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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책크리틱/김왕노/서정의 극치― 이재무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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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책크리틱/김왕노/서정의 극치― 이재무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이재무 시인의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를 살피기 전 이재무 시인과의 만남을 반추하는 것도 그의 시를 사랑하고 아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만날 때 집적 대면하는 경우가 있고, 소문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고, 기사로 만나는 경우가 있고, 책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고, 작품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직간접적으로 만남이 이뤄져 한 사람에 대한 나름대로의 인상이나 느낌을 간직하게 된다. 난 이재무 시인을 직접 만나기 전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라는 시집으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시집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직접 만남의 기억을 상쇄 시켰을 지도 모른다. 결국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란 시는 서정의 강한 탄력을 가진 시로 침묵하는 가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 밤 열차
빈 가슴에 흙바람을 불어넣고
종착역 목표를 향해 말을 달렸다
서산 삭정개비 끝에서
그믐달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주먹의 불빛조차 잠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서
때 묻은 동전이 울고 있었고
발끝에 돌팍이 울고 있었다
온다던 사람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지 않았고
내 마음의 산비탈에 핀
머루는 퉁퉁 젖이 불고 있었다.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전문
시는 질박하게 출발하나 섬세하고 시가 이루는 서정의 세계 속으로 무방비 상태로 이끌어가 우리도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드는 마술적 힘이 이 시에 있다. 충청도 특유의 능청을 떨면서 기다림의 고수, 명수, 장인이 되어 어떻게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나 기다림의 자세를 가르친다. 이 시를 읽게 되면 이재무 시의 매력인 구체성을 가지고 마음을 후려치는 시의 폭력에 노출된다. 이 시를 읽으면 누구나 시인이 되어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하며 작은 포구나 섬의 끄트머리나 북풍한설 속에서 강가에서 바닷가에서 모래 위에서 와야 할 사람의 이름을 쓰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다. 와야 될 것은 기어코 와야 한다는, 기다려야 할 것은 반드시 기다려야 한다는 오기를 가지게 만든다. 또 이재무 시인을 간접적으로 만났다고 여기개 하며 나를 혼란에 빠뜨리는 시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 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그러나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 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가득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이별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면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치는 않게 아주 물리지는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제부도」 전문
이 시를 읽은 충격이 컸다. 그러나 충격은 역주행 해오는 차와 충돌하듯 그런 충격이 아니라 서서히 나를 잠식해버리는 충격, 어느 새 나는 이 시 속을 걸으면서 시의 종이 되어 나도 이런 사랑을 해야지 하는 꿈과 낭만을 가지게 했다. 사랑의 거리 사랑의 깊이를 따지게 하며 사랑의 측량수로 사랑의 전문가로 이재무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시는 쉬운 듯도 하나 사색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대범하면서도 섬세한 시이므로 서정의 물꼬를 터주는 좋은 시가 어떤 시인지를 잘 보여준다. 가장 평범하나 가장 삶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사랑을 주제로 삶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 있나 보여주며 사랑을 기다리는 자세가 순응의 자세 같으나 반어처럼 더 안타까움으로 들끓게 해 활명수 같이 끝없이 서정의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에 대를 잇는 시로 「좋겠다, 마량에 가면」도 살펴보기로 한다.
몰래 숨겨놓은 여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먼 포구에 가서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 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나 누워
발가락 장단에 철 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가 구수한, 갯벌 같은 여자와
옆구리에 간지럼이나 실컷 태우다 왔으면,
사람들의 눈총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조석으로 부두에 나가
낚싯대는 시늉으로나 던져두고
옥빛 바닷물에 텃밭 떠난 배추 같은 생 절이고
절이다가 그것도 그만 신물이 나면
통통 배 얻어 타고 먼 바다 휭, 하니 돌다 왔으면,
그렇게 감쪽같이 비밀 주머니 하나를 꿰차고 와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남은 뜻도 모르는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 냈으면,
―「좋겠다, 마량에 가면」 전문
해학이 있다. 재미가 있다. 남성의 유토피아가 어디에 있는지 뭍 여성에게 고자질 하고 있다. 실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창을 하고 있다. 불륜의 아름다움을 부추기고 있다. 불법의 재미가 낭만적이고 세상맛에 한 맛 더하는 것이라 자연스레 풀어놓는 능청스러움이 있다. 충청도 특유의 여유와 깊이를 가진 양면성을 잘 보여 주는 시다. 이 시를 읽으면 어느 여인이든 몰래 숨겨둔 시 속의 여인이 되기를 꿈꾸지 않으랴. 이재무 시인의 시 3 편을 읽으면서 이재무 시인을 직접대면 한 것보다 시로 대면했다는 기억이 혼란처럼 오는 것은 시가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시를 읽으면 각인되어 읽는 사람을 흡입하는 마력이 그의 시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읽으면 중독성을 가지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재무 시인에 대한 인상적 시의 계보를 이어줄 시가 어떤 것이 있는지 「슬픔은 어깨로 운다」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지루할 수 있는 서정적 시편들이나 이미 오랜 시력으로 서정적 독창성을 이루고 서정의 내재율로 가득 채워진 그의 시에 물들어 보기로 한다.
어느 날 밤 나는 집이 앓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날 밤 나는 집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날 밤 나는 집이 웃은 소리를 들었다.
어느날 밤 나는 집이 벌컥 화내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날 밤 나는 집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집을 비우기 위해 집을 나서는 집을 보았다.
집 나간 집이 밖에서 집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어느날 밤 나는 집이 나를 꾸짖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집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집이 앓는 소리를 들었다」 전문
이 시를 읽으면 기형도의 시가 생각난다.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의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 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기형도 시 겨울 版畵 앞」 부분
「집이 앓는 소리를 들었다」에서 집과 나는 등식이 성립한다. 결국 집의 행위는 자신의 잠재적 의식의 표출이다. 집과 자기의 동일화를 통한 끝없는 성찰로 존재론적 근원의 문제인 삶을 통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였으나 해소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펼친 시다. 집은 자신의 감정을 극대화 하는 공명통이라 할 수 있다. 집은 자신 모든 것을 말해주는 대변자이다. 집은 자신의 일부분자 자신의 전체이다. 집의 감정은 자신의 감정이다. 그것은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애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와 맥이 닿는다. 일필휘지로 써간 시라 거침없이 읽히는 재미가 있다. 감정의 기복을 거쳐 참회로 가면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완된 감정을 수축시켜 감정의 밀도를 극대화를 시켰다가 괄약근을 확 풀어 자유함을 느끼게 하는 시다. 시인의 인간적 갈등이 시를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하게 한다. 서정시를 통한 강한 감정의 파동과 함께 다시 삶을 정상적으로 회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무삭제완역판으로 잘 보여 준다.
기도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바람 부는 벌판에 서서 내 안에서 들려오는 내 음성을 듣는 것이다.
―「기도」 전문
기도란 기원의 의미도 있지만 회개와 참회의 의미도 있다. 집이 앓는 소리를 들었다 기도와 기도에서 기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광야에서 야성처럼 지내다가 이제는 관조의 집으로 돌아와 자신을 뒤돌아보는 것이며 이 시는 짧으나 매력적인 시의 질감이 있다. 시의 질감은 거칠고 때로는 한산모시처럼 부드러우면서 짧는 시이면서도 시의 질적 수준을 점차 높여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리듬을 타게 하여 시의 흥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의도될 수 있으나 이재무 시인의 시는 의도도 없이 저절로 체득한 시인의 춤사위인 것이다. 선척 적으로 타고나 시의 체위로 나타나거나 시의 자초지종이 되는 것이다. 상상적 경험보다 직접적 경험이 진실과 진심을 더 상세하게 표출하고 날선 서정이 아니라 다듬어진 서정으로 이루어진 시가 더 친근하게 다가오듯이 이 짧은 시가 작가의 경험으로 이뤄진 시이므로 더 큰 서정의 울림을 가진 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오르막길 많은 동네에서 산 적이 있다.
오르다 쉬고 쉬었다 다시 올라야 하는
오르막길을 숨 질질 흘리며 오르다 보면
몸에 깊숙이 박힌 증오의 못들이 뽑혀 나왔다.
불쑥, 아득히 멀어졌던 과거가 튀어나오고
주인을 알 수 없는 전화번호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노래를 부르면서 오르는,
입 안에 고인 욕설 가래처럼 내뱉으며 오르는
오르막길 오르내리며 나는
천천히 걷는 법과 느리게 살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오르막길」 전문
오르막길은 시인의 꿈을 담금질하고 무두질하는 길이다. 푸른 달빛을 경험하고 오르막길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내리는 사시사철을 만나면서 시의 잔뼈가 굵기도 하였을 것이다.
오르막길은 시인에게 고행의 길, 사색의 길, 해소의 길, 용서의 길, 느림의 미학을 다지는 길, 때로는 길 중턱에 앉아 여유를 마음껏 부리는 길, 세상을 살피고 자신을 살피는 길 감정이 발화되고 매듭을 짓는 길이었을 것이다. 반드시 올라야 이르는 집이 있었을 것이다. 길을 오르내리면서 우보천리를 배우고 넌출거리는 마음으로 시흥으로 어깨를 들썩였을 것이다. 스스로 다혈질이라 말하는 시인이 자신의 피를 다스리는 법을 터득도 했을 것이다. 티벳의 말처럼 빠르면 나사에 가지 못한다는 말을 체득했을 것이다. 단숨에 오르려면 숨이 찰 뿐만 아니라 뜻하지 않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예감하며 살았을 것이다. 오르면서 시의 이미지를 찾거나 시를 찾고 내려가면서도 시의 이미지나 시를 찾았을 것이다. 하여 오르막길은 시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의 시를 읽어갈수록 서정의 심도가 깊어간다. 기교나 멋을 부리지 않는 시편들이므로 시의 본질에 가깝고 시에 힘이 있다. 수압 같은 서정의 깊이로 일상에 찌든 현대라는 껍질을 짜부라뜨려서 속 알맹이인 위축되고 주눅 든 잠재된 의식을 서정과 곱게 버무려준다. 서정시가 가진 맛으로 치를 떨게 한다. 서정이 함의된 내포의 세계로 인도해 간다.
사일레노 같은 눈이 내린다.
사리돈 같은 눈이 내린다.
아스피린 같은 눈이 내린다.
알약 같은 눈이 내린다.
마리화나처럼 내린다.
헤비메탈처럼 내린다.
서러운 계토 위에
백색의 계엄령처럼
눈이 내린다.
―「백색의 계엄령처럼」 전문
우리 서정에 눈은 절대적이다. 눈에 남은 발자국이나 바람의 흔적을 시화 화하고 눈을 보며 막연한 그리움을 키우고 적설로 부러지는 나뭇가지를 보며 눈의 폭력성을 읽고 장독대에 쌓여가는 눈이나 말구유에서 붐비는 눈으로 서정의 문양, 시의 알레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하나 시인의 눈에 눈은 약이다. 계토 위에 내리는 눈이다. 삼라만상이 겪는 온갖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라는 하얀 메시지다. 그러나 백색의 계엄령이란 대비로 시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다. 이것이 이 시가 가진 매력이자 시인이 가진 매력이다. 약은 일상에서 쉽게 대할 수 있고 우리 생활 구석에서 손닿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가 우리의 고통을 제거해 준다. 시인도 신경 계통의 어떤 아픔으로 몇 알의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시고 약이 몸 안에서 힘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을 것이다. 약이 발휘하는 힘에 자신을 맡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눈이 마리화나를 만나고 헤비메탈을 만나고 백색계엄령을 만나 친화력을 발휘해 힘 있는 시로 다가오는 것이다. 시가 가슴에 눈발처럼 휘날리는 것이다. 시가 붐비는 것이다. 짧은 시나 긴 여운이 남는 시가 되는 것이다. 서정의 밀도가 높은 시가 되는 것이다. 서정시가 가진 내재적 힘인 역동적 리듬 속으로 우리를 거침없이 초대하는 것이다.
후생은 마드로스로 살아가리라.
가정 같은 것은 꾸미지 않으리라.
각 나라 항구마다 안개처럼 나타나서
염문을 뿌리고 고양이처럼 사라지리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다가 거품처럼 사라지리라
서너 개의 외국어를 익히고
아코디언 연주로 향수를 달래리
매일 아침 구두를 닦고 상아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리
삶은 짧고 추억은 깊으니
오직 현재에만 몰두하리라
마음껏 아름답게 시간을 낭비하리라.
―「후생」
마도로스는 남자가 꿈꾸는 낭만의 상징이다. 시인의 현재 꿈이 후생임을 토로하며 남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시다. 속일 수 없는 보헤미안의 피가 자신에게 흐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발을 묶었던 가정 같은 건 꾸미지 않으리라 하면서 사회적 제도의 탈피를 갈구하고 있는 현재 시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에서 후생에 하리라 하는 것은 현재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거품처럼 안개처럼 사라지리라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나타내지 않으려는 의도는 그 만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갈망인 것이다. 빛나는 구두를 신고 파이프를 문 마도로스의 모습은 염문을 뿌릴 만큼 충분히 멋이 있다. 이 항구 저 항구마다 나타나는 자유로움은 그러나 엄청난 항해 끝에 나타나므로 낭만에 감추어진 시인의 남성적 기질도 읽어낼 수 있다. 마음껏 아름답게 시간을 낭비하리라는 시의 종결은 충분히 마음껏 아름답게 시간을 낭비하자로 읽힌다. 살다보면 혼자가 누리는 아름다움은, 보편성이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의 함의가 있어야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에, 세상이 아름답고 주위가 아름답고 주위 사람이 아름다워야 복합적으로 이루는 아름다움이다. 하여 이 시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다의적 뜻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원래 가진 꿈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이 누구에게나 있다. 원래의 꿈은 고향과 같은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가려는 곳이 고향인 것이다. 하여 고향은 언제나 서정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후생은 남자들의 본향과 같은 것이다. 금의환향하듯 고향에 가려는 남자는 멋을 부릴 수밖에 없다. 허풍과 허세가 깃든 어투와 매무새를 가질 수밖에 없다. 위트가 있는 시이자 지속적으로 서정과 맥을 이어나가는 시이다. 원초적 본능이 어디 있는지 고백도 하고 있는 시이다.
촛불은 비상하는 노고지리다.
촛불은 풀잎이다.
촛불은 꽃이다.
촛불은 별이다.
촛불은 고해성사다.
촛불은 절벽을 뛰어내리는 폭포다.
촛불은 피다.
촛불은 묵은 땅 갈아엎는 쟁기다.
촛불은 새로이 역사를 쓰는 백만 천만 자루의 붓이다.
―「장엄한 촛불이여, 명예혁명의 교과서여!」
촛불이 새로운 역사의 물꼬를 텄다.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마련했다. 다시 촛불을 켜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간절하다. 촛불은 시공을 초월하는 모든 것의 시원임을 시는 말하고 있다. 촛불은 생명을 가졌고 촛불은 문무를 갖추었고 촛불은 감정을 가졌고 촛불은 쟁기날을 가졌고 촛불은 자연이고 촛불은 합심으로 가공된 도구이다. 촛불의 생명력은 어디서 오는가를 보여주는 시다. 촛불이 어디까지 확장 되어 가는지 보여주는 시다. 촛불의 확대와 축소로 촛불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정신이 빙의된 촛불이란 시다. 평시에 지닌 시인의 가치관이 촛불에 함입되어 있다. 촛불의 정신은 희생으로부터 출발한다. 촛불이 활활 타오르다가 캄캄하게 꺼져가므로 촛불이 게워놓고 간 빛이 세상의 빛이 된다. 진정한 빛이 된다. 촛불의 속내를 속성을 알고 쓴 세간에 떠도는 촛불 시 중에 가장 뛰어나고 품위가 있는 시다. 짧으나 시를 잃는 시선에 대한 원심력과 구심력을 다 갖춘 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불의에 대해 시인이 가진 자세가 무엇인지 촛불의 가치가 무엇인지 성숙한 서정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앞에서 일부러 이재무 시인의 시 몇 편을 다루어 보았다. 세부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시 한 편의 전체적인 면을 다루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시를 즐길 수 있게 시집 서평을 써보았다. 항간에 명시로 떠도는 시도 다루어 이재무 시 읽기에 재미를 더 하였다. 일상에서 서정의 두레박으로 철철 길어 올린 친근한 시집으로 격한 감동을 준 이재무 시인에게 감사를 드리며 마친다.
김왕노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 『사진 속의 바다』, 『그리운 파란만장』 등.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 문학상, 지리산 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금 수혜 상. 《시와 경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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