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7호/미니서사/박금산/지금 바깥이 어둡습니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64회 작성일 18-12-15 11:05

본문

미니서사


박금산



지금 바깥이 어둡습니까?



부항을 뜨는 것이 만병통치라고 믿는 침술사가 있다고 치자. 그 분이 맹학교 교장을 지낸 적 있는 기독교인이라 치자. 당신이 만약 어깨 근육이 뭉쳐서 마사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치자. 당신의 아내가 침술사에 대한 정보를 충분하지 않게 가진 채 주변 지인들의 말을 듣고 남편인 당신에게 그 분을 소개한다고 치자. 그런 당신, 어깨가 아픈 당신, 나와 조건이 같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아내의 지인들이 효과를 크게 보았다는 말을 믿고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침술사가 부항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몰랐기 때문에 경락 마사지를 받기로 하고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
침술사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거실 벽에 십자가와 맹학교 교장시절의 기념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시각장애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화법을 알고 있었기에 평상시보다 목소리의 톤과 볼륨을 높여서 인사했다. 침술사는 누구의 소개로 오게 되었는지 물었고 나는 아내의 친구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침술사는 나의 대답을 들은 후 아내의 친구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말했다. 침술사는 내게 나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이름을 말했다. 침술사는 내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내 이름을 되뇌었다. 그런 다음 내게 혈압 약을 먹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먹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침술사는 혈압 약은 앞으로 절대 먹지 말 것이며, 혈압이 높아진다 싶으면 자신에게 찾아오라고 말했다.
침술사는 내 등을 만져 타진하면서 부항을 뜨겠다고 말했다. 부항을요? 되묻고 싶었는데 그녀의 태도와 목소리에는 무겁고 두터운 위엄이 있었다. 침술사는 도구를 준비하면서 부항의 효능에 대해 설명했다. 식물인간이 되어 있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부항을 떴어야 건강했을 텐데 부항을 뜨지 않아서 의식불명이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어서 옷을 주워 입고 그녀의 집에서 나오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 등을 찌르기 시작했다.
등에 부항을 뜨는 데에 한 시간이 걸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거울에 등을 비춰보니 붉은 빵이 사십여 개나 찍혀 있었다. 침술사가 말했다. 어혈을 뽑았으니 혈액순환도 전보다 잘 될 것이고, 근육 뭉친 것도 풀릴 것이라고 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자 어깨의 통증이 사라지고 몸이 전체적으로 가볍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또 시술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부항을 뜨실 때에 아마도 천 회 이상 바늘로 내 등의 피부를 찔렀을 것이다. 어깨의 통증이 나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한 시간을 참았지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에게 그만하자고 말했을 것이다. 바늘에 쪼임을 당하는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이 말은 굉장히 다정하게 기억이 났다. 지금 바깥이 어둡습니까? 열여섯 살에 실명을 했다는 그녀. 해가 진 뒤였는데 바깥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내 경험을 들으셨으므로 당신은 이제 그녀의 집을 알고 계신 상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이 그곳에 다녀왔는데 몇 개월 후 당신의 아내가 피로를 호소하며 당신에게 그곳에서 받은 시술의 효과가 어떠했는지 묻는다고 치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몇 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당신은 천 회 이상의 바느질을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바늘에 찔릴 때의 따끔거리는 통증은 잊었다. 개운했던 기억이 있어서, 지금 바깥이 어둡냐고 묻던 그녀의 다정한 말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 나는 아내에게 괜찮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시술을 받으러 가겠노라고 결정했다. 나는 침술사의 안부가 궁금했다. 종일 비가 내리는 날 그녀는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나는 빗길이 미끄러울 테니 운전을 해주겠다는 말을 핑계로 붙여서 아내로부터 동행을 허락받았다. 차 안에서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그런데 내가 옆에서 기다리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
“왜?”
“시각장애인이라서. 더구나 내가 남자이고. 혹시 위협으로 느끼지 않을까?”
“글쎄. 전화로 물어보자.”
아내는 침술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함께 가도 되냐고 물었다. 침술사가 듣기에 그 말은 남편도 시술을 원하는데 시간을 예약할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들렸던가 보다. 침술사는 한 시간씩 따로 순서를 예약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내게 시술을 받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크게 저으면서 웃었다. 아내는 침술사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내의 설명을 들은 후 침술사는 기다리는 동안 심심함을 견디는 게 문제이지 집에 와 있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침술사는 내게 옷을 벗으라고 했다. 나는 시술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침술사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비스로 뱃살 빼는 침을 놓아주겠다고 덧붙였다. 아내가 시술받는 동안 기다리기 심심할 테니 침을 꽂고 누워서 책을 보든 전화기로 인터넷을 하든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용무도 없이 그녀의 집에 침입한 것이 미안했고, 서비스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침을 맞는다는 것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서 거절하고 싶었다. 그런데 뱃살을 빼준다는 말은 반가웠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옷을 벗고 시술대에 올라가 배를 천정으로 향한 채 몸을 눕혔다. 침술사가 내게 말했다.
“침 맞으면 움직이기 힘드니까 책이랑 전화기랑 머리맡에 두고 누우세요.”
  
당신이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고 치자. 침술사께서 당신의 복부를 마사지하면서 뱃살은 빼지 않아도 되겠으니 내장기능을 향상시키는 침을 놓아주겠다고 말한다고 치자. 당신도 나처럼 이미 배를 맡긴 후이니 그녀가 권하는 침을 맞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녀가 당신에게 침을 몇 개 정도 꽂을 것 같은가?
나는 그녀가 침통을 흔들 때에 겁을 먹었는데 한두 방이 아닐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내 배에 침을 심기 시작했다. 열두 개쯤? 나는 수를 헤아리다가 잠깐 딴 생각에 빠졌다. 침을 꽂은 채로는 옴짝달싹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은 침술사가 고안해 낸 인생의 비법이 아닐까. 나를 침대에 묶어 놓으려고 서비스로 침을 놓아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침의 개수를 잃었다.
아내가 시술을 받을 차례였다.
내가 책을 펴고 첫줄을 읽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침술사가 말했다.
“불 꺼도 되지요?”
그녀는 말을 마친 후 스위치를 향해 걸었다. 나는 그녀가 시각장애인임을 다시 깨달았다. 그녀는 불을 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자인 것이다. 나는 다른 것도 깨달았다. 만약 내가 침이 없는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나는 그녀가 아내의 등에 바늘자국으로 빵을 만드는 한 시간 동안 그녀의 집의 이모저모를 눈으로 샅샅이 뒤졌을 것이다.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그녀 모르게 여기저기 돌아다녔을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면 어떠했겠는가? 당신의 배에 침이 꽂혀 있지 않았다면? 당신도 나처럼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을 텐가? 나는 어두워진 공간에서 책을 내려놓고, 배에 침을 꽂은 채 침대에 누워 천정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천정에는 침술사가 스위치를 내려서 불을 끈 실내등이 매달려 있었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