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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이외현/흔들린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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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신작시/이외현/흔들린다 외 1편
흔들린다 외 1편
이외현
아스팔트 위에서 굼실굼실 안개가 익어간다,
친정어머니 요양병원비와 미납된 재산세가
우편함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꽂혀있다.
가운데 통나무 한 개를 빼낸다.
아래쪽 통나무 한 개를 더 빼낸다.
지난 달 지출한 카드 두 개의
결재기일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신중하게 바라보다가 옆에서 통나무 하나를 빼낸다.
아파트 관리비, 세금고지서, 보험료가 창을 두드린다.
위아래를 번갈아가면서 통나무 여러 개를 빼낸다.
점점 빈 구멍이 많아지며 심하게 흔들리다가 겨우 선다.
뒤이어 이번 달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문 앞을 서성인다.
몇 개 남지 않은 통나무를 관찰하며 또 하나를 빼낸다.
아들 등록금고지서가 누렇게 익어 컴퓨터로 날아왔다.
여기저기 살펴봐도 더 이상 뺄 구멍이 없다.
대들보라도 빼내야 하는데 흔들림이 불안하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대들보를 빼내면 무너질 것 같다.
8월 강진에 구멍 숭숭 난 집이 사시나무 떨 듯 떤다.
시커먼 가슴팍에 구멍을 내려는 듯 햇살이 쏟아진다.
休, 너무 덥다.
벽난로
당신, 나를 차갑게 버려두지 말고
따뜻한 장작불을 지펴주지 그랬어.
젖은 장작이라도 넣어주지 그랬어.
우리 얼싸안고 맵싸한 눈물 흘려도 그냥
모른 척 연기로 타오르자 그러지 그랬어.
뒤 곁 마른장작 몇 개비 던져주어
가슴까지 모닥불 피워주지 그랬어.
당신 차라리 모닥불이 되지 그랬어.
왜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어. 당신
이외현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안심하고 절망하기』.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 계간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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