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8호/신작시/주선미/갯고둥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699회 작성일 19-02-18 11:41

본문

68호/신작시/주선미/갯고둥 외 1편



황해 바람 몰아치는
안면도의 가을을 견디는 건 
거친 파도에 점령당하는 개펄뿐이다 
가을 안면도에서는 바다가 바닥까지 내려간다
그 바닥에서 아낙은 눈이 맑은 갯고둥을 줍는다 
갯고둥은 거친 파도에 제 몸을 다 내주고 
맑은 눈만을 건진다 
흑백 판화 속 풍경을 이룬 여자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한 채
죽음보다 깊고 차가운 수렁에
온몸을 던져 갯고둥을 딴다
신기하게도 세상의 빛을 본 갯고둥
먹탄빛 몸을 닦을수록
티 없이 맑은 눈 빛난다
생의 빛나는 시간들 검은 개펄에 던져
온몸에 목탄을 바른 그 여자
함지박 가득 초롱초롱 담긴
갯고둥의 맑은 눈에
대처로 나가 개켜 둔 꿈을 펼치는
아이들 맑은 눈 읽으며
에둘러 개펄을 점령해가는 밀물과
땅거미를 몇 발짝 더 멀리 밀어낸다
더 낮은 데로 저를 던진다





처음처럼



신용복 선생이 붓을 댔다는
소주 처음처럼을 마신다
그가 감옥에서 보낸 만큼 독한 술기운이
가슴을 따스하게 흔든다
 
어두운 노량진에서 지내며
간신히 시험에 붙어 면 사무소에 다니는
아들녀석과 붉은 노을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노량진에 다녀왔다는 아이는
여전히 우울하고
어깨에 걸린 가방이
저녁 해 그림자만큼이나 늘어져 있다
 
시험만 합격하면 뭐든지 다 할 것 같았는데
여전히 첩첩한 산이 가로막고 있다며
투명한 잔에 참았던 말들을 쏟아낸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소리들
자신의 귓바퀴로는 다 담을 수 없다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두루마리에 말려 미래는 보이지 않는데
노을 속으로 땅거미는 스물스물 밀려들고
 
아들녀석의 어깨를 짓누른 짐을
덜어줄 수 없는 나는
처음 쓴 잔을 들 때처럼
씁쓸한 말 들이 입안에서 서걱거리다가
보이지 않는 남은 길
미리 펼치지 않아도 된다고
투명한 잔을 함께 비운다
 
까맣게 길을 지우는 땅거미에 등을 기댄다



주선미 2017년 《시와문화》로 등단. 물앙금문학회 회원.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