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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신작시/차주일/낭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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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차주일
낭만 외 1편
낭만은 자연에 풍경 한 겹을 덧씌우는 일.
자연은 비망록의 구조로 두꺼워진다.
첫눈, 낙엽, 새싹, 녹음들이 바람을 흔들 때
파형의 틈을 타 슬그머니 나를 그려 넣는다.
책갈피에 연서를 끼워 주인공을 바꾸는 것처럼
풍경에 사람의 혈맥을 이으면
무채무형의 바람과 유채유형의 핏물이
맥놀이처럼 서로 간섭한다,
참새가 솔거의 노송도를 볼 때처럼
인간이 부여하는 감정을 자연이 사용할 때
비로소 사람은 한 겹으로 해석되어
문답을 기록할 수 있는 비망록이 된다.
가끔 자신도 몰래 혼잣말 하는 것은
누군가 내 말을 빌려다 쓰기 때문.
나는 우리로 두꺼워지고 있다.
우리의 틈에서 홀로 머물기로 한다.
홀로의 사사로움이 우리에게 스민다.
압화壓花 같은 예언 하나가 영생을 완성한다.
오독으로 읽는 정독
고이 담아둔 것들은 마음의 간섭으로 변형한다.
약속을 잠근 가락지가 자식의 밥이 되었을 때
미소로 침묵을 잠그는 구조는 손가락과 닮았다.
손톱 밑에 빗장을 거는 사람에게 마음을 맡겨둔 적 있다.
손톱 밑 때는 주먹을 펼수록 잠기는 빗장이어서
사연 많은 손끝은 부풀어 갈라터지곤 한다.
풀죽은 등을 쓰다듬는 까끄라운 손끝에
느닷없이 마음이 바뀐 나는 척추를 곧추었던가.
때가 낀 손끝에는
사람이 해석할 수 없는 마음이 담겨 있었지만
갈라터진 실금들은 해독하기 쉬운 갑골문이었다.
일을 마치고 손을 씻다가
완고히 버티는 손톱 밑에 끼인 흙을 때라고 읽었다.
느닷없이 오독을 하게 한 것은 불변의 정독
손톱 밑에 끼인 때로써
난봉꾼이 아버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식솔의 밥을 구하려 노동한 몸으로 해석되는 것
얼마나 숭고한 오독인가.
오독은 미래를 희망으로 해석하게 하는 점술이므로
만년필촉 밑에 말라붙은 잉크를 그대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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