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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책·크리틱/김왕노/북양항로, 직시와 직관으로 벌이는 서정의 축제-오세영 시인 시집 『북양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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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96회 작성일 18-12-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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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크리틱


김왕노



북양항로, 직시와 직관으로 벌이는 서정의 축제
-오세영 시인 시집 『북양항로』



서정의 푸른 바다가 그립다. 서정의 차디찬 빗방울이 내려 들판을 적시며 큰물이 지고 서정의 풍경이 큰물에 휩쓸리며 서정의 나무가 뿌리 째 뽑혀서 넘어지고 서정의 지평선에 무지개가 걸리며 서정의 별이 초롱초롱 뜨고 서정의 방울벌레가 울며 서정의 바람이 지느러미를 파르르 떨고 서정의 풀꽃이 피며 서정의 뻐꾸기가 울 때 우리의 잃어버린 서정의 왕국 건설의 주동자와 주창자는 시인이 마땅하다. 서정의 푸른 바다로 시인이 인도하고 서정의 푸른 물결로 복숭아 뼈를 차디차게 적셔주는 것도 시인의 역할이다. 오세영 시인의 『북양항로』는 결국 우리를 서정의 푸른 바다로 우리를 데려간다. 때로는 쇄빙선이 되어 죽어버린 물인 얼음이란 단절의 벽을 깨뜨리면서 서정의 맑은 바다로 우리를 인도 해간다. 혜안의 선장이 되어 삶이란 거대한 창파를 헤쳐 소금 꽃 피는 갑판 위에 서서 북양이라는 서정의 바다, 서정의 유적지로 오체투지 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때로는 서정을 원하는 자, 나를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죽음을 불사하고 따르라는 듯 그는 항해한다. 항해하므로 생명의 노래는 망망대해에 메아리치고 휘날릴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의 시력이자 목숨의 고갱이인 시이다.  오세영 시인이 일전에 낸 시집 『가을 빗소리』를 통해 나는 시인은 혜안을 가진 큰 시인이시다. 혜안으로 거대한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것을 자칫 지나치기 쉬운 것을 찾아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작은 것이 큰 것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하였다. 작은 것이 있으므로 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러한 시인의 시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20 여권의 시집을 내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물의 본질까지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진다는 것은 시를 사물의 본질까지 이르러 길어 올린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를 대하면 갈급한 가슴으로 마시는 샘물처럼 시원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양항로』에서는 삶의 기치를 시로 내걸고 다시 도약하는 시인의 위대한 항해를 볼 수 있다. 북양항로를 따라 항해한다는 것은 작은 나를 만나는 과정이고 작은 생명을 만나는 일이나 우주까지 만나고 우주를 꿈꾸는 일이고 우주를 깨달아가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1.일치를 보는 직시와 직관의 눈
무엇이 일치한다는 것은 아귀가 맞아떨어진다는 말이다. 분리 되어있던 것이 하나를 이루거나 퍼즐의 조각이 일치라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같은 의미이거나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현상이나 일이 흔하다고는 하나 실제로 찾아낸다는 것은 순수한 감성을 가진 시인의 눈이라야 가능한 것이다. 너와 내가 일치한다는 것은 사람이라는 명제 하에 두었을 때 일치가 가능하고 꿈을 가졌다는 것으로 일치가 가능하고 사랑의 테두리 안에서 현존으로 일치가 가능하다. 하나 일치의 밀도나 거리감과 차이가 있으므로 일치를 일상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일치점을 찾는 다는 것은 각별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오세영 시인은 일치점을 찾아 직시와 직관과 혜안으로 사유의 항로인 북양항로를 따라 거침없이 가고 있는 것이다.


짝,
햇빛에 눈이 부셔
다리가 휘청거린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본다.

오랜 입원 끝에
드디어 병실 밖을 나서는 그 청년

동면에서 막 잠을 깬 개구리 한 마리가
연못가에서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고 있다.
━「경칩 전문」


위 시에서 병실 밖을 나서는 청년이나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의 일치점은 역경을 이겨낸 승리자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승리자로 앞으로 맞이하는 세상이 싱그러운 세상이고 꿈이 있는 세상이라 예감하게 한다. 대비를 통한 것이 아니라 일치를 통해 세상이 희망적이리라는 느낌을 증폭시켜 준다. 희망과 감동의 풀무질을 해준다. 시인이 직시와 직관의 눈으로 ‘경칩’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이 시 한 편이 생이 불편했거나 절망에 찌든 사람에게 앞날이 창창하리라는 푸른 메시지를 끝없이 전해 준다.


죽은 자는 모두
깜깜한 땅 속에 묻힌다.

답답하다.

그러나
거센 겨울바람의 소요가 그치고
사위 문득 고요해지자
이곳저곳
문틈 새로 스며드는 봄바람에 두런거리며
하나 둘…
살며시 밖을 엿보는 눈빛들 

산과 들엔 온통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죽은 자도
이 세상은 궁금한 것이다.
━「꽃눈 전문」


여기서 시인은 꽃눈과 죽은 자의 일치를 통해 죽은 자가 꽃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꽃=죽었다가 돌아온 자라는 내세관까지 보여준다. 결국 우주의 꽃은 죽은 자가 꽃으로 돌아온 것이다. 꽃눈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거센 겨울바람의 소요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함도 역설하고 있다. 강한 시간의 무두질과 담금질이 필요함도 말하고 있다. 하여 피어난 꽃은 꽃씨를 남겨 부활의 연대를 이루어가며 세상을 꽃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죽은 자가 꽃으로 환생한 윤회설도 이 시를 통해 읽을 수 있다. 직시와 직관을 씨줄과 날줄로 일치점을 찾아 시라는 문양을 만들어 내었다. 죽음마저 꽃으로 만들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인 시인이 ‘꽃눈’ 이란 마술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2. 직시와 직관의 눈으로 하는 항해
일흔이란 나이는 생물학적 나이일 뿐 꿈의 나이이며 질긴 시력이고 항해의 나이이며 직시와 직관의 나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흔이라 하여 누구나 일흔다운 꿈을 가지고 시력을 가지며 항해를 하고 직시와 직관의 눈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 시인은 시를 통해 생의 출근이 끝난 것도 아니고 생의 퇴근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라 말하며 시가 한창인 시절을 살고 있는 것이다. 시의 청년으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 일흔」이란 시에서 눈이 어두워진 일흔,/창 밖/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아직도/흰 구름을 우러르는 노년의/새 한 마리를 본다. 시인은 새를 통해 새에 투영된 자신을 읽는다. ‘한세상 사는 동안, 새는/구름 한 점 물어 오기 위해/매일매일/비상을 감행하는지도 모른다./내 한 생이 시를 좇아 그러했듯이’를 통해서 시인은 매일 매일 시를 쫓아서 살아왔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를 좇는다는 것이 직시와 직관의 눈으로 시를 찾아가는 항해인 것이다. ‘북양항로’란 결국 시를 찾는 항로이다. 시란 대물을 찾아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신을 기다리는 시인이다.


누군가 나를
쿵 떠밀어 이 세상에 온 것처럼
어느 햇빛 밝은 날
누군가 다시 쿵 떠밀어 어딘가로
내보낼지 모른다.
떠밀리지 않기 위하여
경계를 긋고
스스로 삼가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나
빛을 좆아 살아온 내 한 생은
오히려 그 빛의 눈부심으로
자주 선을 밟기도 했다.
수평선, 지평선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과거는 기억, 현재는 다만 감각일 뿐인데
그 감각 너머엔 대체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쿵
떠밀려 온 이 세상은 기실 빛이 가두어 놓은
함정.
그 출구를 찾아 도달한 해안에
어떤 천상의 아이들이 놀다 갔을까.
성은 이미 무너졌으나
모래밭에 그어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그 금선金線 한 줄
━「모래성 전문」


이 시에서는 구체적으로 ‘북양항로’를 그려내고 있다. 세상은 빛이 가두어 놓은 함정 그 출구를 찾아 도달한 해안이 ‘북양항로’의 끝일 것 같으나 그곳에서도 넘을 수 없는 금선을 발견한다. 인생이란 함정을 벗어나기 위한 끝없는 항해이고 빛을 좇아온 생이나 빛으로 오히려 금기의 선을 밟기도 하므로 삶에는 빛으로 인한 모순이 있다. 하나 그 모순마저 수용하고 살아가는 시인의 건강한 의식을 접하게 된다. 「모래성」에서 절대자가 쿵 밀어서 이 세상에 왔다가 절대자가 쿵 밀어 다시 어딘가로 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금선을 넘어간 곳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지 라는 위구심을 가진 것이 인간의 참 모습임을 보여준다. 감각이란 현재 너머에도 무엇이 있는지 의아해 하며 시와 함께 항해해 가는 시인의 모습도 보여준다. 항해란 살아있음의 증거이고 몇 개의 수평선을 지나서 정박의 닻을 내리러 가는 일이라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끝없는 ‘북양항로’ 위에 시의 푸른 청년으로 서 있는 것이다. 시인은 칠흑의 밤에는 직시와 직관의 눈으로 항로를 잡아 시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시의 공간, 우주도 시의 공간, 시가 있고 시가 탄생하는 공간으로 시를 쫓아 서정의 항로인 북양항로 위에서 끝없이 시의 노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3. 직시와 직관으로 빛의 시원을 찾아가는 길
「한 생애」 란 시에서 ‘그 안개를 헤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그 종소리를 좇아/벌레처럼 빛의 시원을 찾아 한 생에는 실로/ 얼마나 고달팠던가’ 를 통해서 시인은 빛의 시원을 찾는 항해가 고달팠음을 말하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이 생임을 역설하고 있다. 「모래성」이란 시에서 ‘누군가에게 쿵/떠밀려 온 이 세상은 기실 빛이 가두어 놓은/함정.’ 이라면서도 빛의 본질을 찾아가는 시인의 행위는 계속된다. 빛이 빚어내는 세상에서 서정을 흡입하는 미모사보다 더 예민한 감각으로 서정의 시를 빚어내는 시인의 왕성한 항해는 계속되고 기대를 가지게 한다. 어쩌면 빛의 시원이 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길을 가는지도 모른다.
 
꽃은
제 피어난 가지를 지킬 줄 알아
꽃이다.
그 어떤 벌 나비의 유혹애도
제 자리를 버리지 않는다.

꽃은
항상 하늘을 바라다 볼 줄을 알아
꽃이다.
그 어떤 비바람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꽃은
스스로 자신을 불태울 줄 알아
꽃이다.
가슴에 품은 그 하나의 신념을 위해
가을날
오롯이 한 줌의 재로 삭는 꽃
━「꽃·2 전문」


빛을 찾아가는 길이 북양항로고 서정의 항로이다. 난해시와 난해시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지금의 문학현실에서 문학은 꼬인 말의 장난이 아니라 서정의 발톱 손톱과 눈으로, 서정의 눈동자로, 서정의 호흡으로, 서정의 사색으로 끝없이 시와 빛을 찾아나서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꽃은 스스로 자신을 태울 때 비로소 꽃이 된다는 것 말하므로 자기희생의 바탕 위에 자신의 존재가 비로소 세워진다는 것을 「꽃·2」에서 말하고 있다. ‘오롯이 한 줌의 재로 삭는 꽃’에서 다 타고 재가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꽃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린 빛의 시원이 어디에 있는 가도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 탈 때 비로소 열과 빛이 나온다. 어떻게 보면 재가 허무의 상징 같으나 존재의 증거물이다. 무엇이 사라지면서 비로소 자신을 회복하므로 그 매개는 불을 만드는 바로 탄다는 행위에 있는 것이다. 태양도 끝없이 탄다. 그것은 자아도취가 아니라 빛을 공급하기 위한 우주의 발광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빛을 만들기 위해 탄다는 것은 희생과 같으나 빛의 시원이기도 한 것이다. 하여  북양항로도 결국 빛을 찾고 빛인 시를 만들어 가는 자기희생의 길인 것이다. 하여 오세영 시인의 시작활동이 곧 북양항로이고 태양이 빛을 만들 듯이 위대한 작업이고 이 작업도 태양이 불멸하기를 바라듯 불멸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4. 현대에서 서정을 길어 올리는 마중물, 직관과 직시
현실과 결부 지을 수 없는 시는 시로 힘이 없다. 감동이 없다. 시는 시공을 초월해 감동을 주어야 하고 납득이 되는 시를 써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늘 변해가는 현실에 발걸음을 같이 하여야 좋은 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현실을 외면했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부주의라고도 할 수 있으나 아울러 구체성이 떨어지는 시가 될 수 있으므로 읽는 사람과의 거리감이 클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시는 한 시대를 철저히 노래한 시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세영 시인이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써 내는 시는 나이가 들므로 왈 하려는 시도 아니고 나이가 들므로 시로 가르치려고 들지 않으므로 젊은 시, 싱싱한 시, 시공을 초월하는 시를 우리에게 끝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스마트폰, 현관의 벨소리, 아파트, 층간 소음이란 현대의 상징적인 문제를 가지고 쓴 「어떤 날」은 현대인의 생활약식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뛰어난 서정시이다.


스마트폰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때가 있다.

현관의 벨소리가
기다려지는 때가 있다.

아파트 천장의 층간 소음이
기다려지는 때가 있다.

먼 하늘에서 울려오는 우렛소리.

우주 또한 그렇다.
─「어떤 날 전문」


이 한 편의 시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따뜻함을 알 수 있다. 인간냄새 풍기는 세계를 좋아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어우러져 소통하며 사는 세계를 좋아한다. 마중물인 직관과 직시의 눈을 현실 깊이 박아 서정의 시를 철철 길어 올리는 것이 현실에 대한 애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혜안으로 사물과 세상을 따뜻이 바라보는 여유와 다정함도 가지고 있다. ‘먼 하늘에서 울려오는 우렛소리,/우주 또한 그렇다’에서 알 수 있듯이 소리란 살아있음의 증거고 살아있다는 것은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소리로 소통하는 세계, 우주마저 소리를 내어야 살아있는 우주이므로 소리란 어우러지는 수단이자 존재를 알리는 수단인 것이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소리나 인기척을 기다리는 일이므로 누구나 제 존재의 소리를 내면서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합류하려는 그런 의지가 있음을 시로 보여주고 있다.

『북양항로』를 펼치면 모처럼 서정의 푸른 바다에 발을 담그고 몸을 담그는 것 같아 좋았다. 좋은 시를 향한 갈증이 일순간 가시는 것이었다. 시가 길어지므로 장점이 될 수 있으나 길어지므로 꼬이는 말과 겹치는 이미지로 난해해지는 경우가 많다. 길다고 하여 나쁜 시라는 뜻이 아니다. 길므로 갖춰야 할 조건이 미비할 때 길므로 말이 많아지므로 보이는 허점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 오세영 시인의 시는 시의 견본 같으며 시가 질적으로 높아지기 위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지를 잘 보여준다. 『북양항로』란 시집이 서정의 바다로 나를 끝없이 항해하게 하며 시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줘 고맙다. 누구나 ‘북양항로’로 초대하고도 싶어진다.



김왕노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 『사진 속의 바다』, 『그리운 파란만장』 등.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 문학상, 지리산 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금 수혜 상. 《시와 경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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