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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미니서사/김혜정/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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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84회 작성일 18-12-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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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거인



폭우가 쏟아지는 사흘 동안 그녀는 열 감기 때문에 누워서 지냈다. 햇살이 그녀의 방 창문으로 스며들었다. 게다가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담장 밖에 거인이 쓰러져 있었다. 고개만 젖혀져 그녀의 집을 향한 채였다. 무지막지한 손이 그를 덮쳐 목뼈를 부러뜨린 후 머리를 구십 도로 회전해 놓은 형국이었다. 그것은 몇 시간 전의 일이 아니라 적어도 하루 혹은 이틀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벌레들이 이미 그의 몸을 장악했다. 경찰들과 구조대원들이 지극히 사무적인 몸짓으로 거인을 관찰했다. 구경꾼들은 유령을 보기라도 한 듯 하얗게 질려 중얼거렸지만 애도의 낯을 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거구는 보다보다 처음 봐요. 저 몸을 어떻게 끌고 다녔는지…….”
“그러게요. 그런데 왜 죽었을까요?”
“왜 죽긴요, 아무도 말 걸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살아 뭐해요?”
그녀는 거인을 위해 기도했다. 생전의 그가 그녀에게 베풀어준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난 일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몸이 나비처럼 살랑거린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사랑한다는 말로 들었고,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은 살랑거리는 나비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나비를 채집하고 박제하는 데에 있었다. 그는 나비 채집을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나서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 돌아와도 곧장 자기 방에 틀어박혀 채집해온 나비를 박제하거나 나비의 생태를 기록하는 데만 시간을 할애했다.
“당신이 나비의 십분의 일이라도 나를 사랑하는지 궁금해요.”
“그런 말장난이나 하려거든 잠이나 자는 게 어때?”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다. 일 년 동안 거기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인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거인은 담장너머에서 그녀에게 새소리를 들려주고 꽃을 피워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가 벙어리 마술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집을 떠나고 없을 때나 방에서 나오지 않을 때 거인은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와주었다. 그런 그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다니. 그녀는 상실감에 몸을 떨었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그녀는 남편 곁에 머물렀다. 그것은 일종의 체념이었고 그녀는 한없이 무기력했다. 하지만 거인을 만난 다음부터는 달랐다. 그녀는 새도 되고 꽃도 될 수 있었다. 남편이 아닌, 거인으로 인해 기쁨을 맛보았다.
남편이 오랜 여행을 마치고 함박웃음을 머금고 돌아왔을 때 그녀의 몸은 불덩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한을 느꼈다. 마침내 그녀는 남편을 불러 세웠다.
“이제 당신을 떠나겠어요.” 
“뭐?”
“당신을 떠날 거라고요.”
“왜?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거인이 떠났어요.”
남편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단지 그 말을 했을 뿐인데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서서히 열이 가시는 걸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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