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7호/신작시/윤병주/로드킬Road kill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신작시
윤병주
로드킬Road kill 외 1편
죽은 산짐승의 몸을 지나간다
한낮의 햇살들도 이 곳으로 내려와 마지막 조문을 한다
나는 잠시 죽음 전의 삶을 생각했다
약육강식의 서열에 밀려와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빛을 따라와 차에 치여 죽었을까
어디서 썩는 냄새를 맡았는지 까마귀들이 먼저 와 있다
육감의 몸을 숨기고 산에서 그 만큼 살았으면
제 몸 하나 둘 곳이 어딘지 알만도 하건만
하필 길 위에 몸을 던진단 말인가
언제 상한 냄새를 따라 왔는지
고양이들이 시퍼런 눈빛으로 발등을 물고 있다
풀잎들 충혈 된 눈으로 명복을 빌어 주듯이
풀냄새로 썩을 몸을 건너 주었고
이승의 마지막 보시일지도 모를 길 위
의문 부호처럼 하늘 쪽으로 별들이 길을 열어 놓았다
나는 물린 발쪽의 침침한 한 생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까마귀와 고양이들의 잔치도 끝나 가고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너무 멀리까지 간
구름과 눈물을 불러 와야 한다
죽은 산짐승을 지나는 길 사이
어떤 시간의 자국들이 검은 버섯이 피고 간다
동지冬至
상원산 앞 산
팥죽을 끓이는 법당을 향해
백팔배를 올리는 마가목 나무들
속이 꽉 들어찬 붉은 열매들을
산에 소신공양을 마친 것들을 산 속에 묻고 있다
산문 밖은 벌써 매운 눈발이 긴 겨울잠을
만들고 있다
추천0
- 이전글67호/신작시/김성호/비 오는 날의 달팽이 외 1편 18.05.05
- 다음글67호/신작시/김사리/개의 사회학 외 1편 18.05.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