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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허청미/엉겅퀴 스위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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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23회 작성일 19-06-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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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허청미/엉겅퀴 스위치 외 1편



엉겅퀴 스위치 외 1편


허청미


사자의 포효가 묵음으로 편집되는 오후
동물원 외곽이 고요하다
길섶에 우뚝, 우직한 수문장 같은 엉겅퀴에 감전되다


허공을 물고 솟구친 검붉은 혀의 돌기를 꽃이라 해도 되나
접근금지 독설 같은 초록 가시에 찔리다
창과 방패의 자웅동체 같은 속내가 궁금한
저 검붉은 꽃잎에서 피 냄새 날 것 같은
식물도감 속에 한 뙤기 거처를 얻어 명패를 걸었으니
너를 호명해본다, 엉겅퀴―


이생에서 아득한 그때
논두렁에 웃자란 망초 질경이 쇠뜨기 닮은 계집애의
여린 검지에 박힌 엉겅퀴 가시는 번개였다


긴 찰나의 이생에서
첫 통정의 밤이, 첫 분만의 아침이
해마의 낡은 회로에 오랜 기억의 혈전들이 녹아
마하의 속도로 찌르르―
아찔했던, 그때 눈물은 왜 흘렀을까


다락방에 먼지 쌓인 내 실록實錄의 스위치 같은
두근두근 새가슴이 되는 알싸한 트라우마 그 짜릿함으로
오버랩 되는
한 생의 통과의례 때마다 우직한 수문장 같던 환유다




蜜源으로 가는 길


화이트아웃, 사방이 하얀 무극無極이다
철없는 눈의 헤살이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만 따라가다가 사라져버린
없는 화살표를 믿고 그냥 따라가다가


이글루 속은 만화방창, 여기가 밀원인가
나는 길을 묻다
쭈글쭈글 오이지 같은 맨발이
낡은 계단을 오르는 끝에
유통기한 지난 씨방에서 핀 헛꽃이 시든 자리엔
밀蜜통이 텅 비었다


다시, 없는 화살표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또 다시, 밀원청과물 가게 앞 어린 계집애한테 길을 묻다
소녀의 뱃속 여린 알집의 미래를 경배 듯
때깔 고은 과일들이 모두 그녀의 배꼽을 향해 도열해 있다
 
양지쪽 지붕 추녀엔 고드름이 녹고
나무들 빈 가지엔 눈독에 덧난 알레르기처럼 꽃눈이 트고


밀원蜜源으로 가는 아득한 길 위에
시그널처럼 서 있는 소녀의 정수리에 꽃 타래 환하다
축지법에 든 해 걸음이 찰나인 거
서녘 노을빛이 파스처럼 발목에 스미는
나는 길 잃은 한 마리 벌이었던 거


허청미 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꽃무늬파자마가 있는 환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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