁도 제법 토실하다
모두 요요夭夭하니
풀려나간 요요yoyo가 제 목줄 감아올리듯
스르르 계절조차 되돌아온다
쥐불 놓은 갈밭에도 펜촉 같은 새순이 돋아
돌아올 개개비떼 노래 낱낱이 기록하겠다
코흘리개 맡겨놓고 감감 소식 없는 며느리도
한 소식 보내오겠다
―「입춘」 전문
한 권을 통독해야만 겨우 작자의 의식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시다. 단지 몇 편으로 그 시인의 사유를 거르는 일은 대단한 결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성덕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초기 작품들에 대한 짙은 인상 때문이다.
신춘문예 당선작인 「입춘」을 관통하는 것은 생명성이라 하겠다. 고난하게 살아가는 결손가정의 아픔을 봄을 맞는 풍경 속에 안친 모습이 쓸쓸함을 지나 따뜻하게 감친다. 그늘은 흔히 그늘진 정서로 얘기하기 십상인데 이 시를 읽노라면 폐지를 주워가며 어린 손자를 거두는 할머니의 고달픔이 봄을 맞는 자연들 틈에서 묘하게 희망적으로 소생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언어와 화법이다. 시의 낱말에는 그 자체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겠는데 그것을 주제에 밀착시키는 힘이 도드라진 이 작품이 예시하듯 안성덕은 낱말과 그 낱말들을 엮어가는 발랄한 화법으로 시에 생명성을 불어넣고 있다.
첫시집 「몸붓」에 실린 많은 작품들에서 그가 지향하는 생명의식을 느낄 수 있다. 표제작인 「몸붓」부터가 그러하다. 시장골목에서 고무타이어를 신고 질질 기며 참빗이나 좀약 등 허드레 것이나 팔고 살아가는 토막 난 몸뚱이의 생을 ‘지렁이’에 비유한 작품으로 “지렁이 반 마리 기어간다”로 운을 떼 “제 몸의 진물을 찍어/평생 한一자 한 자밖에 못 긋는 몸부림”을 펼쳐 보이는 모진 과정이 측은지심을 넘어 삶의 긍정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런 점이 안성덕의 본질이자 그의 시를 읽기 전에 고려해야 할 정신지향임에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에 보여주는 신작들은 이전의 경향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화법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화법은 재기와 발랄함에 있어 독특한 개성을 띠고 있다. 예시한 「입춘」에서 충분히 엿보이듯 소재들을 배치하는 솜씨가 그렇고 저변에 깔린 음보 또한 그렇다. 크로키croquis나 드로잉drawing처럼 세밀한 부분보다 시적 대상의 전체적인 동세를 생동감 있게 파악하는 것이 안성덕의 개성이다. 그의 시가 자연스런 리얼리티를 생성해 내는 데에는 하나의 정물적인 묘사보다 여러 소재들을 끌어들여 한 폭의 질감 있는 그림을 완성하는 점에 있다. 그 소재들이란 겉돌기 쉬운 이질적인 것이거나 상투적으로 흐르는 감성의 대상으로써가 아니라 활용방법에 따라 고유의 이미지가 탄력을 갖도록 하는 텍스트론적인 대상들을 말함이다. 하나하나를 정밀 묘사하는 일 보다 그것을 투시한 후 얻어지는 감각들을 끌어안는 작법으로 주목받아 온 그를 이번 신작들은 약간 제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송장인 듯 못 박힌 잿빛 적막 한 마리, 제 숨통 틀어쥐고 눈 밖의 과녁을 겨누고 있다 바들바들 시위를 견디고 있다
―「적막」 부분
고래 잡아오겠다고 큰소리 뻥뻥 노량진 큰물에 간 놈이 짐 싸들고 내려왔다 서른 살 그 꼬맹이가 십 년 세월 허공에 새겼을 고래 한 마리, 너끈히 수천 년은 살아남을 한 마리 고래
―「고래사냥」 부분
방아쇠 잘못 당기고 도망쳤다 영창대신 월남에 간 형, 먼 남쪽 십자성 아래 메콩 강가에서 장남답게 꼬박꼬박 집안 걱정을 했다 유난히 긴 장마에 그해 우리 집은 내내 눅눅했다 아오자이 자락에 친친 감겼던 걸까 형은 끝내 귀국선을 타지 않았다 육사 수석이면 별 서너 개는 따 놓은 당상이라장전되어 있는 줄도 모르고 제 머리통에 격발 확인한 별똥별이었다 좌표
―「별」 부분
처마 밑,
번개보다 빠르게 사내가 웅크린다 뻑뻑
젖은 담배를 빤다
―「장대비를 가르는 법」 부분
눈 감으면 다시 또렷해
위봉사 목어는 스스로 제 눈꺼풀 잘라버렸다
―「목어」 부분
다음으론 주제의 변이가 눈에 띈다.
안성덕의 시들은 ‘나’ 보다 ‘우리’에 대한 메타포가 강렬했다. 기억 속의 삽화든 살아있는 현장이든 화자는 ‘나’이지만 읽는 이는 ‘우리’가 되는 시세계를 펼쳐왔다. 개인적인 체험 속에 사회적인 공동체의식을 넌지시 드리우는 데에 남다르다 할 것이다. 해학적으로 읽히다가 뒤에 가선 가슴이 서늘해지거나 상투성을 띤 듯해도 되읽으면 은근한 복선이 떠오르는 작품들이 그의 특허라 할만 했다. ‘나’를 통해 곧 ‘우리’를 이야기를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그만큼 투철했던 공동체의식에 견주어 신작들이 견지하는 주제는 대체로 개인적인 색채가 짙다. 공교롭게도 다섯 편 모두에서 느껴지는 표정이 화자의 자화상 같은 느낌이다. 못 박힌 듯 냇가에 서 있는 왜가리 한 마리를 주시하고 있는 「적막」은 고즈넉하고 처연한 자신의 모습을 본뜨는 듯한 풍경으로 읽힌다. ‘박제’ ‘송장’ ‘밥숟가락 놓치듯 떨어지는 해’ 와 같은 낱말과 비유가 왜가리를 화자의 모습으로 어렵지 않게 치환하며 적막한 심정을 노출시키고 있다는데 있다.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자식의 안쓰러운 과정을 그린 「고래사냥」역시 개인사의 한 부분이다. 삶에 편입하기 위해 ‘큰물’에 나가 공부하다 결국은 빈 몸으로 돌아 온 아들을 맞는 아버지의 심정이 가슴 속에 새긴 암각화처럼 절절하다. “허공에 새겼을 고래 한 마리”는 아들의 고래이자 세월을 거슬러 “고래 등에 작살 꽂고 싶은 팔다리 어디 부러진 어느 병신 애비”가 새겼던 그 고래임을 넌지시 짚으며 동화해 갈 수밖에 없는 삶을 수긍하고 있다. 「고래사냥」은 아들을 향한 아비의 짠한 마음을 드리우면서 한편으론 아비 자신의 삶에 대한 연민이 뭉클 묻어나는데 그 개인사를 좀 더 확장하면 ‘나’에서 ‘우리’의 현실을 관찰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안성덕의 기존 시의식에 정통한 작품으로도 재해석 할 수 있다.
신작들 가운데 가장 자전적인 것은 「별」이다. 연작의 형식을 갖추어 유년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별자리를 더듬어 나간다. 그 별들은 사춘기의 “여드름 자국” 같은 북극성 이었다가 “좌표가 지워진” 형제의 별똥별이 되고, 성장통의 “개밥바라기”를 거쳐 필경 오늘에 이르러 “별 볼 일 없는 나날”로 수렴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아닌 형의 죽음을 회억하는 두 번째 연작이 다른 부분들 보다 아주 리얼하고 처연하게 각인된다. 거기에는 ‘월남전’이라는 역사성이 관여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고래사냥」보다 더 진폭이 넓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그 하나는 방아쇠 잘못 당기고 영창 대신 월남을 선택하게 만든 그 ‘방아쇠’의 주체가 무엇인가 이다. 전장 중에도 장남으로서 눅눅한 집안 걱정을 해야만 했던 가정사인지 영창을 가게 만든 사회적 상황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그 점이 오히려 그 두 가지 문제를 아우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끝내 귀국선을 타지 않고 “머리통에 격발 확인한 별똥별” 로 자신의 좌표를 지워버린 형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다. 개인사로 추정되는 “면내의 자자한 소문” 이면에 월남전을 통해 보고 느낀 인간성의 상실이랄지 억압되고 왜곡된 시대정신에 대한 갈등과 방황의 흔적까지를 되묻고 있는 듯 보인다. 연작의 형식에서 따로 떼어 써도 좋을 단단한 시편이다.
약간 다른 관점으로 읽어도 무방할 「장대비를 가르는 법」과 「목어」도 개인사의 주변에 포함하게 하는 것은 무거워 보이는 정서가 한 몫 거들고 있는 까닭에서다. 앞서 얘기했듯 안성덕의 시풍은 진중한 주제를 발랄한 보법으로 치환하여 적시하는 데에 가히 일관성 있는 시인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지만 두 작품은 관찰자 시점에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점과 전체적인 어조에 있어 이전의 범주 밖에 세워 읽을 수 있다. “젖은 담배를 빤다” “눈물을 감추는 게 아니다 어룽어룽 자꾸만 따라붙는 그림자” 와 같은 자조 섞인 구절들에서 느껴지는 어조는 자못 자기 당위에 고착되어 시적 의미를 제한하는 여지가 아주 없지는 않다.
불과 몇 편을 두고 한 시인의 시세계의 변화를 탐색하려 함은 매우 편협한 시 읽기가 아닐 수 없다. 굳이 하나의 테마로 엮어 해석하려 할 때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헤아리는 우를 범하기 쉽다. 시인의 의식은 아주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 주관적인 것으로 획득한 정신세계는 그만의 객관성을 띤다. 사실 보편적 시 읽기는 그 시인이 성취한 독특한 개성의 틀에 얽매이기 쉽고 또한 그것으로 시인의 새로운 의식을 추정하기도 하는 것이어서 신작을 읽을 때는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험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안성덕의 내면의식의 추이를 이 번 작품을 통해 조금은 지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화법과 주제를 설득해나가는 시적 전개의 독특함 이외에 또 하나 두드러지는 점은 이야기 구조일 것이다. 안성덕은 사변적인 관념보다는 스토리적 구성을 통해 개인의 경험을 전체의 것으로 공명시켜나가는 시작법에 능한데 신작들에서도 그 부분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다만, 과문한 탓에 미처 감지하지 못한 시인의 치밀한 의식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시집 속의 시 한 편을 다시 읽는다.
세검정으로 읽었네
쉰 고개를 넘으니 영락없이 당달봉사네
비데의 세정을 세검정으로 읽은 아침
거사를 끝낸 사내들이
피 묻은 깔을 씻었다는 자하문 밖 세검정에서
구린 항문을 씻네
물줄기를 리듬으로 할까 마사지로 맞출까
고민을 하네
무딘 부엌칼도 한 번 못 세워주면서
그저 밑이나 씻고 있네
허나 바꾸어 생각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성도 싶네
글쎄 이 엄동에
피 한 방울 안 묻힌
빼보지도 못한 칼집 속의 칼은
왜 씻어?
경마 잡히듯 따끈따끈 달궈진 변기를 타고 앉아
똥끝 타던 어제를 깨끗이 비우네
구린 똥구멍을 씻네
괄약근 움찔거리며 지그시 눈을 감는 이 맛이야,
아무나 알려구 아암
속, 편안합니다
―「속, 편안합니다」 전문
김유석 1989년 〈전북일보>,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상처에 대하여』, 『놀이의 방식』. 《리토피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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