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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문예연구|김인숙·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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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861회 작성일 19-02-18 14:01

본문

그믐달 외 1편



정읍 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
나무의자 두 개 놓고 이모는
국수와 막걸리를 팔았네
손끝에 뭐가 있는지 보자며 눙치는 술꾼들에게
이모는 이모 같은 웃음으로 안주를 더 내곤 했네
그 손끝으로 이모는 온종일 국수를 말고
반건달 이모부는 살림을 말았네
육남매, 봉숭아 씨처럼 튀어나가고
평생 설거지통에 담근 손도 말랐네
침을 발라야 겨우 나이를 셀 수 있지만
손끝은 여전히 맵고 짭짤해
김장철마다 수백 포기의 배추가 숨을 죽였네
여섯 박스 김장을 묶어 놓고 이모는
복수로 부풀어 오른 배를 부둥켜안고 뒹굴었네
막, 삼도천을 건넌 이모의 검푸른 손
하얀 국수발을 건지던 손끝에 어슴푸레
붉은 달 떠있었네
작년여름 봉숭아꽃 따던 늙은 소녀
손톱마다 조각달 몇 개 건졌네
 
손끝의 비밀이
붉은 그믐달로 지고 있었네





예의



목욕가방 안에 수건 하나 묻어왔네
-가져가지 마세요, 주인 백
버릴까? 생각하다
엎드려 방을 닦았네
모서리를 접어서 닦았네
사납기로 소문난 주인 얼굴이
닦을수록 또렷이 살아났네

내장사 앞마당 정혜루
인적 드문 그 누각에는 예쁜 찻잔 열댓 개
찻물 끓는 소리 독경삼아 엎드려 수행 중이네
바람이 찻잔의 땀 닦아 주네
대웅전 처마 밑 물고기들
시샘하며 물살을 차고 오르네
문득 내 마음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네
극락전 아미타불님
단풍나무 사이로 빙그레 웃고 계셨네
다기들,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꼭 부처님의 미소 때문만은 아니라네
 
훔친다는 것의 예의는
주인도 모르게 행해야 한다는 것 
내 마음을 잃고 나는 아프네
그 사람
무례한 사람이네




신작

당신의 음계



당신을 맞이하는 나의 각은 사십오 도
나의 목소리는 솔라시도여야 하지요
우습지 않아도 웃어요. 입꼬리를 올리고
웃다가 유치원에 두고 온
열이 있던 아이 생각에 눈꼬리가 내려와요
의자 곁에 서있는 내 종아리 위로
푸른 지렁이가 기어오르고 있어요
그래도 웃어요. 눈 맞추고


오늘은
내가 보낸 솔파미레와 웃음에도
높은음자리를 고집하는 당신의 삿대질
당신보다 무서운 당신 뒤의
당신이 생각났어요
이제는 무릎까지 꿈틀꿈틀거리지만
머리 위로 튀기는 침 정도야
잘 받아낼 수 있지요


열흘 같은 열 시간이 지나고
솔파미레도 입꼬리도 내려놓고
아이가 기다리는 유치원으로 가는 길
신발에 꽉 낀 발에 낮은 도시라솔
거리의 불빛들 뿌옇게 번지고 있네요




선정평

삶에 대한 통찰과 시적 상상력의 깊이



이번 계간지 우수작품상에 《문예연구》에서 선정한 작품은 김인숙의 「그믐달」과 「예의」 등  두 작품이다. 「그믐달」은 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에서 술을 팔았던 이모의 일생을 유장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그려내고 있다. 반건달 남편을 아우르고 육남매를 키우며 갖은 풍파를 견뎌냈을 이모의 생은, 충분히 서글프지만 작품 속에서의 표현이나 묘사가 생동감이 넘친다. 가령 ‘육남매, 봉숭아 씨처럼 튀어나가고’나 ‘침을 발라야 겨우 나이를 셀 수 있지만’ 같은 시행들이, 어두웠을 이모의 삶을 의외로 생생하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겁고 어두웠을 삶을 이처럼 가볍고 밝게 포착할 수 있는 시적 형상화의 능력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또한 「예의」 역시 우연히 가져온 목욕탕의 수건에서 출발하여 내장사 누각의 예쁜 찻잔을 향한 욕심에 이르는 시적 통찰의 과정을,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수일한 표현의 깊이와 함께 펼쳐 보여주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전체적인 시적 어법이 안정되어 있고 호흡도 고르게 이어져 앞으로의 성취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강연호



수상소감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리던 마음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신을 만나고나서부터
보도블럭 틈새 민들레 한 송이도
무심히 불던 바람도
내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 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귀를 열고 눈을 뜨고자 애썼습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아
전전긍긍한 시간이 많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며
이 세상 아픈 것들을 더 많이 보고
내 안의 소리를 더 듣겠습니다.

오늘의 불안한 이 기쁨은
설레던 처음 마음 잃지 말라는 채찍으로 받겠습니다.
항상 친정집처럼 보듬어 주는 문예연구와
어지러운 글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김인숙



김인숙 2011년 《문예연구》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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