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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신인상/고종만/화려한 오독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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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475회 작성일 19-02-1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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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신인상/고종만/화려한 오독 외 4편



늘 푸르고 넉넉한 산이어서
늘 평안한 줄 알았는데
헐렁한 사내의 낯선 방문에도
꿩은 축포를 쏘고
소나무는 송홧가루를 뿌리고
청설모는 숲을 헤치며 길잡이를 나섰다
백수는 누렸을 너도밤나무 발치로 흐르는
개울은 여울목을 내 주고
산까치 솔새 도라지 산국……
환영연을 베푸는
산,
이토록 기골이 장대한 산도
외로움엔 초연할 수 없었던가





허드렛돌



고향집 문간에는 허드렛돌 하나가 살지요
그의 원적도 성별도 나이도 모르지만
품새가 푸르고 매끄러운 게
바닷가에서 왔으리라 짐작하지요
아마 할아버지는 알았을지도 모르는
그가 하는 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지요
대문 고임돌, 키를 돋우는 디딤돌, 메주를 띄우는 누름돌, 무딘 낫을 가는 숫돌, 화날 때 내리치는 주릿돌, ……,
이제 손을 놓고 먼지를 쓰고 앉은
그가 내게 속삭입니다
추억이 많아 외로울 수 없다고
자기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으니
너무 늦지 않게 오라고
빛 낡은 문간에 기대앉은
허드렛돌





환청



그날 이후로 눈을 뜨나 감으나
그 유월의 바다가 귀에 살아야
갈매기는 서녘 바다에 어찌나 붉은 울음을 토하는지
오늘은 비 오는 이른 아침부터 가슴을 적셔야
생업을 팽개치고 그 바다로 달려갈 수 없었어야
안주로 나온 홍합 접시에는
너만 발그랗게 너울대고
막소주 잔에서는 너만 찔끔찔끔 넘쳐야
해당화며 원추리며 바위손이며 해송이며
할메할베바위는 곱게 늙는지
수평선은 여전히 유쾌하게 웃고 있는지
네 발자국 묻은 그 유월의 바다는 아픈 데 없이 잘 사는지
오늘밤은 등대에게 전화를 할까봐야





말복



말매미는 고욤나무 정자 뿌리가 들먹이도록 울었지
미역 감은 까까머리 기선이와 벌거숭이 경만이
볼 볼그족족한
개살구 해당화 열매로 푹 꺼진 뱃구레를 달랬지
동네 어른들 벼랑그늘에 무쇠솥을 걸고
호밀가루 수제비를 숭덩숭덩 떼어 넣고
돌깻잎 돌부추로 개장국을 끓였지
명절이나 할베 할메 생신날이나 겨우
희멀건한 고깃국을 먹을 수 있었던 그 시절
개장국이라니,
불뚝해진 배를 끌어안고
……애 애 애 풀피리,
복털이가 지금도 두 눈가에 너울너울한 그날은
아마도 몽돌을 따글따글 굽던 말복이었지
얼레지를 서로 먹겠다고 희번덕대던 한때였지





잃어버린 풍경



징검돌이 빨래판이던
늘 푸른 냇가 빨래터

보지 말아야 할 말들이 살았고
반드시 보아야 할 말들도 살았지
담지 말아야 할 말들이 살았고
꼭 담아야 할 말들도 살았지
세워야 할 말들이 살았고
흘려야 할 말들도 살았지
묻어야 할 말들이 살았고
차마 묻지 못할 말들도 살았지
죽어서도 간직해야 할 말들이 살았고
한시라도 간직해서는 안 될 말들도 살았지
그 빨래터에는
비비면 비빌수록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더 선명해지는 말들이 살았고
그 말들이 눈물을 헹구었지


지금은 냇물만이
남은 말들을 구시렁구시렁 흘리고 있지





소감

파도리의 몽돌소리 다시 들리는 듯



내 고향 파도리는 몽돌이 고운 해변, 몽돌을 밟으며 바다로 가고, 파도에 자그락대는 몽돌 소리를 들으며 바다에서 놀고, 몽돌에서 누어 젖은 몸을 말리고, 몽돌처럼 바닷가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세파에 떠밀려 타향으로 타향으로 떠도는 나날들, 파도리 몽돌을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미욱하게도 천명을 안다는 나이가 되어서 시의 신에게 홀려 헤매다가 몽돌과 다시 만났습니다.

참으로 긴 방랑 끝의 해후,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몽돌은 파도에 부대끼는 괴로움을 낮은 목소리의 노래로 바꾼다는 거, 파도의 시달림으로 제 몸을 곱게 다듬는다는 거, 그 고운 자태 위에 어린 우리를 놀게 했다는 거, 아, 그것이 목숨의 길이고, 시의 길이고, 아름다움의 길이라는 거, 어머니 아버지 파도리 사람들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시의 길로 안내해 준 여러 은사님들, 벗들, 이 늦깎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준 가족들, 특히 제 손을 잡아주신 장종권 선생님 감사합니다./고종만



심사평

운율韻律로 되살린 ‘정취情趣와 근원根源’에 대한 애정



시는 언어에 기반 한 매체 예술이다. 누구나 다 아는 정의지만 여기서 간과看過하기 십상인 것은 장르로서의 시적 특성 이전에 언어로서의 제약, 한계가 적용된다는 점일 것이다. 모든 언어는 ‘의사소통’이라는 본래의 목적 아래 수행성을 가질 때, 그것이 사용되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맞게 변형될 수밖에 없다. 언어의 사회성, 또는 시대성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언어는 자기의 기원基源을 간직하려는 지속성이라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것은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볼 수 있다.
고종만 시인은 사회성보다는 역사성에 더 강한 방점을 찍고 시작詩作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인식은 「허드렛돌」의 “그가 하는 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지요/대문 고임돌, 키를 돋우는 디딤돌, 메주를 띄우는 누름돌, 무딘 낫을 가는 숫돌, 화날 때 내리치는 주릿돌, ……”이라는 부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먼지가 앉은 채로 그냥 두었다면 단지 ‘허드렛돌’로 끝내 잊혀질 돌 하나에 대여섯 개의 이름을 되살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는 모른지만 중요한 의미를 함축含蓄한다. 그것은 현대적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날로 난해지기만 할 뿐인 모국어에 작은 숨통을 틔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운율을 통해 숨 가쁘게 연접連接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헐렁한 사내의 낯선 방문에도/꿩은 축포를 쏘고/소나무는 송홧가루를 뿌리고/청설모는 숲을 헤치며 길잡이를 나섰다/백수는 누렸을 너도밤나무 발치로 흐르는/개울은 여울목을 내 주고/산까치 솔새 도라지 산국……/환영연을 베푸는”(「화려한 오독」) ‘산’의 정경을 잡아내고 있다. 「말복」과 「잃어버린 풍경」 등의 작품도 이런 미덕이 들어 있는 계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에서 시어가 지나치게 난해한 현대적 개념어에 치우치는 현상을 조금이라도 보정補正하기 위해 흥취가 살아있는 우리말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시인들을 보다 더 많이 활발하게 발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어를 단순 나열하는 데만 그친다면 그런 시어들마저 정형화된 틀에 갇혀 사용 자체가 쉽게 진부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시어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현대적 기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고종만 시인이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백인덕(글), 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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